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라 왕경 지역, 즉 안압지·월성·황룡사 등지에서 출토된 인화문토기와 부장용기로서 서악동·용강동·황성동 등 경주의 석실분에서 출토된 인화문토기 20여점이 비교 전시된다. 또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골장용기 및 일상용기와 구별된 특수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기형의 인화문토기 20여점을 함께 전시하여, 인화문토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일상용기라기보다 장골용기나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하기위해 특별히 제작된 용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화문토기는 토기의 표면을 무늬판으로 눌러 찍어 무늬를 넣은 토기로, 그 출현은 6세기 중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대개 9세기 초까지 성행하다가 사라졌다. 출현기의 인화문토기는 기본적으로 신라토기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인화문도 전시기의 콤파스로 그어낸 원문(圓文)의 형태를 그대로 계승한 찍은 원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격적인 인화문토기는 통일기 이후 중국 수(隋)·당(唐) 도자기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된 것으로 여겨지며, 각종 영락문(瓔珞文) 또는 화승문(花繩文)이 새롭게 등장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화문(花文)이 다양하게 시문된다. 특히 장골용기(藏骨容器)에는 영락문(瓔珞文), 초화문(草花文), 화형문(花形文), 운문(雲文), 조문(鳥文) 등 여러 가지 문양을 조합한 인화문이 화려하게 베풀어져 있는데 이는 불교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그릇을 아름답게 장엄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장골(藏骨)이란 화장한 유골을 탑파(塔婆)나 부도(浮屠)에 안치하거나 지하에 매장하는 것을 말하는데,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火葬) 풍습이 성행함에 따라 뼈를 그릇에 담아 지하에 묻는 화장묘(火葬墓)가 유행하였으며, 이때 사용된 용기를 장골용기라 한다. 장골용기를 사용한 화장무덤이 가장 발달한 지역은 신라의 경주부근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식조사를 거쳐 확인된 유적은 거의 없다. 따라서 화장묘에 대한 연구는 장골용기로 쓰인 토기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는데 장골용기로 사용된 토기는 대부분 인화문(印花文)이 화려하게 시문된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라의 장골용기는 대개 7세기 대까지는 전체적으로 반구형의 몸체에 뚜껑이 있는 합이 많이 쓰인다. 무늬는 주로 뚜껑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점차 인화문으로 바뀌어 간다. 8세기 대는 장골용기가 최고로 발전하며 인화문이 화려하게 시문된 항아리를 비롯하여 녹유도기나 당삼채 등이 사용되고, 기종도 매우 다양해진다. 통일신라 후기가 되면 점차 장골용기의 양식이 쇠퇴하여 화려하게 장식된 인화문이 사라지고 기형도 둔중해지는 등 전반적으로 퇴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작은전시를 통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아름답고 화려했던 문화의 한 일면을 살펴보며, 아울러 그동안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인식되어왔으면서도 그 연구에 있어서 미진했던 인화문토기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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