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저자 박흥신 前 주프랑스 대사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출간

- “외규장각 의궤를 둘러싼 한불 간 20년의 줄다리기, 그 종지부를 찍다”

- 박흥신 前 주프랑스 대사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보는 의궤 반환 과정

2014-10-01 01:10
서울--(뉴스와이어)--‘역사’는 한 나라의 국력과 위상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이 있듯 자신들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그 가치를 드높이는 과정에서, 그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과 더 밝은 미래를 향한 의지는 더욱 굳건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 역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지정학적인 문제로 인해,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이를 온 국민의 가슴속에 새기는 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얼마 전 우리는 대한민국 외교사에 남을 쾌거를 이룩했다. 약탈된 지 145년 만에, 반환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을 목격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지만 당시 주프랑스 대사로 재임 중이던 박흥신 대사의 역할은 특히 결정적이었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대표 권선복) 에서 출판한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에서는 주프랑스 대사로서 의궤 반환의 중추적 역할을 한 저자의 육성을 통해 반환 교섭 전 과정을 들어볼 수 있다. 국가적 과업을 이룩해 낸 당사자이지만 그 어떤 과장이나 왜곡 없이 의궤 반환의 전말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는 책이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관 2014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됨으로써 그 신뢰성을 인정받았다.

의궤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란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당시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준비, 실행 및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기록한 종합 보고서로서 그림이 실리기도 하였다. 의궤에는 의식이나 행사의 모범적인 전례(典例)를 만들어 후대 사람들이 예법에 맞게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는 제작의도가 담겨 있다. 이처럼 의궤는 철저한 기록정신의 산물로서 예(禮)를 숭상하는 유교문화권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국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 수 있는 의미 깊은 자료이다.

이토록 소중한 유산을 침탈에 의해 타국에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어쩌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슬픈 숙명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지 간에 다시 우리 돌려받았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강대국 사이에서 인정을 받는 국가가 되었다는 반증은 아닐까.

외규장각 도서문제는 일본을 제외한 외국 정부를 상대로 정부 차원에서 반환 교섭을 시도한 첫 번째 사례이자,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과거 약탈해 간 문화재를 다시 돌려준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세계인들의 이목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또한 치밀한 전략은 물론, 문화재에 있어 까다롭기로 소문 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보여준 저자의 열정은 우리 외교사에 길이 남을 귀감이라 할 만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갖 이권의 의해 국론과 이데올로기가 분열되고 곳곳에서 대립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외규장각 의궤가 귀환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국민 모두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하나 된 마음으로 무장하기 바라며 보낸 선조들의 선물인지 모른다. 그 위대한 유산을 두 손에 받아 들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지켜본 이의 눈으로 풀어낸 책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 반환 교섭 막전 막후’를 통해 확인해 보자.

저자소개

박흥신

출생
- 1954년 2월 16일 전북 전주 출생

학력
- 1976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 1986~1987년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ENA) 수료

경력
- 1977년 3월 외교부 입부(제10회 외무고시)
- 주 벨기에, 모리타니아, 미국, 케냐, 캐나다 대사관 근무
- 외교통상부 문화협력과장, 문화외교국장
- 청와대 비서실 근무
- 주핀란드 대사(2005~2008)
- 전라북도 초대 국제관계자문 대사(2008~2009)
- 주프랑스 대사(2009~2012)

상훈
- 핀란드 사자공로훈장(2008)
- 황조근정훈장(2011, 외규장각 의궤 반환 공로)
- 프랑스 공로훈장(2012)

목차

contents
프롤로그
추천사

I. 외규장각도서문제 협상과정

1. 역사적 배경
2. 1993년 한불 정상회담의 오해와 진실
3. 정부 간 협상과 민간대표회담의 실패: 등가등량의 교환 원칙에 발목을 잡히다

Ⅱ. 새로운 데마르쉬: 반환 협상의 재시동을 걸다

1. 부임 준비
2. 외규장각 도서문제의 해결을 재임 중 목표로 선언하다
3. 프랑스 최장수 문화부장관 자크 랑: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어줄 적임자를 찾다
4. 반환논리의 정립
5. 정부 간 협상 재개를 위한 채널을 구축하다
6. 기업인의 측면 지원을 확보하다: 제2의 테제베는 없다
7. 문화계의 지원을 호소하다

Ⅲ. 한국-프랑스 관계 다시쓰기

1. 아부다비 원전 수주의 충격: 한국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다
2.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의 재시동
3. 정부대표 간 공식회담
(1) 1차 회담
(2) 문화로 소통하다
(3) 2차 공식회담
4. 비공식회담으로 꼬인 매듭을 풀다
(1) 9월 1일 2차 비공식 회담
5. 내교가 외교보다 더 힘들다: 일방 대여방식의 반환에 반대하는 문화재청
6.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반발

Ⅳ. 한불 정상회담: 벼랑 끝 교섭과 결단

1. 대여 방안의 조건부 승인
2. 랑 의원과 베르제 총장의 지원
3. 사르코지 대통령의 결단
(1) D-2, 11월 10일 수요일
4. 반전에 반전을 가져온 최후의 담판
5. 양국 정상회담: 역사적 결단
6. 프랑스 국내의 반응: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반발

Ⅴ. 정상회담 후속 조치

1.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반발을 넘어서다
2. 정부 간 합의문 서명
3. 기관 간 약정: 마지막 관문
4. 운송경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대결
5. 외규장각 도서의 역사적 귀환: 145년의 유랑을 마치다
6. 외규장각 도서 귀환 환영식에 맞추어 파리에서 쏘아 올린 케이팝 축포

맺는말
<프랑스의 은인들>
<박병선 박사를 기리며>

출간후기

미리보기

prologue

2011년 4월 13일, 드디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이던 외규장각 도서 중 첫 번째 운송 분이 귀국 준비를 마쳤다. 파리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서울행 아시아나 항공편에 실린 것이다. 이는 2010년 11월 12일, 서울 G-20 정상회담이 계기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 간의 한불 정상회의에서 외규장각 도서문제 해결에 관한 정상 간 선언과 이후 진행된 한불 양국 정부 대표 간 합의문에 따라 역사적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알렸다.

이후 네 번째이자 마지막 운송 분이 대한항공편으로 5월 27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모두 고국 땅을 밟았다. 외규장각 도서가 네 차례에 걸쳐 운송된 것은 귀중한 문화재가 운송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분산한다는 차원의 ‘문화재 운송 관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에 취항하고 있는 우리 국적 사들이 역사적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에 참여를 제안하여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이 두 차례씩 나누어 운송을 맡았다. 물론 무료로. 1886년 병인양요로 고국 땅을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에 정부 차원에서 반환 교섭을 시작한 지 20년 만의 쾌거였다. 필자가 2009년 12월 3일, 주프랑스 대사로 부임해서 반환 협상을 재가동한 지 일 년 반여 만이다.

2011년 6월 11일에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외규장각 도서 귀환을 환영하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문화관광부가 주관한 환영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문화계 주요인사,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내어 직지의 대모로 불리는 박병선 여사와 필자를 도와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에 도움을 준 자크 랑 의원, 뱅상 베르제 파리7대학 총장 등 프랑스 인사들도 참석하였다.

필자도 외규장각 도서반환 정부협상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여 외규장각 도서귀환의 감격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 국민들이 소중한 우리 문화재의 귀환을 열렬하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1년 반여 정부협상대표로서 겪었던 고초가 깨끗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우리 정부가 1991년 공식으로 프랑스 정부에 반환을 요구하여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지 2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인데 필자가 외교적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비록 ‘문화재 불가양의 원칙’이라는 프랑스 문화재법을 우회하기 위하여 ‘5년 단위 갱신되는 대여’의 형식을 취하기는 했다. 하지만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0년 11월 12일, 서울 G-20 정상회의 계기 한불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문제 해결방안에 합의하면서 “비록 프랑스 국내법 규정에 따라 대여의 형식을 취했으나 다시 돌려받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 품에 영구히 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일부에서는 여전히 약탈 문화재를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데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크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반환 주장에 대한 정당성 논리가 국제 사회에서 그리고 양국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신중하고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자 관계에서 한 나라가 내세우는 정당성은 때로는 상대 국가의 입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상황이 종종 있다. 외규장각 도서문제는 바로 그러한 서로의 정당성 논리가 팽팽히 맞서 교차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을 달렸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외규장각 도서문제는 일본을 제외한 외국 정부를 상대로 정부 차원에서 반환 교섭을 시도한 첫 번째 사례이자,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지난 20년간 이어온 양국과 프랑스 정부 간의 힘겨운 줄다리기와 마지막 외교교섭 타결의 내막을 들여다본다.

추천사

각고의 노력, 섭리의 결실인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사 이태진

박흥신 전 주불 대사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 반환 교섭 막전 막후’를 접하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이 책은 박 대사가 2009년 12월에 주불 대사로 부임하여 한-불 간의 주요 외교 현안이던 외규장각 의궤도서의 ‘귀환’을 성사시킨 외교 노력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1991년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 관리실장으로서 이 도서 반환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1865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서 이 책들을 가져갈 때, 그냥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나머지 4천여 책을 모두 외규장각 건물과 함께 방화하고 간 사실을 지휘관 로즈제독의 편지에서 확인한 데서 반환운동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국제법 전공의 백충현 교수에게 의논하였더니 이런 사실을 안 이상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반환은 요청해 놓고 봐야 한다고 답하였다. 그래서 함께 총장에게 건의하고 총장이 외무부 장관에게 공한을 보내는 절차를 거쳐 우리 외무부가 나서 프랑스 정부와 길고 긴 협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미테랑 대통령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1993년 9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동행한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의 반발로 그의 호의는 무색해지고 말았다. 그때 나는 반환 교섭이 장기화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간의 사정을 기록으로 남겨 후일에 이바지하자는 생각으로 ‘왕조의 유산 -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서’를 냈다. 조선왕조의 의궤가 왕실의 주요 행사의 전 과정을 담은 기록이듯이 반환운동도 자체 기록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도 발동되었다.

그 후 프랑스 정부가 안 돌려 줄 생각에서 ‘등가교환’의 원칙, 민간대표에 의한 협상 등으로 지연작전을 폄으로써 협상은 장기화하였다. 그렇게 근 20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그간에 새로 생겼던 일들을 담아 ‘증보신판’을 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이 나온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한-불 간의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낭보가 나왔다. 그 낭보를 만들어낸 주역이 바로 박흥신 대사이다. 그가 부임 후 근 2년간 펼친 힘겨운 줄다리기 외교 협상을 담아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 반환 교섭 막전 막후’라는 서명을 붙였다. 내 책이 ‘판 벌이기’였다면 박 대사의 책은 ‘마무리’로서, 한국 출판사상 드문 책의 형제 탄생이다.

나는 박 대사의 요청을 받고 원고를 읽으면서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엄연한 진리를 새삼 느꼈다.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도 요동하는 世波로부터 원칙 지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현지에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 문화에 생소한 프랑스 인사들을 설득하고 뿐더러 나중에는 그들이 나서 다른 관계자들을 설득하게 하는 성과를 거둔 사실들에 접하여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외규장각 의궤 도서를 둘러싼 양국의 외교는 하나의 전쟁이었으며, ‘귀환’은 눈물겨운 승전이자 미담이었다고 해야 할까. 박 대사 이전에도 비슷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외교관들이 많이 있을 것이지만, 최종적으로 20년의 숙제를 마무리한 박흥신 대사 팀에게 우리는 감사를 표해야 하겠다.

이 책에는 우리 대사관 직원 여러분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식 협상이 시작된 후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준 프랑스 측 인사로서 작크 랑 의원, 쿠쉬네르 외교부장관, 미테랑 문화부장관, 레비트 외교수석, 장-오르티즈 아시아대양주 국장, 파리7대학교의 뱅상 베르제 총장, 마틴 프로스트 교수, 파리 13대 살즈만 총장, 쁘티지라르 예술원 부회장 등의 협조와 노력에 관한 일화도 많이 실려 있다. 박 대사는 최종적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이 보여준 호의와 선의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 해군이 가져간 의궤도서는 박병선 박사가 1975년 파리 국립도서관 베르사이유 별관에서 처음 찾아내었다. 서울대학교 측이 반환운동을 시작하면서 파리의 박병선 박사는 현지의 큰 축이 되었다. 박흥신 대사는 책의 끝에 ‘박병선 박사를 기리며’를 실어 큰 수술을 받은 뒤에도 병인양요에 관한 저술에 여력을 쏟던 박 선생의 말년을 애틋한 정으로 보살폈던 얘기를 담아 명복을 빌고 있다. 같은 박 씨일뿐더러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전주 출신이더라고 밝힌 대목에 접하여 나는 세상의 큰일에는 섭리가 있는 것을 느꼈다.

불가능의 실현
- 의지와 타협으로 이룩한 외교적 업적

세종대학교 이사장,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 반환 교섭 막전 막후’를 읽고 느낀 것은 문화와 역사가 다른 외국과의 교섭은 애국심에 기초한 ‘의지’와 상호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타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약 150년 전 프랑스 해군이 약탈하여 간 우리 문화재를 다시 되돌려 받는 다는 것은 당초 불가능한 일 같이 보였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를 훌륭히 이루어 냈다. 거기에는 박병선 박사 등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두 나라 정부가 원칙적인 합의를 이룩하고 그에 따라 실제로 의궤를 반환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한 것은 외교관의 역할이다. 우리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일본을 제외하고 외국정부와 외교교섭을 통해 약탈된 문화재를 되찾은 것은 이것이 최초의 사례인 것 같다. 앞으로 정부차원의 문화재 반환 노력에 중요한 선례와 교훈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필자인 박흥신 대사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적인 면도 있다. 마침 그 시기에 프랑스 국립 행정학교를 나오고 불어에 능통한 사람이 대사로서 현장을 지휘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만은 없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서 나 자신도 많은 고민을 한 것이 사실이다. 당초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 시 김영삼 대통령과 합의한 ‘등가 등량교환 방식’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되었다. 실무 이행협상이 실패하고 사실상 의궤 반환이 힘들어 보였다. 그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교착상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주 불란서 대사를 선정하는 데 있어 불어를 구사하는 것은 필수 조건이었다. 불어에 익숙한 대사가 아니면 사실상 파리에서 근무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박흥신 대사가 불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지만,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반환협상의 물꼬를 트는데 최적임자라고 판단하였다. 장관으로서 박 대사를 주불대사로 천거한 것은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사가 외규장각 의궤 반환 교섭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 바로 이 책자라고 생각된다.

어려운 협상일수록 이를 성공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외교적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G-20 의장국으로서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던 계기는 동 의궤 반환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향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외국과의 협상은 항상 상대방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에는 ‘타협’이 불가피하다. 외교교섭에 있어 완전한 승리는 전쟁을 통한 항복을 받아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불란서는 ‘문화재 불가양의 원칙’이라는 것이 국내법으로 확립되어 있어 그냥 돌려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문화재를 담당하는 부서로서는 이를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협상이 막바지에 오른 2010년 여름, 박 대사는 어려운 결단을 본국에 건의하였다. 우리가 요구한 ‘영구대여’라는 형식은 불란서가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에 따라 본국정부에 차선책을 건의하였다. 그해 3월, 나는 불란서 쿠쉬너 외교장관의 방한 시 의궤 반환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강조하고, 불란서 정부의 결심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타협을 거부하는 것은 불란서 담당기관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문화재청을 비롯한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의 완강한 반대로 박 대사는 끝까지 많은 고생을 한 바 있다. ‘타협의 시점’을 찾아야 하는 고통을 박 대사는 잘 견디어 내었고, 결국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협상을 성공시킨 것이다. 금번 책자의 출간을 축하하며 뒤늦게나마 다시 한 번 박 대사의 노고를 위로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책자에서 밝힌 박 대사의 협상 경험은 후배 외교관들에게 많은 교훈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성환

2010년은 대한민국 외교에 있어 특별한 한 해였다. 그해 11월, 서울에서는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한곳에 모여 ‘단군 이래 최대 국제행사’라는 G-20 정상회의가 열려 국제적으로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이 확인되었다.

한편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우리는 대한민국 외교사에 남는 또 다른 성과를 거두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방한 중인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20년 동안 양국 간의 현안으로 남아있던 프랑스 소재 외규장각 의궤 문서들을 한국으로 사실상 반환하기로 전격 합의한 것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이어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으로서 G-20 회의와 의궤 반환 업무에 관여하였던 나로서도 2010년 11월은 외교부 근무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시기 중 하나가 되었다.

구한말 우리가 외규장각 의궤를 빼앗긴 것은 당시 우리 국력이 약하고 국론이 분열되었기 때문이었으며 오늘날 외규장각 의궤를 되찾아 올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국력의 신장과 함께 고 박병선 박사를 비롯한 우리 국민과 정부 부처의 총력적이고 복합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막판 교섭과 의궤 반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프랑스 현지에서 우리 대사관을 지휘하면서 고군분투한 박흥신 대사가 없었다면 의궤의 반환에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협상에 있어서는 큰 목소리로 자기주장을 반복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고도의 ‘감성’과 ‘지성’이 필요하다.

박흥신 대사는 30여 년간 쌓아온 외교관 경험을 살려 주프랑스 대사 부임 직후부터 관계,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 등의 주요 인사들과 긴밀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의궤 반환이 중장기적으로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윈윈’ 논리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넓혀 나갔다. 특히 박 대사가 프랑스 주요 인사들을 설득해 나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유창한 프랑스어를 바탕으로 국립행정학교 유학을 통해 구축된 프랑스 정관계의 주요 ENA 출신 인사들과의 인간적 유대관계를 적극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박 대사는 이들 ENA 출신 인사들을 설득하여 사르코지 대통령이 G-20 회의에 참여하는 계기에 한불 양국의 오랜 현안을 해결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의궤 반환은 어느 한 국가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 모두가 승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1866년 병인양요로 빼앗겼던 소중한 문화재를 우리 땅으로 다시 찾아 왔으며, 프랑스는 그동안 양국 관계 도약을 발목 잡았던 오랜 현안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박흥신 대사의 책은 의궤 반환에 있어 긴박했던 교섭과정과 함께 외교관의 역할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귀한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좋은 협상 성공 사례를 후대에도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을 낸 박 대사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조선일보 경제부 차장, 전 파리특파원 김홍수

200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박흥신 대사를 처음 봤을 때,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보였다. 언행이 너무 신중해 직업 외교관의 전형 같았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다양한 층위의 면목을 보게 돼 박 대사의 본색은 과연 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외규장각 반환 과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엿보게 된 박 대사의 진면목은 이런 것이다. 전략적 사고를 바탕에 깔되, 유연한 전술로 골리앗을 허물어뜨린 다윗 같은 인물,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자원을 120% 활용하는 기업 최고경영자 같은 외교관, 프랑스 협상 파트너와 밀고 당기는 신경전에서 언제나 한 수 위의 내공을 보여준 심리전의 대가….

기자들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반거들충이’라는 자괴감을 박 대사의 회고록을 읽고 재삼 확인하게 됐다. 당시 파리 특파원들 사이에서 외규장각 반환 이슈는 중요한 취재거리였고, 기자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당시 특파원으로서 보고 들은 얘기는 실제 스토리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점을 박 대사의 회고록을 보고 알게 됐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외규장각 문제의 시발점이 됐던 사건, 1993년 한국을 찾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에 주고 간 의궤 한 권이 ‘프랑스 내부에선 3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 형식으로 처리됐다’는 사실을 박 대사의 설명을 보고 처음 알았다.

박 대사는 대사 부임 전부터 외규장각 문제 해결을 필생의 과업으로 설정했고, ‘명분’보다 ‘실리’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든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프랑스 문화계의 거물인사 자크 랑 의원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서울과 프랑스 파리에서 연이어 열린 G20 회의를 최대한 활용해 프랑스를 압박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결단을 유도하기 위해 프랑스 재계 거물인사들, 문화계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해 우군으로 삼았다.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해간 외국의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되돌려 준 일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명분만 따지는 문화계 인사들은 ‘반환’이 아니라 ‘대여’라는 데 방점을 찍고 그 의미를 평가절하 하지만, 박 대사는 ‘실효적 지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자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박 대사의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박 대사는 K-POP이 글로벌 대중음악으로 부상하는 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최준호 당시 파리문화원장과 함께 K-POP 스타들의 파리 공연을 이끌어, 파리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K-POP 열풍을 이끌었다.

또 퇴임 이후까지 전력을 다한 끝에 프랑스 교민 및 유학생들 사이에 수십 년간 숙원으로 남아있던 국제 기숙관에서의 한국관 설립 문제도 풀었다. 역대 파리 대사 중에 박 대사 같은 업적을 남긴 이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의 집념과 노력에 경의를 보낸다.

출간 후기

권선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이사,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문화복지 전문위원)

날이 갈수록 우리 문화와 정신이 가지는 의미가 퇴색하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편 옛것과 그 안에 담긴 얼을 지키고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의 저자 박흥신 대사님 또한 불가능에 가까웠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 문제’를 주프랑스 대사 재임기간 중에 해결하여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자긍심과 애국심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위한 치밀한 전략은 물론, 문화재에 대해 그 어느 나라보다 까다롭기로 소문이 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박흥신 대사님의 열정은 앞으로 우리 외교사에 길이 남을 귀감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많은 독자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얼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고 매일매일 행복과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으시길 기원드립니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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