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고당-수산간 도로건설공사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 개최
일 시 : 2005. 9. 27(화) 10 : 30
장 소 : 용인 고당-수산간 도로건설공사부지내유적 발굴 현장
조사기관 : 중앙문화재연구원
발굴기간 : 2005년 4월 21일~현재
Ⅰ. 調査槪要
조 사 명 칭 : 고당-수산간 도로 건설공사 구간 내 유적 발굴조사
조 사 지 역 : 용인시 원삼면 두창리, 백암면 근삼리 · 백봉리 일원
조 사 면 적 : 시굴 118,202㎡, 발굴 6,480㎡
조 사 기 관 : 중앙문화재연구원
조 사 기 간 : 2005년 04월 21일 ~ 2005년 09월 27일 현재
조 사 의 뢰 : 경기도건설본부 · 대보건설(주)
Ⅱ. 調査地域의 位置및 調査經過
1. 位置와 自然·地理的 環境
용인시는 경기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리적인 위치로는 경도 127°01′~127°26′, 북위 37°05′~37°22′에 위치한다. 서울특별시와 비슷한 면적으로 한반도 및 경기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이천시, 서쪽은 수원시와 화성시, 남쪽은 안성시·평택시, 북쪽은 성남시·광주시와 접하고 있다.
지질은 동쪽 끝과 서쪽 끝 부근에 쥐라기의 대보화강암, 구성읍 일대에는 시대 미상의 각섬석이 분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는 선캄브리아대의 호상편마암·화강암질편마암·서산층군에 속하는 편암이 나타난다. 남북으로 뻗은 단층들이 나타나며 이러한 단층에 따라 하천이 흐르고, 저지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천 연변을 따라 제4기 충적층이 형성되어 있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보아 산지가 남북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그 사이의 침식저지와 충적지들도 남북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또한 광주산맥에 속하고, 남쪽으로 뻗은 4개의 산줄기에 의해서 시역이 구분된다.
북서쪽 의왕시와 경계지역에는 광교산(582m)·백운산(564m)·바라산·형제봉 등이 있다. 동쪽지역의 남북방향으로 침식저지가 지나고, 이 산지와 평행으로 뻗어내린 또 다른 산지는 남한산성에서 뻗어내리는 것으로 구성읍·모현면·포곡면과 경계를 이루고, 기흥읍·중앙동·이동면과 화성시 동탄면의 자연 경계를 형성한다. 주요 산봉우리는 법화산·무푸레고개·성산(472m)·부아산(404m)·함봉산(306m) 등이다. 광주시 경안동 남쪽에서 정남 방향으로 뻗어내리는 산지는 동부동을 두 갈래로 크게 가르는데, 태화산(645m)·노고봉(574m)·발리봉·정광산·형제봉·쌍령산 등의 산이 솟아 있다. 이 산지의 동쪽에는 비교적 낮은 산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수정산·구봉산·정배산 등이 주요 산이다.
주요 하천은 북류하여 한강으로 유입하는 금령천, 서쪽에서 평택시를 지나 분향만으로 유입하는 구흥천, 동남쪽으로 흘러 남한강으로 유입하는 청미천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천과 만나면서 형성된 저지대는 한강 지류인 탄천과 진위천의 지류인 신갈천이 형성한 충적지와 그 주위의 저위 침식구릉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이 저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남북방향의 저지대는 시역의 중심적 기능을 하는 곳으로 용인읍이 여기에 위치한다.
조사지역이 속한 원삼면과 백암면은 경기도 용인시 남서부에 있는 면으로 면적은 각각 60.23㎢와 65.79㎢이다. 원삼면은 인구 7,479명(2001)이고 12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백암면(白岩面), 서쪽으로 이동면(二東面)과 안성시 양성면(陽城面), 남쪽으로 안성시 고삼면(古三面)·삼죽면(三竹面), 북쪽으로 양지면(陽智面)과 접한다. 백암면은 13개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구 10,206명(2001)이다. 동쪽은 이천시 모가면(暮加面)과 일죽면(一竹面), 서쪽은 원삼면(遠三面), 남쪽은 안성시 삼죽면(三竹面), 북쪽은 이천시 마장면(麻長面)과 호법면(戶法面)에 접한다.
원삼면과 백암면은 구봉산(九峰山:465m)·대덕산(大德山:309m)·수정산(水晶山) 등이 솟아 있다. 주요 하천은 한천과 청미천으로 각각 아산만과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2. 조사경위
경기도 건설본부에서는 늘어나는 경기 남부지역의 원활한 교통편의 증진과 물류 절감을 위해 용인시 원삼면 고당리에서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를 잇는 총연장 16.64㎞ 도로의 신설을 계획하면서 노선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중앙문화재연구원, 2004,『고당-수산간 도로 확·포장공사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지표조사 결과 11개소의 유물산포지가 확인되어 문화재청의 허가(2005-270)에 의거 2005년 4월 21일부터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두창리유물산포지와 근삼리유물산포지, 백봉리유물산포지에서 백제 토광묘를 비롯하여 수혈주거지와 기와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지도위원회의 결과(2005년 6월 10일) 유구가 확인된 3개소 유적 6,480㎡ 범위에 대해 기간을 연장하여 발굴조사를 진행토록 하였으며, 경기건설본부 및 대보건설(주)과 협의하여 80일간 조사기간을 연장하여 조사하기로 하고, 문화재청의 기간연장 승인을 얻어 3개소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Ⅲ. 조사내용
고당-수산간 도로 건설공사 구간 내 유적 발굴조사는 2005년 4월 21일부터 시행한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구가 확인된 용인시 원삼면 두창리유적과 백암면 근삼리, 백봉리 유적을 대상으로 시굴조사 기간 연장에 따른 문화재청의 승인에 의거하여 실시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두창리 유적에서는 백제초기 토광묘 17기가 확인 조사중에 있으며, 근삼리 유적에서는 통일신라 석실묘 1기와 조선시대 기와가마 1기, 토광묘 30기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백봉리유적에서는 조선시대 수혈주거지 1기와 토광묘 1기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1. 두창리유적
두창리유적은 백암면에서 318번 지방도를 따라 원삼면 방면으로 3㎞ 정도 나아가면 남서쪽으로 두창교회가 보이는데, 두창교회 뒤편 능선에 위치한다. 석술암산에서 북동쪽의 청미천을 향해 진행하는 능선의 북사면으로 노선이 설계되어 있으며, 시굴조사에서 백제 토광묘가 확인되어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지역의 북동편에 위치하는 두창교회는 1970년대에 설립되어 2002년에 개축되었다고 전하는데, 설립시에 다수의 토기가 노출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두창교회 뒤편 능선 정상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는데, 시굴조사 전 마을 주민에 의해 밭 부분이 절토된 상태이다. 한편, 유적의 뒤편 능선을 따라 다수의 봉토분이 도굴된 채 노출되어 있어 시간을 달리하면서 무덤이 조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창리유적의 조사 결과 17기의 백제토광묘가 확인되었다.
① 1호 토광묘
조사지역의 서쪽 상단부에서 확인되었다. 묘광은 암갈색사질토층에서 황갈색사질층으로 채워진 내부퇴적토가 노출되면서 확인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415㎝, 너비92㎝, 최대깊이 25㎝로 평면비가 4.51 : 1로 세장하다. 장축은 북동-남서(N-65°-E) 방향이며,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되어 있다. 단면 조사를 통해 묘광벽에서 12㎝ 정도의 보강토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동단벽쪽에 별도의 부장공간을 마련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장주체부와 유물부장공간 사이에는 격판을 끼워 분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매장주체부의 규모는 길이386㎝, 너비71㎝ 정도이다. 유물은 유물부장공간에서 원저단경호 3점과 철모 1점이 출토되었으며, 매장주체부 중앙부에서 철도자와 불명철기가 각 1점씩 출토되었다.
② 3호 토광묘
조사지역의 중앙부에서 확인되었다. 묘광은 적갈색사질층에서 암갈색사질층의 내부퇴적토로 확인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잔존길이 276㎝, 너비 94㎝, 최대깊이 20㎝로 동단벽쪽이 파괴되었다. 장축은 남동-북서(N-65°-W)방향이며, 등고선과 평행하다. 묘광 상부에서 초승달형의 주구가 확인되었는데, 동쪽 부분이 유실되었다. 단면조사를 통해 너비 72㎝ 정도의 매장주체부가 확인되었으며, 매장주체부의 서편에 유물부장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매장주체부와는 격벽에 의해 구분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유물부장공간에서 원저단경호 5점이 출토되었으며, 단경호 하부에서 경식으로 사용된 구슬이 출토되었다.
③ 7호 토광묘
조사지역의 동쪽 중앙부에서 확인되었다. 묘광은 암황색사질토층에서 황갈색사질의 내부퇴적토로 확인되었다. 묘광은 길이 451㎝,너비107㎝, 최대깊이 43㎝로 평면비 4.21:1로 세장하다. 장축은 동-서(N-72°-E)방향이며, 등고선과 평행하다. 단면 조사를 통해 확인된 매장주체부의 규모는 길이311㎝, 너비85㎝이며, 매장주체부의 서편에 격벽으로 분리된 유물부장공간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유물부장공간의 동쪽모서리에 암반이 노출되었으며, 단경호가 암반위에서 출토되고 있어 암반 부분은 별도의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유물은 유물부장공간에서 원저단경호 6점이 출토되었다.
2. 근삼리유적
근삼리유적은 백암면 소재지에서 329번 지방도를 따라 안성 방향으로 2㎞ 정도 진행하면 근삼리에 이르게 된다. 유적은 근삼리 영곡교에서 동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 나아가면 만나게 되는 구릉으로 청미천을 향해 뻗어 있는 능선상에 위치한다. 능선은 북서-남동방향으로 이어지는 해발 120m 가량으로 구릉의 남사면과 동사면으로 도로가 설계되어 있으며, 시굴조사 결과 토광묘와 기와가마 등이 확인되어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능선의 남사면은 계곡으로 요철이 심하며 동사면은 정상부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구릉의 말단부는 소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일부 형질이 변경되었다.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 석실묘 1기와 조선시대 토광묘 30기, 바닥만이 남은 조선시대 기와가마 1기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① 1호 석실묘
석실묘는 능선의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는데, 등고선에 직교되게 묘광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사면 아래쪽인 남단벽쪽이 유실되어 전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다. 묘광은 황적색풍화암반층을 잔존길이 175㎝, 너비190㎝ 정도로 굴착하여 내부에 잔존길이 145㎝, 너비 104㎝의 석실을 축조하였다. 벽석은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최대 잔존깊이는 42㎝이다. 석실 내부에 잔존길이 145㎝, 너비 75㎝의 시상을 북단벽에 붙여 중앙부에 설치하였으며, 시상과 양장벽 사이에는 약 15㎝ 범위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시상은 20㎝내외의 부정형 할석을 사용하였으며, 북단벽쪽에는 50×40㎝의 석재를 깔아 상면을 마련하였다. 유물은 북단벽과 동장벽 모서리 공간에서 광구병과 개2점, 배1점 모두 4점이 출토되었다.
3. 백봉리유적
백봉리유적은 백암면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죽산방향으로 4㎞ 정도 나아가면 동쪽으로 대우종합기술연구소 방향으로 연결되는 소로와 만나는데, 소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대우종합기술연구소 북편에 형성된 구릉에 위치한다. 시굴조사 시 수혈주거지 1기가 확인된 완만한 경사의 동쪽구릉을 대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수혈주거지 1기와 조선시대 토광묘 1기가 확인되었다.
Ⅳ. 調査成果
우리 연구원에서는 경기도건설본부의 의뢰에 의해 고당-수산간 도로 건설구간 내 11개소의 유물산포지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구가 확인된 두창리유적과 근삼리유적, 백봉리유적 등 3개소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두창리유적에서 백제토광묘 17기가 확인되었으며, 근삼리에서 석실묘1기와 조선시대 토광묘 30기, 기와가마 1기, 백봉리유적에서 조선시대 수혈주거지와 토광묘 1기 등이 확인되었다.
두창리유적에서 조사된 토광묘는 장단비가 4:1 정도로 세장한 편이며, 관·곽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지만, 한쪽 단벽을 택해 매장주체부와 격벽으로 분리된 유물부장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두창리유적에서 조사된 17기의 토광묘 가운데, 6기에서 상부의 주구가 확인되어 주구토광묘로 확인되었으며, 나머지 11기에서는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다. 출토유물의 특징은 중서부지방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원저단경호와 심발형토기의 조합이 보이지 않고, 원저단경호만이 집중 부장되고 있으며, 일부 일부 철기유물이 함께 부장되었다.
이러한 두창리 토광묘의 조사를 통해 중부지방 토광묘 성격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한편, 두창리 고분의 상부에 위치한 석곽분과의 관계 규명을 통해 이 지역 묘제 변천과정을 살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근삼리유적에서 확인된 석실묘는 신라의 진출과 관련된 증거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토광묘에서 출토된 다양한 명기들을 통해 당시 매장의례를 연구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Ⅴ. 회의안건
1. 확인된 유적의 성격 검토
2. 유적의 향후 처리방안
3. 기타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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