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차별 없이 상품, 서비스 및 자본의 자유이동을 지향하는 WTO 다자주의 체제가 그것이다. 이에 반해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지역주의는 국가주권에 기초한 경제적 신중상주의와 쌍무주의(Bilateralism)에 기초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체제가 대표적인데 이는 세계화의 큰 흐름이 국가주권 및 지역적 이해라는 장벽에 부딪히자 나타난 현상이다.
지역주의는 그 발전단계에 따라 자유무역지역, 관세동맹, 공동시장, 경제통합 등의 형태를 띤다. 이렇듯 최근 세계경제질서는WTO로대표되는다자주의와 자유무역협정(FTA) 및 경제통합으로 설명되는 지역주의의 대립이 가속화 되는가운데 새로운 균형을 모색 중이다. 그렇다면세계경제질서 재편의 과도기에 처한 우리 기업들은 어떠한 전략적 경영방향과 대처 방안들을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기업에게 다자주의와 지역주의는 환경변수일 뿐오늘날 치열한 경제전쟁 속에서 국가간 경쟁은정치군사적 경쟁의 모습보다는 기업간 경쟁형태로 나타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Motorola와Nokia간 경쟁, GE와 Siemens간 경쟁, GM과 Ford에 대한 Toyota, BMW, Honda, 현대자동차의 도전을 기업간 경쟁으로 해석하지 이를 국가간 경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기업의입장에서 볼 때, 최근 심화되는 지역주의의 확산도 세계화와 국가주권간 충돌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글로벌 비즈니스 활동을 영위하는 기업에게는 주어진 조건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EU라는 초국가적 연합체나 NAFTA, MERCOSUR, FTAA,AFTA 등 각종 자유무역협정도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속성과 규모를 달리한 공략대상 시장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기업들에겐 다자주의와 지역주의의 두 축을 기반으로 발전해 가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세계무역 환경에 적합한 경영전략을 재정립하는 일이 급선무다.
지역주의에 대한 대응, Glocalization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는 과거 수십 년간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에 의존한 압축성장을 해 왔다. 다자간 무역체제에 대한 적응이 세계 무역규모 11위 달성이라는 현 우리나라 경제성적표의 토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대 정체라는 성장의벽에 직면해 있다. 여러 경제지표들 또한 한국경제가 걸어가야 할‘지속 가능한 생존과 발전’이라는 길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저 멀리 뒤쳐져 있을 줄만 알았던 중국은 어느새 우리나라 월 평균 교역량 1위 국가로 성장해 기술과 물량 측면에서 우리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Haier, TCL, Lenovo 등 중국 대표 기업들은 제품 고급화와 다각화, 글로벌 브랜드화, 적극적인 해외기업 M&A 등을 통해 우리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최근 발표된 글로벌No. 1 제품과 기술력 보유 수에 있어서는 중국이 이미 우리를 앞질렀다. 한편, 손에 잡힐 것만같았던 일본의 기술력은 다시금 저만치 앞서가려는 상황이다.
이처럼 어려움에 처한 우리경제 앞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것이 지역주의 확산이다. 가깝게 중국은 이미 6천만 화교경제권을 기반으로 우리보다 먼저ASEAN 국가들과FTA를추진 중이며, 일본 또한 동남아 국가들과의 전통적 후원관계를 이용 FTA를 가속화 중이다. 멀리 NAFTA와 EU, MERCOSUR 등 지역협정들도 우리 기업들에게는 도전적 위기요인들이다. 기존의 다자주의(WTO)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 최근 확산되는 지역주의(FTA)에 대한 기업 경영전략 차원의 동시대응이 시급히 요구 되는바, 그 대응전략으로 경영의Glocalization이라는 병행전략을 보다 심도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자동차와 전자산업의 경우 이미 상당수 우리 기업들이 해외현지 생산 및 판매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경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화의 수준과 성과는 선진 기업들에 비해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여타 산업의 경우 아직까지도 개방화 및 지역화 된 무역환경에 적합한 생산 및 판매체제, 경영관리 시스템, 고객 및브랜드 관리 서비스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역주의 확산속에서 개별국가 단위 및지역적 수준의 환경과 요구에 맞는 우리 기업의 활동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스위스 다국적 기업인Nestle의 동남아 지역내‘1국 1제품 생산’전략은지역주의 확산에 따른 현지화 전략 성공사례로우리 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Nestle의 동남아 경영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있어 1차 산업인 농업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과 자사 제품간 관련성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이다.특정 국가에서 최저가로생산 가능한 품목을 정해 이를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지역본부는 이를 효율적으로 구축된 동남아 물류체인망을 따라 공급함으로써 지역적 수준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Nestle는 ASEAN국가 차원에서 체결된ASEAN 산업제휴협정을 활용해 동남아 전역에서 유통, 판매되는 자사제품들에 대한 관세를90% 가량 줄이는 등 적극적인 Glocalization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고성과를 창출했다. 이처럼Nestle는 글로벌 기업전략을 구사하면서도 지역주의화 추세에 적합한 경영전략과 대응체제를구축함으로써 새로운 경쟁환경을 오히려 기업성장 가속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Glocalization전략의 실행
다자주의 심화와 지역주의 등장을 경영의 틀에서 비춰 보면 개방화 시대에 우리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우선 거시적 수준에서의 개선 포인트를 살펴 보자.
● 세계경제를 읽는 눈
한국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다. 쉽게 얘기하면수출을 주로 해서 먹고 사는 경제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 글로벌 기업들과의 무한경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 나라와 지역에대한 정확한 정보수집 및 분석을 통한 전문지식 보유가 필수적이다. 이는 그 나라와 지역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에 더해 중국의 콴시(關界), 일본의 어음결제관행, 서구의 양해각서(MOU)체결 후본계약 방식 등 그 지역시장에서 통용되는 상거래 관행과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방식, 현지기업의 조직문화 등에 대한 이해도 수반돼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자들과 해당 분야 종사자들 중 이러한 요구에 적합한 능력을 구비한 지역 전문가는 얼마나 될지 자문해 볼 일이다. 또한, 생산 및 영업, 마케팅, 유통, 조직, 제휴 등 기업 경영관리시스템전반의 글로벌화 수준도 재점검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통계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영어 등 기타 지역언어 구사 능력 부족, 국가별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인사원칙과매뉴얼 부재, 해외 지사 장기근무 경력자의 희소성 등을 감안해 볼 때 그리 높지 않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의 활동 범위는 이미 국가단위에서지역과 세계로 확장되었음에도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안목을 갖춘 경영자와 전문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세계화에 더해 심화되는 지역주의 환경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향후 우리 기업의 경영진을 포함한 해당 분야 담당자들이 세계경제를 읽는 시야를 넓히고 관련지식을 확충하여 확대된 시장과 고객요구에 대처할 줄 아는 식견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 전략, 조직, 경영시스템의 조화
참여정부 출범 이후 수십 개의 지역별 FTA(자유무역협정)추진이 본격화 되고 있다. 한-칠레FTA의 경우 이미 발효했고, 최근 한-싱가포르FTA가 지난 달 정식 서명되었다. 점증하는 FTA체결 등 경쟁환경의 변화를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이와 같은 세계경제질서의 변화에 적합한 장기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살펴 볼 일이다.
우선 기존전략과 조직이 확대된 사업범위를 총괄하는 데 적합한 지를 검토해야 하겠다. 이를위해 첫째, 국가단위나 지역단위의 사업전략을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둘째, 해당 국가와 지역시장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셋째, 어느 국가와 지역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해 나갈지에 대한 장기전략이 명확히 설정,공유돼야 한다. 장기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직차원의 재정비도 요구된다. 설비이전이나 해외법인재배치로 인한 조직편제상의 변화가 유발될 수있기 때문에 슬림화 돼야 할 부문과 확대돼야할 부문 등을 가려내 재정비 해야 한다. 또한,상거래 관행과 비즈니스 행태가 우리와는 상이한 국가와 지역으로 사업범위가 확대됨에 따라경영시스템의 현지 적합성 여부도 점검해 봐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자사가 보유한 회계, 물류정보 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필요하면 ERP, CRM, SCM 등 IT기술을 활용해 해당지역 사업장의 상황에 맞춰 일관성있게 구현해 내고 둘째,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평가와 배치를 통해 본사 파견인력과 현지인력간 역할분담 시너지를 극대화하며 셋째, 해당 지역과 시장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특화된 사업전략을 창출해 내는 프로세스 등이 구축돼야 한다. 이 모두가 지역주의 심화에 대비한Glocalization전략의 실행 모습이다. 이상과 같은 거시적 측면의 개선 포인트들외에 우리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할 미시적 수준의 기회요인들도 살펴 보자.
● 아웃소싱의 현지화(Localization)
나이키는 지역주의의 확산에 대응해 핵심영역인 디자인, 제품혁신(Product Innovation), 마케팅 부문을 제외한 기타 부문을 현지 기업들에게 아웃소싱함으로써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과 외국기업에 대한 여타의 차별적 조치를 피해 이익을 창출하는 Glocalization전략을 취하고 있다.
나이키는‘2단계 아웃소싱 체제’를 갖추고있는데 이는 나이키를 발주회사로 했을 때 1단계 아웃소싱 회사(현지 1차 협력업체)와 그 밑에2단계 아웃소싱 회사(현지 2차 협력업체)의 복층구조를 두는 방식이다. 2단계 아웃소싱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각 단계의 협력회사들이 단순한 납품업체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각 단계 협력회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쟁사에대해 비교우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품혁신 프로세스 개선과 이에 맞는 아이디어를 창출해 상위단계 회사에 제공케 하고 이에 대한 본사의 승인 받아야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있게 해야 된다. 나이키는 이러한 다단계 아웃소싱에 의한 현지화 전략을 병행함으로써 사업성공의 핵심요건인 품질, 혁신 그리고 On-timeDelivery를 달성할 수 있었다.
● 브랜드 관리의 융통성
글로벌화와 지역화의 공존은 제품 및 서비스에대한 브랜드 관리측면에서도 차별적인 대응을필요로 한다.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One-Brand전략을 구사하거나 지역이나 국가별로상이한 Multi-Brand전략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지난 80년대 세계무대에서 일본기업들이급격히 부상하던 시절 미국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상당수 응답자들이 미국국적의 기업인 Zenith, RCA 등을 제압한 일본의 Sony를 자국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결과가 나왔던 적이 있다.이러한 미국 소비자들의 브랜드 국적 착각현상은US West사를 인수한 영국 Vodafone과 Lipton차, Wishbone샐러드 드레싱 등으로 유명한 스위스의Unilever사에 대한 동일 설문조사에서도 같은결과를 보였다. 이러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해당 지역과 국가의 소비자 성향분석을 통해 브랜드 운영 정책상의 다양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즉, 제품의유명세가 클 경우 One-Brand정책을 쓰고, 소비자 감정 등 국적 브랜드화가 제품판매에 역작용을 하거나 별 기여를 못할 가능성이 큰 경우 Toyota의 Lexus, LG전자의 Zenith처럼Multi-Brand전략을 구사하는 융통성을 보일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적과의 동침도 필요
다자주의와 지역주의가 혼재하는 복잡한 경영환경일지라도 제로섬 게임의 경쟁법칙만이 유일한 생존원리는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와 수준에서의 제휴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증진시킬 수 있는 포지티브 섬 게임의 법칙이적용될 수 있다. 월마트가 2003년 12월 일본의대표적 라이벌 유통업체인 세이부(西武)백화점체인과 협력관계 협약을 맺은 경우나 Cisco와Microsoft가 일본의 소프트 뱅크 및 중국 최대온라인 게임회사인 상하이 Shanda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사와 제휴를 맺은 사례에서 보듯이 개방화와 지역주의의 영향을 최소화 하기위한 현지국 경쟁업체와의 전략적 제휴가 그방법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국-중국-일본의 삼국간 자유무역협정 논의도 동북아 시장방어와 세계시장에서의 신기회 모색을 위한 국가간 차원의 전략적 제휴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곧바로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쳐 중국의노동력, 한국의 상품개발 및 제조능력 그리고일본의 고급기술력을 활용한 수직적 분업을 전개함으로써 우리 경제와 기업의 무역 및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본질적으로 경쟁관계일지라도 더 큰 기회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
● 디지털 정보기술의 활용
마이크로소프트나 월마트, 나이키 등은 디지털IT기술을 기업활동의 도구로 활용하여 성공한 기업들이다. 그 중 월마트는 전 세계에 걸친 유통과 물류망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특성상 미국방성인 펜타곤 다음으로 많은 컴퓨터 센터를가지고 있다. 월마트는 컴퓨터 센터들간의 통합망을 구축함으로써 전세계 실시간 JIT 재고관리, 글로벌 상품코드 표준화, RFID(Remote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 등을 적용한POS 관리가 가능해 졌다. 이를 통해 물류 및매장관리 부문에서 원가절감과 생산성 혁신을가져올 수 있었고 여기서 나온 혁신 아이디어들을 Value Chain상의 하위 협력업체들에게도적용케 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었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개별 국가들의 지역주의 무역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전세계 사업장과 지사망을 효율적으로 연결, 관리케 해 주는 효과가있다.
다자주의냐 지역주의냐, 선택은 없다
지역주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경영환경의 도래가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게 그 동안 다자주의 무역환경하에서 못했던 것을 가능케 해주는 또다른 선택의 카드를 제공해 주진 않는다. 기업경영의 입장에서 보면 다자주의든 지역주의든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다자주의의 틀 속에서 지역주의가 확대되는 현상을 주어진 경영환경으로 인식하고 선진 기업들보다 한 발 빠른 준비와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 기업들은 무역환경 변화에 따른 시의 적절한 정보를취득, 검토할 전담 부서와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또한, 업종별 대책 및 전략을 수립해 관련 정보를 정부에게 제공, 필요한 부문에서 협조를구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등 보다 발 빠르고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이는 미국 통상법301조에서 보이는 업계와 미국 통상대표부(USTR)간의 공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기업과 한국경제가 다자주의 심화와 지역주의 확산이라는 세계경제질서의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홍석빈 경영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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