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휴는 자(字)가 휴휴(休休)이며, 스스로 호를 동안거사(動安居士)라 하였다. 이승휴는 가리 이씨(加利李氏)의 시조(始祖)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행적 대부분은 강원도 삼척에서 발견된다. 이승휴의 어머니는 삼척에 살고 있었으며, 과거에 급제한 후에 삼척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관직을 버리고 낙향을 할 때도 삼척 두타산에 은거하였으며, 그곳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내전록(內典錄)』,『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등 불후의 저술을 남기고 일생을 마감하였다.
이승휴는 고려의 격동기를 살았다. 이승휴가 살았던 시기는 몽고의 침입, 무신정권의 붕괴와 원나라의 간섭 등 고려가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최씨 무신정권의 시기인 1224년(고종11)에 출생하여, 원나라의 정치적 압제에 시달리던 1300년(충렬왕 26)까지 생존하였다. 격심한 정치적 변화와 이민족의 침략 및 외세의 정치적 간섭이라고 하는 민족적 시련의 시기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다간 인물이다.
이승휴는 대내적으로 신진사족으로서 정치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이승휴는 무신정권에 반대하고 왕권의 강화에는 찬성하면서도 측근인물을 앞세운 비정상적인 정치운영에는 반대하였다. 충렬왕의 측근정치에 대한 이승휴의 태도는 단호하여 끝내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이승휴의 정치활동은 직언(直言)과 파직(罷職)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비굴하게 타협하는 것보다는 파직되고 좌천되어 옮겨 다니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자위하면서 스스로 호를 동안거사(動安居士)라 하였다.
이승휴는 대외적으로 고려의 독자성과 민족의 자주성의 회복을 통해 원나라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였다. 이승휴는 두 번에 걸친 원나라 사행(使行)을 통해서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안목을 갖게 되었다. 원나라의 강대한 국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원 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질서 속에서 고려 왕조가 유지 존속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고려의 독자성과 민족의 자주성의 확보를 강조하였다. 이 같은 사상을 이승휴는『제왕운기(帝王韻紀)』의 편찬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였다.
『제왕운기(帝王韻紀)』는 중국사를 기록한 상권과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당시 세계사라고 할 수 있는 중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이승휴는 단군을 시조로 하는 역사의 정통성을 정립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중국과는 구분되는 독립국가임을 천명하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였다. 특히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서 최초로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북방 고토에 대한 회복의지를 제시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 역사는 단군을 시조로 하는 단일민족국가로서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삼한 → 삼국(고구려·백제·신라) → 통일신라·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이승휴는『제왕운기(帝王韻紀)』를 영사시(詠史詩) 형태로 서술함으로써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와 한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우리 민족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승휴의『제왕운기』는 민족 대서사시로서 이규보의 『동명왕편』의 전통을 잇고, 조선개국 초에 읊어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한국 국문학사에 우뚝한 봉우리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개요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 예술, 체육, 관광, 종교, 미디어, 국정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이다. 2008년 문화관광부와 국정홍보처, 정보통신부의 디지털콘텐츠 기능을 통합해 문화체육관광부로 개편했다. 1차관이 기획조정실, 종무실, 문화콘텐츠산업실, 문화정책국, 예술국, 관광국,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을 관할하며, 2차관이 국민소통실, 체육국, 미디어정책국, 아시아문화중심추진단을 맡고 있다. 소속기관으로 문화재청, 대한민국예술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어원,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극장,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국악원,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영상자료원, 해외문화홍보원, 한국정책방송(KTV) 등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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