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간 이구’였으면 행복한 생으로 마감했을지 모를 그의 험난한 인생경로와 파란만장했던 왕조의 몰락, 굴곡 많았던 근대사의 아픔을 이구씨 전 생애를 통해 들여다본다.
다양한 희귀자료 발굴을 통해 ‘황태손 이구’가 아닌 ‘인간 이구’를 조망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구씨의 유년시절이 공개된다. 희망에 부풀어 미국 유학을 떠나 센터 칼리지에 다니던 시절의 다양한 사진들과 그와 인연을 맺었던 여러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열정, 나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그의 부친인 영친왕이 일본에서 한국어 사전을 집필, 발간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낸다.
개인적인 삶 최초 공개, 재능있는 건축가로서의 이구
2007년, MIT Museum에서 기획전시되는 ‘Monsanto Project'(1957년 이구가 졸업당시 참여했던 건축 프로젝트)에 초대될 예정이었던 건축가 이구. 미국 MIT에서의 유학생활과 건축가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과 그의 도면, 연구논문 등을 발굴해 보여줌으로써 재능있는 건축가로서의 면모도 볼 수 있다. 아울러 그가 설계한 인천항 도크와 중국 대사관 등 조국을 위해 열정을 바쳤던 젊은 날 이구의 생애도 상세히 소개된다.
다큐 제작과정에서 처음 밝혀진 이구와 북관대첩비의 관계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황태손 이구가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북관대첩비란 임진왜란 때 정문부(鄭文孚)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한 전공비이다. 함경도 의병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거느린 왜군을 무찌른 것과, 왜란이 일어나자 반란을 일으켜 함경도로 피난한 두 왕자를 왜적에게 넘긴 국경인(鞠敬仁)을 처형한 전말 등이 1,500자 비문에 소상히 적혀 있다. 조선 숙종 때 함경도 북평사(北評事)로 부임한 최창대(崔昌大)가, 함경북도길주군 임명(臨溟)에 건립하였다.
1905년 러·일 전쟁 때 함경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 여단장 소장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는 주민들을 협박해서 비석을 파내 일본으로 옮겼다. 이 사실을 1978년 도쿄[東京]에 있는 한국연구원장 최서면(崔書勉)이 밝혀내었다. '군국일본'의 상징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방치되어 있어, 비문에 이름이 있는 의병의 후손들이 일본 정부에 청원서를 내는 등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이 북관대첩비는 올 10월에 반환 예정이며 서울을 거쳐 개성(북한)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선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해서 마지막 황태손 이구씨가 적극적으로 운동을 벌인 것은 중요한 의미이며 어찌보면 이번에 북관대첩비가 반환되는 것은 그가 열심히 벌인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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