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새로운 CEO를 선임하기 위해서 회사 내의 인재풀을 점검하다 보면‘마땅한 사람이 없다’라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정작 선임된 CEO가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우도 많다.
포춘지(1998)에 보고된 리더십 연구 기관의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내부에서 승진한 경영자 중 약 40%가 1년 6개월 안에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에서 어렵게 육성한 CEO가 실패하는 이유로 CEO를 보좌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조직 문화 등이 지적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CEO의실력 부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력 있는 CEO 후계자 육성이 잘 안 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유능한 인재가 CEO로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적토양을 갖고 있지 못해서 인지, 기업 내 체계적인 CEO 승계 프로그램이 부재한 탓인지, 혹은 CEO 승계 프로그램은 있는데, 그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경영자 육성을 가로 막는 요인
제도의 존재 유무 이전에 유능한 인재가 제대로 클 수 있는 기초 토양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조적으로 유능한 인재가 클 수 없도록만드는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요인 1: 자기 사람 챙기기
실력 있는 CEO 후계자 육성이 잘 안 되는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CEO의 자기 사람챙기기이다.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일을 하다 보면, 능력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높거나, 자신과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기 마련이다. 부임후 2~3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CEO로서는 자신의 경영 철학과 의지를 잘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은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조직의 정당성을 해칠 정도로 지나칠 경우, 구성원들은 실력을 쌓기보다는리더에 충성하기 위한 경쟁에 더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심할 경우, 조직 구성원들의줄서기 강요, 반대파 이직 등 정치적 파워게임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력 있는 CEO가 끊임 없이 배출되는조직이 되려면 해당 조직에 CEO 후계자 감이 풍부해야 하는데, 일부 라인에 속한 인재들만 성장하게 된다면 다른 구성원들은 성장 비전을 상실하고 최악의 상황에는 이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요인 2: 유능한 동료 죽이기
조직 내에서 남보다 튀거나 똑똑한 경우, 자칫 유아독존型인재로 비추어져 동료들로부터 시기와 견제를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똑똑한 인재보다는 적응력이 뛰어난 인재가 살아 남는다’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튀거나 유능하면 제대로 크지 못하고 중간에낙마하기 쉽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조화로움이 인재가 갖추어야 할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통념이 개인의 처세술로는맞을지 모르지만, 성과주의를 중시하는 기업측면에서 볼 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구성원들간 건전한 경쟁을 통해서 우수한 인재가 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재풀 확보차원에서 보다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구성원들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 부재한 회사일수록 CEO후계자 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최고의 인재가 동료들의 보이지 않는견제 속에서 회사를 떠나고, 차선의 인재들만 회사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요인 3: 잠재적 경쟁자 가지치기
기업 내에서 유능한 인재로 인정 받고,CEO 후계자 감으로 관리되는 경우 동료뿐아니라 현재의 경영진으로부터도 심각한견제를 받을 수 있다. 현직 CEO들에게CEO 후계자들이란 머지 않은 장래에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잠재적 경쟁자들이다. 그만큼 이들은 現CEO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 CEO의 신분 보장이 불확실한 현실을 감안할 때,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견제는 現CEO 입장에서 어쩔 수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촉망 받던 CEO 후계자들이 한직으로 내몰리거나, 작은 실수를 빌미로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자신보다 유능한 잠재적 경쟁자들이 하나 둘씩 조직을 떠나게 된다면, 결국 現CEO를대체할 인물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 뻔하다.
요인 4: 편의주의적 조직 운영
단기 실적을 지나치게 우선하다 보면 실력이 우수한 사람이 오히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여기서 역선택이란 교육의 기회가 있을 때 유능한 사람에게 그 기회가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차선의 사람에게돌아가는 경우를 말한다. 당장의 성과 향상에 강한 압박을 받는 리더로서는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혹은 일 년여 공백이 발생할 경우, 자기 부서의 성과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음을우려할 수 있다.
유능한 CEO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전공 지식뿐만 아니라, 사업적 관점에서 회사 경영 전반을 두루 경험해야 한다. 부하의육성 보다는 당장의 실적을 위해 편의적으로 사람을 배치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인재를 배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CEO 후계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가장큰 걸림돌이‘그 사람은 제조 마인드가 없어’, ‘기술에 문외한이야’, ‘영업을 해 보지않아서……’등 특정 기능에 한정된 개인의경험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조직의 병리적 현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CEO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제도 도입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제도 도입에 앞서 혹은 제도도입 후에도 이러한 조직의 병리적 현상들이 존재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 보고, 이러한 현상이 목격될 경우 과감히 제거하는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CEO 후계자 육성을 위한 성공 조건
그러면 성공적인 CEO 후계자 육성이 되기위해서 필요한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 장기적인 CEO 후계자 검증 프로세스구축
現CEO에 대한 충성도, CEO 개인의 주관적 선호도 등에 좌우되지 않고, 객관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능력이 검증되고 후보들이 걸러질 수 있도록 엄격한 CEO 후계자 검증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서 인재가 배출될 때,유능한 인재가 조직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있고 이들이 모여서 결국 막강한 CEO 후계자群이 형성되는 것이다.
목재 회사로 유명한 미국의 Weyerhaeuser사의 CEO 후계자 선정 과정을 살펴보자. 동사가 CEO 후계자 검증 시스템을도입한 계기는 1997년에 회사 외부에서CEO를 채용하게 되면서 부터다. 1900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100여 년의 역사 동안 지금의 CEO를 제외하곤 모두 내부에서 CEO승계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1997년 12월동사 역사상 최초로 외부에서 現CEO인 Steve Rogel을 영입하였다. 당시까지 내부에서만 CEO를 배출해 왔던 터라, 외부에서CEO를 선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외부에서 영입되는 CEO가 과연 회사의 사업적 특성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 조직 문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지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CEO를 영입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동사는 향후 두 번 다시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회사 내부적으로 체계적인 CEO 후계자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초기 CEO 후계자 발굴 및육성 단계, 중간 점검 단계, 최종 보완 단계등 약 8년 동안 총 3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CEO 후계자를 검증해 나간다. 각 단계별로 후계자의 근황이나 성과 변화 추이, 평가 결과 등을 수시로 이사회에 보고한다. 현재는 2007년 CEO 승계를 예상하고 이미 2~3명의 후계자를 추려서 관리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 사원 단계에서부터 후계자 관리 프로그램마련
CEO 후계자 육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원 단계에서부터 핵심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이들을 지속적으로 검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CEO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의 CEO가 만들어 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적지 않은비용 지출이 뒤따르게 된다. 인재 선발 및육성에 매진하여, 각 단계별로 풍부한 인재파이프라인을 구축하여야 한다. 아무리 객관적인 CEO 후계자 검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도 검증할 인재가 부족하다면 그 효과가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 관리자에서부터 CEO 후계자까지 전사적인 인재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고있는 사례로 WellPoint사를 들 수 있다. 동사는 미국 캘리포니아州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미국 전역에서 의료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회사다. 동사는 각 직급별로 후계자 군을 구축하여 전사적인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매년2월에 부장 이상급 사원 전원에 대해 이들의 업적과 성장 잠재력을 평가하여 사업부후계자 군을 선정한다. 연이어 3월에는 지역 본부장 후계자, 4월에는 부사장, 사장급후계자, 5월에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CEO후계자를 선정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GE도 매년 4월과 5월에 12개 사업부에서 총 3,000여명의 경영자와 인사 담당자들이 모이는‘SessionC’를 통해서 사원 단계에서부터 잠재 리더들을 엄격히 검증해 나간다. 이 회의를 통해서 현 종업원들의 강약점, 향후 개발 포인트, 장단기 개발 목표, 상사의 평가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하여 미래에 필요한 리더와 핵심 인재들을 확보해 나간다.
● 엄격하고 일관된 룰 적용
CEO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검증 단계별로 엄격하고 일관된룰을 적용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경우에따라 상이한 룰 적용은 애써 도입한 제도를사장(死藏)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WellPoint사는 인재 검증단계별로 회의 이름 앞에 의도적으로‘Challenge’라는 용어를 사용(예: CEOChallenge Session)한다. 이는 적극적이고 엄격한 인재 검증을 실시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엄격한‘Up orOut’룰을 적용하여 승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단계별 회의 내내 치열하고 엄격한 토론을 거쳐서 인재를 검증하고 각자 해당 인재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객관적인 견해를 허심탄회하게 제시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 경험과 현장 위주의 육성 프로그램
구축준비된 CEO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향후CEO가 되었을 때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CEO후계자 육성에 실패하는 기업들을 보면CEO에게 필요한 경험이나 지식들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기존의 리더십 교육 내용을 보면, 주로 훌륭한 CEO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리더십역량을 분석하고 이를 리더 육성에 그대로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알려져 있는 성공한 리더의 특성은 원론적으로는 맞지만 회사가 처한 고유한 상황에 항상 적용가능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자사의 특수한 상황이나 미래에 예견되는 변화 방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실전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는 인재가 일을 통해서 경험을 체득하게 하고, 자사의 고유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를 현장에서 스스로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상위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스킬을 체계적으로 학습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들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리더십 관련연구로 유명한 Morgan McCall 교수는CEO에게 필요한 경험의 예로, 쓰러져 가는위기의 조직을 재건하고 당면한 시련을 극복한 성공 체험, 훌륭한 리더 혹은 나쁜 상사와 근무한 경험 등을 들고 있다.
경험을 통한 리더 육성이 성공하려면,CEO 후계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부문간 장벽을 제거하여 부문간 수평적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영업이나 마케팅을 모르는 생산 엔지니어, 기술을 모르는 재무 전문가, 시장을 모르는 연구 인력은 해당분야의 전문가는 될 수 있어도 유능한 CEO가 되기는 힘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Weyerhaeuser사의 경우 차기 CEO 취임이후 예상되는 회사의 전략적 방향을 검토하고 미래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핵심적인 경험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차기 CEO 후계자들이 우선적으로 체득하도록 사내 리더십 개발 기관에서 심도 있게 교육하고, 직접적인 현장경험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환 배치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WellPoint사 역시 향후 부장급 이상의리더십 포지션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핵심 인재들을 대상으로‘경영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경영체험프로그램’은 1주일 정도 워크샵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들에게는 향후 경영자가 되었을 때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 시나리오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기간 동안에는 CEO를 비롯한 선배 경영진들이 패널 토의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의경험들을 공유하고 프로그램 기간 내내 이들의 멘토가 되어서 진행의 효과성을 더욱높이고 있다.
현 경영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필요
지금까지 CEO 후계자 육성을 가로막는 요인과 CEO 후계자 육성을 위한 성공 조건들을 살펴 보았는데, CEO 육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 경영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신의 임기 연장이나 안위에 급급한 CEO가있다면, CEO 후계자 육성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경영진은 단기적인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재능 있는 인재들이 경험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향후 회사가 나아가야 할 전략적 방향에 부합하고 미래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적자에 허덕이던GE를 세계적인 일류 기업, 남들이 모두 배우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우뚝 세운 GE의전임 CEO Jack Welch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GE의 현 주가나 외형적인 회사의 규모가 아닌 Jeffrey Immelt라는 유능한 CEO 발굴을 지목하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있다고 하겠다.- LG경제연구원 진병채 인사조직그룹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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