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뉴스와이어)--올해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선생이 서거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연암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연암은 이 땅에서의 근대적 학문 연구의 시작과 더불어 언제나 연구자들의 관심의 초점에 있었다. 연구자들 뿐 아니라 독서 대중 역시 연암의 작품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이룩한 탁월한 성취에 있다 할 것이다.

올해 초부터 국내 여러 학회와 단체가 연암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대구·경북지역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대동한문학회(학회장 김혈조, 영남대 한문교육과)’가 가장 먼저 행사준비에 착수해 마침내 오는 10월 7일 영남대 박물관 강당에서 ‘연암 박지원 선생 서거 200주년 추모 학술대회 및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과 영남대가 후원하는 이번 학술대회에는 국내 연암 연구자 가운데 대표적인 학자 20여명이 토론과 발표를 위해 참가한다. 일찍이 1987년에 한국한문학회가 연암 탄신 250주년을 기념하여 학술대회를 가진 바 있지만, 이번 학술대회는 그동안 우리나라 한문학계의 저변 확대와 질적, 양적인 성장을 재확인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동한문학회가 준비한 ‘연암 박지원 선생 서거 200주년 추모 학술 대회 및 전시회’는 이름 그대로, 크게 학술 대회와 전시회의 두 가지 행사로 진행된다.

먼저 학술대회에서는 ‘『연암집』과 연암 산문’, ‘연암의 사상과 문학론’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진다.

첫 주제인 『연암집』은 연암 박지원 선생의 모든 작품을 모은 문집으로 사후(死後) 120년이 훨씬 지난 1932년에야 비로소 전체가 간행되었다. 연암의 친손자인 박규수(朴珪壽)가 우의정까지 지냈음에도 조부의 문집을 간행하지 못한 것은 19세기 후반까지도 연암의 작품들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산문과 시, 과농소초, 열하일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과농소초』와 『열하일기』는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만, 정작 연암의 문학과 정신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산문 부분은 그 난해함 때문에 아직도 완역이 되지 못한 상태다. 현재까지 남북한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는 연암 작품을 뽑아 번역한 선집 몇 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날 ‘연암집 번역에 대하여’란 제목의 발표자로 나서는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는 연암집 전체의 국역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국역되지 못했던 산문과 시 부분부터 먼저 국역작업에 착수해 지난해 그 첫 권이 선을 보였고, 올해 말에 두 번째 국역본이 완간될 예정이다. 남북을 통틀어, 연암 서거 2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연암집 완역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에 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연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도 김명호(성균관대), 김영진(계명대), 정민(한양대), 강명관(부산대), 심경호(고려대), 이종주(전북대), 김동석(성균관대) 등이 주제발표를 하며, 황위주(경북대), 김철범(경상대), 김성진(부산대), 최재목(영남대), 이종호(안동대), 전수연(안동대), 박영호(경북대) 등 이 열띤 토론을 펼칠 예정이다.

‘연암의 자취’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크게 5가지 주제로 준비된다. 각 주제는 연암 자신의 저작과 그가 직접 쓴 글씨 및 편지들, 1911년 조선광문회가 출판한『열하일기』를 시작으로 근대 이후 출판된 연암의 저작 및 그 번역서와 연구서, 북한과 중국·일본에서 간행된 연암의 저작과 연구서, 시·소설·만화 등으로 재현된 연암, 연암의 자취를 따라 등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연암의 저작은 『연암집』과 『열하일기』가 대종을 이룬다. 대동한문학회는 대구지역 대학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서울 등 다른 지역의 도서관 및 개인 소장본들을 모았다. 특히 연암은 ‘燕巖山房(연암산방)’이라는 표기가 된 개인원고지를 사용해 자신의 저작은 물론이고 다른 문헌들을 필사한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원고지에 쓰인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연암 저작의 본디 모습을 찾아가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깊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국내에서 아직 한번도 함께 전시된 적이 없는 연암저작 및 번역서 등과 연구자들도 쉽게 구해볼 수 없는 해방 이전에 출판된 연암 관계 서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는 앞으로 연암에 관한 모든 연구논문을 모으는 과제를 안은 대동한문학회가 일단 책으로 간행된 것만이라도 한자리에 모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와 아울러 연암의 자취를 찾는 사진전도 열린다. 연암의 묘소는 개성 부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남쪽에 남은 연암의 자취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만년에 지어서 거처한 서울의 집터(당시 계산동)가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지금 헌법재판소 옆 한견에 작은 표석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연암의 작품에 언급되는 함양군 학사루(學士樓)나 함양군 흥학재(興學齋), 거창군의 오신사(五愼祠), 「열녀함양박씨전」의 주인공을 기리는 작은 비석 등은 지금 남아있다. 연암은 만년에 안의현(현재 함양군)감을 역임했다. 연암은 안의현감으로 재직 시 열하를 다녀오며 직접 목격한 중국식 벽돌건물 몇 채를 건축하였다고 한다. 안의현청으로 쓰였고, 구한말 이건창(李建昌)이 직접 목격하기도 한 그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안의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그 교정에 1988년 연암 기념 사적비가 세워졌다. 이러한 사적들이 사진으로 모여 연암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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