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차 남북장관회담 참가…북한 화해·협력의 변화조짐 뚜렷
백태현 NSC 정책조정실 행정관
지난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의 공식 수행원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2002년 8월에 대북지원 민간단체의 북한방문단에 참여하여 평양을 처음 갔다 온 이후 2번째 방문인 셈이다. 설레임이나 호기심이 첫 번째 방문 때보다 크지 않았으나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은 통일부 출신인 나에게 여전히 최대 관심대상이었고, 약간 흥분돼 있었다.
평양을 방문하는 13일,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출발시간인 오후 1시경에는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제대로 이륙할 수 있나 초조했으나 이내 전세기는 활주로를 오르며 인천공항을 멀리하고 있었다. 영종도에서 서해를 경유하여 ㄷ자 직항로로 돌아갔지만 1시간도 채 안되어 평양의 순안공항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비행기 창 밖으로 평양 근교의 농촌풍경이 들어왔다. 논이 많지는 않았지만 외양상 우리내 것과 별 차이가 없었고 듣던 대로 올해 작황은 예년에 비해 좋아 보였다.
방북 첫째날 - 1박2일 걸리던 길 이젠 불과 1시간만에 도착
인천공항을 떠날 때 내리던 비는 평양 순안공항에서도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북측 대표단 일원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우리는 안내에 따라 버스에 올라 곧바로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다. 지난 2002년 민간단체 일원으로 왔을 때는 북경을 경유하여 평양까지 오는데 1박2일이 소요되었는데, 이번에는 불과 1시간 만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거기다 통관절차도 생략되어 국내 어느 지방도시에 온 느낌이었다.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의 도로변 풍경은 폭우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자동차 ‘휘파람’의 광고판이었다. 남북 합영회사인 평화자동차에서 이탈리아 피아트의 씨에나 승용차를 현지 조립해서 만든다는 휘파람 자동차의 광고였다. 어느 외국기자가 쓴 평양방문기에 거리가 깨끗하고 많은 선전문구가 있었으나 광고판은 볼 수 없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평양은 그만큼 변해 있었고 변하고 있었다.
장관급 회담장 겸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하였다. 여기도 3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1층 로비부터 조명이 밝고 색상이 더욱 화사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19층에 배정받은 방도 전에 비해 화장실 시설 등이 현대식으로 개선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TV에서 24시간 영국 BBC, 일본 NHK, 중국/러시아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방송의 일부 시간에는 우리 연속극이 중국말로 더빙되어 방영돼 한류를 실감함과 동시에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지난 2002년 평양 방문 때에는 북한 중앙방송 하나만 저녁에 나오고 밤 10시경인가 종료되는 단조로운 프로그램이었다.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자 중심지였지만 그 당시 밤 풍경은 한마디로 적막강산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에는 뭔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방북 둘째날 - 옛날 같으면 긴장감 맴돌 회담도 분위기 달라져
방북 둘째날, 장관급회담 제1차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남과 북은 회담 일정에 본격 돌입하였다. 회담 초기 양측이 공식 제기한 입장은 비교적 차이가 컸다. 이전 같으면 양측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회담 분위기는 그와 달리 다소 화기애애(?)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6·17 면담(정동영 대통령특사-김정일 위원장) 이후 달라진 새로운 회담문화 덕분인가?
그 날 저녁은 아리랑 공연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다. 2002년 4월 김일성 주석 90주년 생일을 기념하여 만든 대규모 집단예술(매스게임)을 올해 광복 60돌 및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각색한 종합 예술공연이었다. 북측 안내원은 미국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이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사실 건너편 스탠드를 가득 메운 카드 섹션의 규모(1만8000명 배경대)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순진한 학생과 장난끼 많은 학생의 차이가 보여 재미있었다. 확실히 본인의 카드를 높이 올려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열심인(?) 학생이 있는 반면에 내가 있는 건너편 우리 관람석이 궁금한 개구쟁이는 갖고 있는 카드를 1/3 내지 1/4쯤 내려 호기심 어린 똘망한 눈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린이들의 줄넘기 공연과 맨 마지막 통일아리랑의 한반도 지도형상, 특히 울릉도, 독도까지 표현된 모습은 한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일정을 점검한 후 밤 11시경 고려호텔 44층 회전전망식당(스카이라운지)에서 평양의 야경을 구경하며 일행들과 환담하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 외 다른 손님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1시간 반 주기로 1바퀴 회전한다며 회전판을 가동하는 안내원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고, 우리 어릴 적 귀했던 바나나를 생각하며 서울에서 가져간 바나나를 먹어 보라고 북측 안내원에게 건네는 동료 수행원의 모습이 정겨웠다.
남산 전망대처럼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평양의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늦은 시간인데도 사방에 있는 모든 건물에 간간히 불빛이 있었다. 숙소인 호텔도 과거에 비해 조명이 많이 밝아졌다고 생각되었는데 평양 시내 야경도 정전구역 없이 전에 비해 꽤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방북 셋째날 - 화창한 가을날씨는 남녘이나 북녘이나 똑같아
세쨋날 오전에는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을 참관하였다. 그 날은 정말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에 눈부신 햇살, 아름다운 금수강산 그 자체였다. 국제친선전람관은 평북 향산군 묘향산계곡에 위치한 종합전시관으로 그 규모가 총 7만평이라고 하니 산속에 거대한 건물도시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계 각국에서 지금까지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한 것들을 모두 모아 전시한 곳으로 ‘영광의 선물관’ ‘세계의 보물고’라고도 칭하고 있었다. 나라별, 지역별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 방에는 과거 김일성 주석이 타고 다닌 방탄차, 역도산이 선물한 벤츠차가 있었다.
또 다른 방에는 해외 출장 때 쓰던 전용 기차칸도 실물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곳은 북한 학생들의 순례 코스여서 그날도 많은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정도의 학생들을 복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손을 흔들면 같이 웃으며 손인사로 답례하던 학생들의 수줍어 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마지막 날 - 자동차 광고판, 바나나 건네는 동료 모두 새로와
마지막 날 남북 양측은 공동보도문에 최종 합의하였다. 밤새 실무대표 접촉 등 진통이 있었으나 과거에 비해 순조롭게 합의문이 도출되어 북한에서 열렸던 장관급회담 역사상 처음으로 일정대로 회담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로 귀환하는 길은 홀가분했고 평양에 갈 때보다 더 빨리 우리측 지역으로 넘어온 것 같았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제2의 6·15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 남북 간에 알게 모르게 많은 화해와 협력의 변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3년 전 북경을 돌아 어렵게 방문한 평양은 다소 이국적이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의 평양은 나에게 왠지 친근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북한에는 우리에게 낯선 선전문구들,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과 모습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서로 교류협력할 때 자연스레 한 민족, 우리는 같은 민족임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 본다.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란 문구가 있듯이 남북관계의 변화는 국제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남북 간 왕래인원은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2004년에 2만명 시대를 넘어 올해는 8월말 기준으로 벌써 5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연말까지 10만명을 기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만의 ‘빨리빨리 문화’가 IT산업 성장의 큰 요인이 되었듯이 남북 화해협력의 속도를 내는데도 순기능적인 작용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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