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와이어)--문화재청(청장 유홍준·兪弘濬)이 허가하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완주 상운리유적」의 발굴조사 3차 지도위원회의 및 2차 현장설명회의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조사지역 : 전북 완주군 용진면 상운리 산 8번지 일원

조사기간 :
2003년 08월 25일 - 2004년 07월 05일(1차)
2005년 02월 21일 - 2006년 05월 30일(2차)

조사내용

완주 상운리유적은 북서-남동으로 형성된 야트막한 구릉(49.7m)에 형성된 유적으로 구릉을 기준으로 가-1지구, 가-2지구, 나지구, 다지구로 구분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3년과 2004년에는 가지구 중 가-1지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2005년 10월 현재 가-1지구에 대한 추가 보완조사와 가-2지구, 다지구의 전면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조사결과 분구묘와 매장주체부(토광·옹관)·주거지(청동기·원삼국)·지석묘·수혈·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1) 가지구

A. 가-1지구

가-1지구의 유구들은 구릉의 정상부에서 서북사면의 말단부에 집중·분포하고 있다. 2005년도에 보완 조사된 유구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1호 분구묘는 1차 조사에서 총 8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는데, 성토부의 하강작업을 실시한 결과 1호묘는 단독의 방형주구를 가지고 가장 먼저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축조방법은 주구를 굴착하고 주구에 연접하여 점토벽을 세우고 구지표 위로 전체적인 점토다짐을 한 후 주구에서 파낸 풍화암반토를 이용하여 분구를 조성한 후 1호묘를 안치하였다. 이후 2호와 3·4·5호, 6호, 7·8호가 1호묘를 둘러싼 방형주구를 메우고 다시 성토를 실시한 후 추가로 조성되었다. 또한 6호의 경우 다른 토광묘들과 장축방향이 다른 것으로 보아 일정한 시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호 분구묘는 총 8기의 토광묘와 1기의 옹관묘가 확인되었는데, 구지표 위로 점토를 전면에 성토하였고 방형의 1차 주구를 굴착하고 생긴 풍화암반토를 이용하여 분구를 성토한 후 중심묘제로 추정되는 4호와 7호를 안치하였다. 그 후 2차 주구가 형성되면서 1차 주구를 메우고 추가로 나머지 토광묘들이 들어서는 분구의 확장이 있었다. 5호 토광묘의 경우 4호의 상부를 일부 파괴하고 형성되었는데, 이는 1차 분구와 2차 분구 사이에 상당한 시기차이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6호와 8호 분구묘는 각기 독립된 주구를 가지고 연접하여 형성된 분구묘이다. 토층조사결과 8호 분구묘의 주구가 6호 분구묘의 성토부를 일부 파괴한 후 형성되었다. 6호 분구묘는2차 조사에서 추가로 6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어 총 10기의 토광묘와 2기의 옹관묘가 조사되었다. 6호 분구묘의 주구는 남편과 북편에 각각 ‘一’자형의 주구가 확인된다. 8호 분구묘는 2차에 걸쳐 주구가 ‘l l l’자형태로 형성되었는데, 1차에 조성되었던 북쪽의 주구를 메우고, 다시 그 북편으로 2차 주구가 조성되었다. 8호 분구묘에서는 총 11기의 토광묘가 확인·조사되었다.

가-1지구에서는 분구묘 외에도 초기철기시대 주거지 5기와 구상유구 2기, 수혈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전체적으로 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2호 주거지는 북벽 일부가 돌출되어 있다. 3호와 5호 주거지에서는 타원형의 노지가 확인되었고 3호주거지는 구상유구와 중복관계를 보인다. 주거지에서는 두형토기, 원형점토대토기, 무문토기, 화살촉 등이 확인되었다.

가-1지구에서는 이 외에도 1호 분구묘의 서편으로 약 5부능선 즈음에 지석묘가 1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상석을 들어내고 하부구조를 조사한 결과 총 5기의 지석이 확인되었다.지석묘 내부에서는 두형토기 대각편 1점 외에 후대의 유물편들만이 확인되어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석기공방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지가 1호 분구묘의 동편 정상부에서 확인되었고 그 외 석관묘, 횡구식 석곽묘, 와관묘도 각각 1기씩 확인되었다.

B. 가-2지구

가-2지구에서는 분구묘 9기, 주거지 3기, 수혈유구 6기, 구상유구 6기 및 고상식 건물지 1기가 확인되었고, 조선시대 토광묘 87기가 조사되었다.

분구묘는 9기가 조사되었는데, 1호 분구에서 성토부의 하강작업 중 추가로 토광묘 2기와 옹관묘 2기가 확인되었고 능선의 상부에서 ‘一’ 자형의 주구가 확인되었다. 분구묘 중 정상부에 위치한 분구묘들과 사면부에 위치한 분구묘간에는 시기적 차이가 나타나는데, 정상부의 5·7·8·9호 분구묘는 비교적 정형한 형태의 주구를 가지고 있으며 매장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주구 내에서는 두형토기 대각편과 무문토기편들만이 확인되어 사면부의 분구묘들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 사면부의 분구묘들은 가-1지구의 분구묘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성토부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들 분구묘는 주구와 매장주체부가 모두 있는 것, 매장주체부만 확인되는 것, 주구만 확인되는 것들로 구분된다.

주거지는 3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내부시설로는 노지, 벽구 등이 확인된다. 주거지 내에서는 장란형토기, 호형토기, 시루, 뚜껑 등의 연질토기와 일부 경질토기 등이 확인되며, 철부 등의 철기도 확인되었다.

수혈유구는 6기가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깝고 단면형태는 'U'자형이며, 바닥의 중앙에는 원형의 수혈이 확인된다. 수혈 내 토층상태를 보면 바닥면에 회백색점토층이 약 1~2cm 정도의 두께로 전체적으로 쌓여있고 바로 윗면에는 사질토가 얕게 깔려있다. 구상유구는 6기가 확인되었고, 이중 일부에서는 두형토기 대각편, 파수, 호형토기, 옹형토기 등이 확인되어 분구묘의 주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상식 건물지의 주공들은 총 30개로 400cm 내외의 간격을 가지고 있다. 주공의 폭은 40cm 내외이며 깊이는 20cm 미만으로 매우 낮게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상태로 보아 정면 7칸, 측면 3칸의 건물지로 추정된다.

2) 다지구

다지구는 남-북으로 뻗은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로 주거지 10기, 분구묘 2기, 석곽묘 2기, 수혈유구 1기, 성격미상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대부분 사면부에 위치하며 분구묘와 석곽묘는 정상부에 위치한다. 주거지의 형태는 방형이며, 내부시설로는 벽구, 노지, 주공, 배수구 등이 확인된다. 벽구는 모든 주거지에서 확인되지만 내주공은 9호 주거지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5호주거지에서는 목재를 이용하여 배수관을 시설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내부에서 장란형토기, 호형토기, 시루, 방추차, 뚜껑 등이 확인되었으며, 철부, 철도자, 철겸 등의 철기류도 소량 확인되었다. 출토된 토기류는 연·경질계가 혼재하고 있지만 연질계가 주류를 이룬다. 또한 3호주거지에서는 한면은 능형, 다른 한면은 양익형으로 음각된 청동촉 거푸집이 출토되었다. 분구묘는 2기가 확인되었으나 매장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5. 조사성과

완주 상운리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총 30기의 분구묘와 150여기의 매장주체부가 조사되었고, 이외에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주거지 및 원삼국 주거지, 지석묘,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이외 석곽묘와 수혈유구 등 분묘유적과 생활유적이 대거 확인되었는데 여기서는 2차 조사에서 확인된 완주 상운리유적의 발굴성과만을 종합하여 기술한다.

가 · 다지구에서 분구묘는 현재까지 17기가 확인되었는데, 분구묘 내 토광묘는 가-1지구 55기, 가-2지구 9기이며, 옹관묘는 가-1지구 18기, 가-2지구 6기가 조사되었다. 또한 가-1지구에서 초기철기시대 주거지 5기, 가-2지구 및 다지구에서 13기의 원삼국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이 외 지석묘 1기, 와관묘 1기, 석곽묘 3기, 석관묘 1기가 확인되었고, 그 외 수혈유구(저장시설) 5기와 구상유구 8기, 고상식 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상운리 유적은 국내에서 발견된 분구묘 유적 중 최대규모라는 점 외에도 이번 조사를 통해 분구묘의 계기적 발전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상운리 가-2지구의 5·8·9호에서는 주구의 바닥층에서 초기철기시대의 유물(점토대토기와 두형토기편)이 확인되어 향후 분구묘의 축조 상한연대와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판단된다.

상운리에서는 호남지역에서는 최초로 초기철기시대 주거유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다지구에서 발견된 청동촉 거푸집은 평북 영변의 세죽리유적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어 향후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판단된다.

이와 같이 상운리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대규모로 발견되어, 이 지역 고대 사회의 생활과 문화를 재구성하는데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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