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2005년 국정감사 일정이 절반을 넘겼다. 각 정당과 몇몇 언론에서는 이번 국감이 ‘정책국감 혹은 대안국감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매년 지적되어 온 ‘정치공방과 색깔론 부추기기’ 등 구시대적인 행태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감기관과의 부적절한 술자리에서 드러난 의원들의 해이해진 자세, 준비 부족, 수준 미달 질의, 피감기관의 불성실한 태도 등 정책국감의 걸림돌이라 할만한 문제들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국회는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국민을 대신하여 각 부처의 국정 운영을 날카롭게 감시하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부실 국감을 부추기는 국정감사 제도의 근본적인 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이번 국감에서 두드러졌던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국정감사 2년차, 열의는 떨어지고 정신적으로는 해이해진 의원들

여야가 이번 국감에서 정쟁과 파행을 피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쟁이나 파행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깊이 있는 국정감사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우선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보여주기식 이벤트‘와 ’한건주의식 폭로‘가 국감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는지 의문이다.

피감기관의 접대를 받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고 불과 1년 만에 국감 첫 날부터 피감기관 관계자와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진 것은 ‘원칙과 멀어지고, 정신적으로 해이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 하겠다. 무엇보다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피감기관 검사들과 술자리를 갖은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술자리를 주선하고 추태를 부린 것만을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국회의원이 감사 대상자와 부적절한 자리를 갖고도 이를 그저 ‘사적인 자리’로 덮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윤리의식에 있다. 여야는 이번에 벌어진 법사위 술자리 파동에 대해 이유를 불문하고 윤리위에 회부하여 엄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접대를 받은 또 다른 상임위가 있다면 이를 조사하여 엄벌해야 할 것이다.

② 수준 미달 국감

의원들의 민원해결 국감 : 국회사무처 국감에서 열린우리당 윤원호, 서갑원, 구논회 의원은 국회식당 개선, 의원회관과 국회 주차장 확대 문제 등을 질문으로 내놓아 국정감사를 ‘국회의원 민원제기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준비 부실 국감 : 한나라당 맹형규, 권철현, 열린우리당 조배숙 의원은 피감기관으로부터 교부받은 자료를 잘못 분석하고, 기본적인 용어를 혼동하여 발표하는 등 발표 자료에 혼선을 빚어 정정 보도를 내기도 하였다.

시정에는 관심 없는 반복되는 현안 : 국감 때 문제를 제기하고 이후 시정결과를 확인하지 않아 매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지적받을 일이다. 건교위 국감에서는 ‘도로공사의 퇴직자 특혜 문제’가 지난 5년간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운영상의 폐해 반복 : 본인의 질의 순서가 지나가면 곧바로 의석을 비워버리는 의원, 당시 사회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현안에 대해서만 반복 질의하는 의원, 피감기관에 대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기선잡기식 발언으로 불필요한 권위를 내세우는 것도 개선되지 않은 문제이다.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 이벤트식 국감 : 문광위의 한복·한지 국감, 산자위의 촛불, 국밥집 국감 등 ‘이벤트형 국감’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 ‘보여주기식 행사’가 진정 민생국감과 정책국감 실현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③ 크고 작은 파행 여전

문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K-TV가 편파보도를 했다’며 2시간 동안 국감장에 입장하지 않았고, 외교통상부 국감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여야 합의를 깨고 ‘쌀 비준안’ 상정을 시도하여 민주노동당이 회의실을 점거하고 하루 동안 국감을 진행하지 못했다. 짧은 국감 기간에 여야가 합의도 보지 못한 국가적 사안을 ‘끼워 넣기’ 식으로 처리하려던 여당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회의장을 점거하고 국감일정을 파행으로 몰고 간 민주노동당도 국민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④ 재벌회장은 열외? 면피용 증인채택

정보위는 이건희 회장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논란만 벌이다가 결국 증인출석 요구서 발송시한을 넘겼고, 법사위와 재경위는 천신만고 끝에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이미 지난 9월에 출국하여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고, 이번 국감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는 이건희 회장의 국감증인 채택이 ‘국민 여론에 밀려 면피용으로 시늉만 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이 회장이 국감장에 출석하도록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재벌 총수의 국감 불출석이 매년 문제가 되는 만큼 만약 이번에 이 회장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불출석 한다면, 현행법에 따라 증인 고발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⑤ 피감기관의 불성실한 태도

국회 남궁석 사무총장은 피감기관의 장으로 국감에 출석하여 의원들의 질문에 단 한번도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건교위는 지난 29일 철도공사의 자료 제출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국감을 연기하였고, 주택금융공사는 자료제출을 거부하고도 그에 대한 소명을 하지 않았다. 외교통상부, 법원 행정처, 행정자치부 등도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요청 자료를 누락시켜 해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았다. 의원들의 터무니없이 방대하고 중복된 자료제출 요구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피감기관이 근거 없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것 또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이다. 내실 있는 국정감사를 위해 피감기관의 이유 없는 자료제출 거부는 엄벌해야 할 것이다.

예년과 크게 달라진 바 없는 국감이지만 그나마 국감의 의미를 살린 일부의원들의 모범사례가 있었던 것은 평가할 만 하다. 우선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 (경북 안동시)은 국감 자리에서 민원서류의 위·변조 과정을 직접 보여주어 정부가 즉각 개선에 나섰고,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 (비례대표)은 중국산 배추김치의 높은 납 함유량을 밝혀내면서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 감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올 초부터 관련 기관을 114차례나 방문하면서 국감을 준비한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 (비례대표)이나 작년에 지적된 문제의 처리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하여 일회성 국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부산 연제구)도 평가할 만하다. 민주노동당이 삼성과 관련한 핵심 이슈인 정관계 불법 로비 문제, 금산법 위반 문제, 불공정 하도급 실태 등을 각 상임위에서 동시다발로 제기하면서 효과적인 팀플레이를 하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지난 10여 일간 진행된 국감을 지켜본 결과, 이번에도 국회는 국정감사의 근본적인 변화, 질적 향상을 이뤄내지 못했다. 사실 20일 동안 461개 피감기관을 충실하게 감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이제 정치권 내부에서도 연중 상시 국감 도입이나 청문회 활성화 등 제도적 보완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는 만큼 이번 국감이 끝나면 반드시 이를 제도화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절반 여 남은 국감 기간 동안 여야 모두 민생 문제를 해결과 정책 국감을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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