궁중문화축전 열리는 행사장 주변 재미있고 비밀스런 이야기 7가지 소개
- “왜 궁궐 전각 앞마당에는 나무가 없을까?”
- “춘당지는 왜 연못이 두 개일까?”
- “선인문 앞 고목은 왜 비틀려 있을까?”
1. 경복궁(상설전시관) / 장마가 와도 빗물이 고이지 않는 근정전 마당
궁중문화축전 상설전시관이 들어서는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는 탈춤, 사자춤, 줄타기 등의 잡희가 매일 펼쳐진다. 한 두 시간 관람하고 흥례문을 통과해 나아가면 근정전이 위엄있게 우뚝 서 있다. 드넓은 앞마당에는 박석이 깔려 있다. 이곳은 비가 아무리 와도 빗물이 고이지 않는다. 빗물 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빗물이 고이지 않는걸까. 그 비밀을 알면 놀랍다. 마당 전체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눈에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근정전 마당은 남쪽에 비해 북쪽이 1m정도 높고 이만큼 근정전의 기둥 높이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이런 지형 때문에 비가 많이 와도 물이 고이지 않는 것이다.
2. 창덕궁(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 / 나무 없는 궁궐 전각의 앞마당
축전 기간 동안 창덕궁 낙선재에서는 조선왕조 궁중음식전(23~24일 오전 10~오후 6시)을 즐길 수 있다. 낙선재는 조선의 제24대 임금인 헌종이 1847년 건축한 건물이다. 이 건물 바로 옆에는 매화틀이 있다. 이듬해 헌종이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처소다. 석복헌 앞의 마당은 네귀 반듯하다. 마치 그 모양이 입구(口)자와 같다. 그런데 마당에는 그 흔한 정원수 한그루 볼 수 없다. 왜일까? 창덕궁 석복헌에도 마찬가지로 마당에도 문가에도 나무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증보산림경제>에 “나무를 심되 뜰 가운데에는 심지 말아야 한다. 뜰 가운데 나무를 심으면 네모난 울타리 속에 나무 목(木)자가 들어 있는 꼴이 되어 빈곤할 곤(困)자와 같은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또 대문에서 곧바로 보이는 곳에 나무를 심는 것도 좋지 않다. 그것은 문 속에 나무가 들어 있는 꼴이 되어 한가할 한(閑)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궁궐에서는 나무를 심으면 빈한할 것을 우려해 식목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선의 궁궐은 정원보다 후원이 발전했다.
3. 창덕궁(인정전 특별 개방) / 왕의 화장실
9월 25~27일에는 인정전을 시민들에게 특별 개방한다.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던 곳의 내부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 내친김에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에도 들러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궁궐 창덕궁의 으뜸 전각인 대조전에 이르러 감탄사를 연발하고는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서쪽으로 난 좁은 문으로 빠져 나가 대조전 뒤편에 이르면 선조임금이 명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망의라는 관복을 보관하던 ‘경훈각’이라는 전각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조선 왕실의 화장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대조전과 복도와 행각으로 이어져 있는 경훈각에는 동서 각각 2개의 아궁이가 있는데 서쪽 측면 아궁이 위에는 왕의 화장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은 문이 있다. 이 문 안에는 조선 왕들의 이동형 변기라 할 수 있는 매화틀을 꺼내 내의원으로 가져가는 바퀴달린 작은 수레가 있다. 왕이 매화틀을 사용할 때는 이것만을 취급하는 복이 내인(內人)이 미리 매화틀 속에 매추(梅趨)라 하여 여물을 잘게 썬 것을 뿌려서 가져오면 그 위에 왕이 일을 본다. 그 후 측근 내인이 다시 그 위에 매추를 뿌리고 덮어서 가져간다. 필요한 경우 내의원으로 가져가 검사함으로써 왕의 건강을 살피는 자료로 삼았다.
4. 창경궁(궁궐의 일상을 걷다)/ 선인문 뒤 비틀린 고목
창경궁에서는 축전 기간 동안 매일 오후 1시 30분과 2시 30분 ‘궁궐의 일상을 걷다’라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프로그램을 통해 궁궐의 일상을 체험해보고 잠깐 빠져 나와 선인문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앞에 괴목 하나가 나타난다. 창경궁 선인문 뒤편 금천 앞에는 나뭇가지가 고통스러운 듯 비틀린데다 속이 허옇게 비어져버린 회화나무 한 그루가 철받침 기둥을 의지해 서 있다. 이 나무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본 나무다. 영조 38년(1762년) 윤5월 13일 창경궁에서는 영조가 자신의 손으로 왕세자 사도세자를 8일 동안이나 뒤주 속에 가둬 죽이는 비극이 일어난다. 이 때의 참극을 고목은 소리 없이 목도했다. 이 고목은 국보 제249호인 동궐도(東闕圖)에도 보인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 선인문과 역사를 같이한 나무이다.
5. 창경궁(소리풍경)/ 연못이 된 춘당지
창경궁 춘당지(春塘池)에서는 휴궁인 월요일을 제외한 축전기간(20~28일) 동안 소리 주파수에 따라 빛이 변하는 ‘소리풍경’이 펼쳐진다. 춘당지는 대춘당지와 소춘당지등 크고 작은 연못 2곳이 나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연못 전부가 춘당지인 것은 아니다. 소춘당지가 원래 춘당지이고 대춘당지는 1909년 내농포(內農圃)에 속한 11개 논을 연못으로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춘당지는 연못이 아니고 논이었던 것이다. 내농포는 왕이 직접 농사와 양잠을 하면서 농정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 역대 왕들의 손길이 머금은 논을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아 연못으로 만들고 배를 띄워 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주변의 땅에는 동물원을 지어 궁궐의 위상을 폄훼했다.
6. 창경궁(그림자극)/ 사연이 많은 통명전
축전기간 동안 창덕궁 통명전에서는 월요일 휴궁일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8시 30분 그림자극이 펼쳐진다. 관람객들로 떠들썩한 이곳은 상궁과 나인들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걸어야 했던 왕비의 침소였다. 이곳 통명전에는 괴상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현종 5년(1664년) 돌덩이가 날아오거나 의복에 불이 붙거나 궁인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희한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 도깨비짓이라는 얘기들이 오갔다. 숙종 때 장희빈 사건이 일어난 곳도 이곳인데 장희빈은 왕비인 인현왕후를 죽이기 위해 저주를 일삼았다. 궁녀들을 시켜 인형, 붕어, 새, 쥐 등을 통명전 일대에 파묻는다. 숙종 27년 이 일이 발각되어 결국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죽는다. 이렇게 사연이 많은 통명전은 정조14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순조 33년 중건될 때까지 40여 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7. 덕수궁(야간 상설 국악공연)/ 고종이 즐겼던 커피
월요일을 제외하고 20일부터 26일까지 저녁 7시 덕수궁 정관헌(靜觀軒)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전수조교, 이수자가 출연하는 야간 상설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정관헌은 여느 궁궐의 전각과 달리 서양풍이 물씬 난다. 고종이 1900년 러시아인 사바친에게 짓게 한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정관헌은 조선식 주춧돌 위에 서양식 회랑 건물을 앉힌 게 특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내부 기둥은 요즘 커피숍 분위기 뺨친다. 고종은 한국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해 있을 때 커피맛을 안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커피를 즐겼다. 이곳 정관헌은 고종 황제가 커피를 마셨던 곳이란 생각을 하며 국악을 감상해 보면 왕이 따로 없다.
참고자료:
강경선 外(2003).이야기가 있는 경복궁의 나들이, 서울:역사넷
한영우(2006),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서울: 열화당
최동군(2011). 나도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서울: 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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