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열사기념관을 관리하고 있는 이기항, 송창주씨 부부는 “3600장의 태극기 중 그 첫번째 태극기를 이준열사기념관에 보내주신 특별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후략)”라는 감사의 메일과 함께 개천절날 기념관 건물 정면에 걸려있는 태극기 사진, 기념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 및 태극기와 나라사랑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태극기는 헤이그에서 말한다”)등을 서울시에 보내왔다.
서울시는 지난 8월 15일 광복60주년을 기념해서 시청사 전면에 태극기 3600장을 12일간 설치한 후 1번 태극기는 이준열사기념관에, 나머지 태극기는 인터넷 신청을 받아 시민들에게 배부 한 바 있다.
이기항씨가 메일로 보내온 글 전문
‘이 태극기는 2005년 8월 15일 서울 시청에 게양했던 3600장의
태극기 중 한 장(0001/3600)으로 이 태극기를 통하여 1907년
세계 평화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순국)하신 이준 열사
님의 고귀한 정신이 널리 알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위 글은 본 태극기를 이준열사기념관에 보내면서 ‘태극기 사랑이 나라사랑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서울시장이 써보내신 글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저는 나라 사랑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이 태극기(太極旗)를 나라의 명절인 10월 3일을 기하여 유럽에 하나밖에 없는 이준열사기념관(Yi Jun Peace Museum) 정면에 게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말없이 나부끼는 이 태극기의 소리 없는 언어를 아래와 같이 상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언어는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였습니다.
이 언어는 한 세기 전, 대한제국의 2000만 동포를 대표하여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께서 세계 앞에 외쳤던 한 약소민족의 슬픈 언어입니다.
1907년 6월 30일자 헤-그에서 불어로 발간된 ‘만국평화회의보’ 두 번째 쪽에는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 (Pourquoi Exclure la Coree? 부제; 헤-그에서의 한국인의 항의)’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1907년 제 2차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대한제국의 이상설, 이준, 이위종 특사는 태극기를 품고 헤-그로 왔다. 그리고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그랫듯이 우리 대표들도 호텔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이는 만국평화회의를 취재했던 일본 OSAKA 매일신문의 高石眞五郎 기자가 한국대표단이 묶는 호텔(지금의 이준열사기념관)에 태극기가 게양된 것을 보았다라고 (1972년 일본에서 간행된 朝鮮統治史論稿) 증언하므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위 만국평화회의보를 비롯하여, 이곳의 여러 신문들은 이준열사가 회의가 없던 일요일이며 불란서 혁명기념 축제가 있던 7월 14일, 그의 숙소 Wagenstraat 124 호텔에서 죽었다고 보도하였다.
위의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준열사는, 이상설, 이위종 두 대표와 함께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만국평화회의(지금의 UN 총회에 해당함)에 참석하려고 헤-그까지 오셨다가 일본의 방해와 세계 열강들의 냉대로 회의장 입장이 거절되자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 라는 항의문을 세계 앞에 발표한 후 태극기가 게양어 있는 그의 숙소에서 비극의 죽음을 당하셨다.
故 월탄 박종화 선생이 기록한 “20세기 한국의 證言”이란 글의 한 토막을 아래에 적는다.
“그 때 내 나이 7살이었는데, 이준열사가 헤-그에서 비통한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이 서울 장안에 전해지자 사람들이 취한 듯이 미친 듯이 나라의 운명을 슬퍼했다.”
두 번째 언어는 “대한독립 만세”입니다.
‘대한독립 만세!’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3.1 운동을 생각하게 됩니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200만이 일제히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던 겨레의 비명(悲鳴)이 ‘대한독립 만세!’...였다. 그러나 3.1운동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1905년의 을사늑약이후 1907년 이준열사의 헤-그 순국.... 등 일련의 계속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3.1 만세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어떤 글에서....
“만약 이준열사의 헤-그에서의 순국이 없었다면,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어떻게 전개되었겠는가?!..... 일본은 좀 더 수월하게 한국을 합병하는데 성공하였을 것이고, 또 세계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극동평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않았겠는가!....(중략).
연대기(年代記) 상으로 보더라도 이준열사의 비극(悲劇)의 죽음은 국내외동포들의 독립운동에 기폭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때를 같이 하여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2년 후 이준열사 순국에 의분을 품은 후배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할빈 역에서 한국병탄(倂呑)의 주역 이등박문을 처단함으로서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드디어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들고 ‘3.1 대한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중략).
3.1운동을 독립운동의 꽃으로 비유한다면, 그보다 12년 전에 일어났던 이준열사의 헤-그에서의 순국은 그 뿌리가 아닌가!.... 그리고 그 3.1 운동의 결과로 같은 해에 태어난 상해 임시정부는 그 열매가 아닌가!......(하략).
그러므로 필자는 감히 말하건대, 1907년 헤-그에서 나부꼈던 태극기의 은밀한 언어는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라는 슬픈 언어인 동시에 ‘동포여 일어나라’..그리고 ‘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외치라는 독립운동의 군호(軍號)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웬일인가요?..... 최근에 와서 이 성스러운 3.1운동의 정신이 점점 흐려지고, 심지어 이상한 정치 구호로 변질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를 2004년 3월 1일의 서울 거리로 옮겨 보겠습니다.
이 날은 3.1 만세운동 85주년을 기념하는 국경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의 서울 동정을 담은 인터넷 신문을 읽다가 문득, “태극기 없는 3.1절”이란 이상한 글 제목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본 후 큰 한 숨을 내쉬고 다음과 같은 비감(悲感)을 수첩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곳이면 어떻고, 두 곳이면 어떤가!...
파고다 공원이면 어떻고, 시청 앞 광장이면 또 어떤가?!....
문제는, 이 성스러운 날, 이 날과는 아무 상관없는 남의 나라 국기(성조기)를 흔들고, 또 한쪽에선 실체도 없는 푸른색의 낮 익은 지도(한반도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서로 갈 라서서 눈흘기며 정치구호나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3.1절의 엄숙한 뜻을 이들은 다 잊 어 버린 것인가?....”
3.1절은 무엇인가?
손에손에 태극기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그 때의 어른들은 이미 청산에 누우셨지만, 그 때의 지도자들이 세운 상해 임시정부는 오늘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체가 된 것이 아닌가!.
3.1 운동은 벌써 85년 전에 歷史化된 취소불능의 한민족의 산 역사 자체요, 또한 우리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담긴 우리나라 최고의 정신문화의 꽃이다. 全知全能자(神)도 있었던 역사를 없이 할 수 없다....라고 철학자 데칼트는 말했는데 오늘의 한국인들 일부는 바로 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3.1절을 없었던 일로 왜곡하는가 아니면 망각했는가.....
태극기의 마지막 언어는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나는 특별히 애국자는 못되어도 매일 아침 태극기를 이준열사기념관에 게양합니다. 1995년 개관이래 지난 10년 간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같이 나는 이 태극기를 이국의 한 고옥(古屋)에다 게양하면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는 곧 ‘태극기 만세’입니다.
태극기는 1883년 고종황제 20년에 우리나라 국기로 채택 공포되었고, 해방 후 1949년 3월 25일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재확인한 대한민국 국기인 동시에 우리나라 상징물 제 1호입니다.
存在하는 모든 것의 共通의 屬性은 영속(永續)입니다.
그러므로 촛불도 꺼지지 않으려고 바람 앞에서 몸부름 치는지 모릅니다.
태극기는 태어난 이래 지난 122년 간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첫 번째 태극의 불꽃이 꺼진 것은 물론 일본에 의한 한국의 병탄(倂呑)이 었고, 두 번째는 북한에 의한 남침이었습니다. 이 태극의 깃발이 내려졌을 때 우리 겨레는 통곡하였고, 그러다가 많은 선열들의 희생과 또 국군과 UN군 장병들의 피의 대가를 치룬 후 이 태극기가 다시 살아났을 때,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만세수(萬歲壽)를 하자면, 나라가 더 강해져야 합니다. 경제는 하루 속히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되고, 국방력은 더욱 강화되어 주위의 어떤 대국도 우리를 또다시 넘볼 수 없는 유럽의 네덜란드와 같은 강소국(强小國)이 되어야 합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국가운영의 기본 철학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국민들의 정신력이 건강해져야 합니다. 그 동안 나라 밖에서 밀려온 세계화(Globalization)의 물결에다, 또 국내적으로는 민주화와 통일지상주의에 밀려 민족정기(民族正氣)와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이 흐려졌다는 우려의 소리가 자주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모두 이 세 가지를 유념하고 온 국민이 합심하여 더욱 정진한다면, 대한민국은 만세수(萬歲壽)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만세’는
이 시대를 해외에서 살아가는 700만 재외동포들의 ‘망향(望鄕)의 언어’입니다.
‘대한민국 만세’는
4800만 내국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평화(平和)의 언어’입니다.
‘대한민국 만세’는
머지않아 하나가 된 후 7700만이 다같이 부를 ‘통일(統一)의 언어’입니다.
대한민국 만세!......
2005년 10월 3일 개천절에
헤-그에서,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 이준열사기념관, 이기항
서울특별시청 개요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은 600년 간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서울은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공공서비스 리디자인에 참여시킴으로써 서울을 사회적경제의 도시, 혁신이 주도하는 공유 도시로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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