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와이어)--문화재청(청장 유홍준·兪弘濬)이 허가하여 경기도박물관이 발굴조사한「파주 육계토성」의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조 사 명 : 파주 육계토성 시굴조사
조사지역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380번지 외
조사면적 : 18,600㎡
조사기간 : 2005년 7월 4일~10월 26일(실조사일수 30일)
조사기관 : 경기도박물관

조사단구성

□ 단 장 : 이종선(경기도박물관장)
□ 책임조사원 : 백종오(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 조 사 원 : 한준영(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 조사보조원 : 권순진, 신영문, 오강석, 오대양, 오호석, 김정기(경기도박물관 연구원)

조사목적

육계토성은 백제 한성기 평지토성으로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초기백제사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적은 1996년 경기북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서벽과 북벽일부 및 내성벽이 완전히 유실되었고 성내부도 상당히 훼손되었다. 이에 경기도박물관은 1996년 10월 17일부터 10일간 긴급수습조사를 진행하여 유적의 현상과 함께 그 중요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후 유적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몇 차례의 조사가 이루어 졌다.

그간에 이루어진 조사는 성내부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을 뿐 토성에 대한 현황과 구조에 대해서는 정확한 현상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파주시는 육계토성의 정확한 현황과 구조 및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 박물관에 유적 정비를 위한 시굴조사(문화재청 허가 제 2004-835호)를 의뢰하게 되었다. 이번 조사는 육계토성에 대한 정밀지표조사와 군부대 이전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병행하여 토성의 범위와 구조파악 그리고 지하유구의 분포확인에 목적을 두고 진행하였다. 이를 토대로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과 정비안을 수립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Ⅱ. 遺蹟環境 및 周邊遺蹟

1. 遺蹟環境

육계토성은 행정구역상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육계동 일대로,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6°53′50″, 북위 37°58′50″이다. 이곳은 적성면 소재지에서 연천 방면의 349번 국도에 인접한 가월리 마을입구로부터 서북쪽으로 2㎞ 떨어진 지점에 있다.

유적은 임진강이 사행곡류하여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만곡부의 안쪽으로 서쪽의 호로탄과 동쪽의 가여울 사이에 위치하며 북에서 남으로 흘러드는 사미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남쪽에 해당되기도 한다. 그리고 유적의 남동쪽에는 파주의 鎭山인 紺岳山(해발 675m)이 있는데 이 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에 중성산이 솟아있다. 중성산(해발 147m)은 적성의 案山으로 적성면·가월리·구읍리·마지리의 경계에 입지하고 있다. 유적이 위치한 파주시는 지리적으로 경기도의 서북단에 해당되며 서울에서 약 40㎞ 가량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양주시, 북쪽으로는 연천군과 개풍군, 남쪽으로는 고양시, 서남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와 인접해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임진강과 사천을 경계로 북한의 개풍군과 마주하고 있다.

이 지역의 지형은 동쪽의 광주산맥이 남-북으로 진행하면서 동쪽이 높고 서북쪽이 낮은 분지상 지형으로 경기만과 원산을 잇는 추가령구조곡의 서쪽에 해당된다. 경기북부지역의 주하천인 임진강은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동에서 서로 곡류하며 파주시의 서북부를 관통하고 있다. 이 하천은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한강 하류로 유입되며 지류천으로는 어유지천, 객현천, 눌노천, 두포천, 문산천, 탄포천, 설마천 등이 있다. 지류천 부근에는 경기평야, 교하평야, 월롱평야, 파주평야 등이 있으며 밀물시에 퇴적된 드넓은 개펄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지리적 배경은 파주를 경기지방과 황해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오래전부터 주목받게 하였다. 이에 고대에는 여러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현재에도 많은 군부대가 위치해 국가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후는 북부의 대륙성기후와 남부의 난온대기후의 중간적인 특색을 띤다. 연평균 기온은 11.5℃로서 온화한 편이나 연교차는 약 30℃, 연평균 강수량은 1,299㎜로 다우지에 속하며 벼농사에 적합하다. 그러나 연수량의 70%가 6~9월에 내리기 때문에 수해를 입는 경우가 많으며 식물군은 냉온대의 낙엽활엽수지역에 속한다.

2. 周邊遺蹟

파주지역은 임진강과 이를 중심으로 한 대소 지류하천으로 형성된 자연적인 교통로로 인하여 고대부터 경기지방과 해서지방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이점을 점할 수 있었다. 이같은 자연적인 조건은 선사 및 역사시대 이래로 많은 문화유적이 분포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먼저 이 지역의 선사유적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구석기유적으로 적성면 율포리, 주월리·가월리, 파평면 금파리유적 등이 있다. 특히 주월리·가월리, 금파리 구석기유적은 인접한 연천 전곡리 구석기유적과 그 성격이 동일한 계통의 유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유적으로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1996년과 1997년 육계토성 내부조사에서 100여점의 즐문토기편이 수습되어 이 지역에 신석기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북서쪽으로 파주와 인접한 연천군의 삼화리에서는 신석기 유물산포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삼거리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6기와 소형유구 1기를 비롯하여 다수의 즐문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유적으로는 정식 발굴조사는 아니지만 조사지역의 서남쪽 임진강변의 구릉성 산지에 위치한 식현리유적에서 반수혈 주거지 1기와 함께 공열토기편, 마제석부, 마제석촉, 방추차편 등이 채집되었다. 이외에 정자리, 구미리, 학곡리, 삼화리, 원당리 유물산포지를 비롯하여 학곡리와 하포리에서는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역사시대 유적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관방유적이 체계적으로 조사되었다. 먼저 육계토성의 남동쪽 3㎞지점에 칠중성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지표조사에 의하면 칠중성은 시기를 달리하며 수차례 수·개축되어 사용되었음이 체성벽과 보축성벽을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칠중성 남쪽 설마천의 주변으로는 감악산보루와 무건리보루가 직선거리로 3㎞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보루들은 설마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칠중성과 서로 긴밀한 협조체계 속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동쪽으로 6㎞ 지점에는 아미성이 있으며 북서쪽 임진강 남안에는 이잔미성(장좌리보루)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잔미성 맞은편 임진강의 북안으로는 고구려성곽인 덕진산성, 호로고루가 지표 및 발굴조사되었으며, 북서쪽 임진강 상류지역에서는 당포성과 은대리성이 각각 발굴조사되었다. 조사결과 다수의 백제·고구려·신라토기와 기와편이 출토되어 시대를 달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육계토성을 중심으로 반경 10㎞ 내외에는 입지와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다수의 성곽과 보루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는 삼국시대 이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現場임을 입증하는 산물이다.

고분유적은 인접한 연천군 일대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적석총이 조사되었다. 적석총은 임진강변을 따라 충적대지에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학곡리를 비록하여 삼곶리, 삼거리, 횡산리, 우정리, 무등리, 전곡리 등이다. 이중에서 삼곶리와 삼거리 적석총은 발굴조사 되었다. 석실분은 신답리고분과 대전리고분, 원당리고분 등이 있는데, 신답리고분은 고구려식 횡혈식 석실분으로 2기가 조사되었다. 대전리고분과 원당리고분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신답리고분과 같은 고구려식 석실분으로 추정되고 있다.

Ⅲ. 調査方法 및 經過

육계토성은 한강 이북의 초기백제사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지표조사를 통한 유적의 현황파악과 성격규명이 되지 않은 성내부 주거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번 조사는 유적의 전반적인 현황과 내용을 정리하여 차후 순차적인 학술조사방안을 세우고 그에 따른 정비개발과 유적의 효과적인 보존대책을 수립하는데 목적을 두고,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먼저 현장조사에 앞서 육계토성에 대한 관련문헌과 조사지역의 고지도 및 일제시대 지형도를 확인하고 주변유적에 대한 현황을 정리하여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검토하였다. 현장조사는 제한된 일정과 여건상의 이유로 시굴조사를 선행하였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시굴지역은 군부대 연병장을 중심으로 진행하려 하였으나 토지보상문제로 부득이하게 조사범위를 軍 소유지인 382번지 일대로 변경하여 약 1300㎡(433坪)을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지역은 10×10m 방안으로 지형에 맞게 북동-남서 방향으로 총 12개를 구획한 후 남북 장축의 2×10m의 트렌치를 굴토하여 층위를 확인하는 하향식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과정에서 트렌치 대부분은 군 시설물이 건립되면서 문화층까지 교란된 경우가 많았다. 조사가 완료된 트렌치에 대해서는 층위와 유구 평면도 및 단면도를 작성하고 사진촬영 후 기록을 남겼다. 또한 각 트렌치 중 유구가 확인된 N3W1, N4W1 트렌치 등의 유구는 하강조사를 실시하였고, N1E1, N2E1 트렌치에 대해서는 그리드 전체를 확장하여 노출된 유구의 평면을 확인하였다.

한편 성벽에 대한 지표조사는 1996년 수해로 유실된 서벽과 북벽일부를 포함한 전 구간에 걸쳐 진행하였다. 성벽은 군 벙커와 민묘의 조성 그리고 경작지화 등에 의해 훼손되어 정밀한 조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지표조사는 육계토성의 전체적인 범위와 규모, 시설물 등에 대하여 기본현황을 정리함과 동시에 성벽과 주요 시설물에 대한 평면도 및 종횡단면도를 작성하였다. 또한 방대한 성내부에 대한 조사는 전체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현재 성내부에 가설된 도로를 이용하여 총 5개의 지점을 구획하여 현황을 파악하였다. 즉 성곽 내부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도로의 북동쪽을 “가”지점, 성내부 동남쪽 하단부에서 북동쪽으로 난 도로와 서쪽 내성벽을 연결하는 곳을 “나”지점, 그 맞은편 남쪽을 “다”지점, 성곽의 남서쪽 모서리 현 시굴조사지역 주변을 “라”지점, 성내부 남서쪽 현재 포도밭으로 개간된 성벽 상부와 그 아래 지역을 “마”지점으로 구분하였다.

현장조사는 7월부터 8월사이의 한여름에 진행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7월 4일 조사에 착수한 날 주월리 일대에 우박과 강풍을 동반한 재해가 발생하여 이 지역의 주요 재배작물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주민들은 피해복구에 여념이 없어 조사에 따른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1996년과 1997년의 발굴조사결과 유적의 중요성이 현지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토지에 대한 재산권 행사가 제한될 것을 우려하여 조사협조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조사지역이 개인사유지 한복판에 섬처럼 둘러싸여 있어 조사단 및 조사장비의 진출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굴지역은 연약한 사질토양이 퇴적되어 있으며 군 막사 하부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여서 약간의 강우에도 무너지거나 쓸려가는 상황이 반복되어 조사일정에 많은 차질이 발생하였다.

Ⅳ. 旣存 調査成果

1. 1次 調査

긴급수습조사는 1996년 수해로 인해 유실된 경작지에 대한 복토작업이 진행되면서 유적의 파괴가 진행되어 동년 10월 17일부터 26일까지 10일간 실시되었다. 조사는 향후 정식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자료 확보에 주안점을 두고 유물의 수습 및 유적의 성격, 층위관계, 유적의 분포범위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긴급조사를 실시할 당시에는 이미 약 4만여 평에 이르는 유적의 절반가량이 중장비로 평탄작업이 진행된 상태였다. 따라서 조사는 평탄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부분의 노출된 유구와 유물에 대하여 실시되었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유구의 흔적이 계속 드러나 조사의 연장이 불가피하였다.

2. 2次 調査

긴급 수습조사 이후 조사연장에 따라 2차 발굴조사는 1996년 11월 4일부터 12월 8일까지 34일간 실시되었다. 조사범위가 넓기 때문에 유적의 북서쪽 413번지일대는 경기도박물관이, 남서쪽 407번지일대는 한양대학교박물관이 담당하여 공동조사를 진행 하였다. 먼저 경기도박물관의 조사결과 주거지 6기, 수혈유구 4기 등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凸’자형과 타원형이며 수혈유구는 대부분 원형이다. 주거지 가운데 96-7호는 부뚜막과 출입구 시설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또한 주거지 바닥처리는 점토다짐한 것과 불먹인 점토다짐으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대형옹, 심발형토기, 단경호, 고배, 시루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한양대학교박물관 조사지역에서는 ‘凸’자형, 방형의 주거지와 함께 평면형태를 알 수 없는 주거지 내부에서 부뚜막시설 2기가 조사되었다. 특히 1호 주거지에서는 벽체시설이 일부 확인되며, 유물은 고구려토기를 비롯하여 단경호, 심발형토기, 철부, 철촉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주거지에서는 고구려토기인 광구장경양이호와 광구장경사이호, 어깨에 파상문이 음각된 평저호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바닥시설은 점토다짐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고구려토기의 출토는 당시 경기북부지역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였던 백제와 고구려의 영역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3. 3次 調査

3차 발굴조사는 1997년 경기도박물관이 수행하였다. 1996년도의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홍수피해가 비교적 적고 문화층이 잔존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군부대 인접 지역인 405번지 일대를 조사하였다. 발굴결과 7기의 주거지와 10기의 수혈유구 등이 노출되었다. 주거지들은 대부분 바닥을 점토다짐하였으며, 유물은 대형옹을 비롯하여 단경호, 직구호, 옹, 시루, 장란형토기, 접시, 뚜껑, 철겸, 철서, 철부,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97-4호 주거지는 출입구와 부뚜막시설을 가진 원형주거지로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향이다. 출입구는 말각장방형으로 주거지의 남서쪽 중앙에 위치하며 주거지와의 연결부는 좁은 형태이다. 또한 주거지 내부 가장자리로는 단면 U자형의 溝가 확인되었으며, 부뚜막은 주거지의 북동쪽 중앙의 주거지 벽에 붙어 있는데 출입구와 일직선을 이루는 점이 특징적이다. 평면은 아궁이 부분이 넓고 굴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의 형태이다.

4. 出土遺物

1996년부터 1997년에 걸친 발굴결과 유물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신석기, 청동기,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조선시대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중에서 유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백제 한성기의 것이다.

육계토성내의 주요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의 현황을 살펴보면 96-7호 주거지에서는 호· 옹·고배·장란형토기·심발형토기·시루·완·동이류 등이 있다. 특히 대옹은 주거지 양 장벽에 인접하여 2~3m 간격으로 4점씩 노출되었으며, 부뚜막 주변에서는 시루·고배·완 등 소형의 조리용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한편 97-4호 주거지에서는 경질무문토기 뚜껑이 출토되었으나 주거지의 평면형태상 96-7호 주거지에 비해 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7-12호 주거지에서는 횡으로 평행선문이 타날된 단경호와 원통형시루가 출토되었다.

한양대학교 조사지역의 2호 주거지에서는 광구장경사이호·광구장경양이호를 비롯하여 어깨에 파상문이 음각된 평저호 등의 고구려계토기가 출토되었다.

백제토기류의 주요기종은 호류가 가장 많으며 대옹의 비율도 높다. 조리용기는 경질무문토기와 심발형토기·장란형토기·시루가 출토되었으며 식기는 완과 접시류가 사용되었다. 특히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조리의 기능이 경질무문토기 중심에서 타날기법이 가미된 심발형토기와 장란형토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육계토성 내부의 주거지에서는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공반되고 있다. 경질무문토기는 목이 좁고 경부에 원형의 압인문이 있는 호와 전형적인 장란형토기 등이 함께 나타나고 있어 기종이 교체되는 토기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대옹은 96-7호 주거지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는데 풍납토성의 가-2호 주거지 출토품과는 경부 압인문이나 바닥에 원형의 통굽 등 제작기법의 유사성이 인정된다. 이 기종은 대부분 저장용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고배는 회색연질로써 구연부의 높이가 낮고 굽이 나팔상으로 바라진 모습으로 백제 한성기 고배의 시원양식을 보여준다.

또한 한양대학교 조사지역의 2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고구려토기의 기종인 광구장경사이호와 광구장경양이호는 그 태토나 기형으로 보아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한 기종이나 이보다 이른 시기에 사용되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토기의 사용주체에 관해서는 연구가 좀더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육계토성내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입지가 동일한 풍납토성에 비해 기종구성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특히 호류(48.6%)와 옹류(14%)의 비율이 높으며, 호·접시와 같은 기종에서 암문시문과 태토 등 고구려토기의 제작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육계토성이 백제 한성기 중앙과 비교해볼 때 북쪽의 군사적 접경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색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의 토기류의 특징, 철기류·장신구류와 주거지·구덩유구의 양상 등으로 미루어보아 육계토성 내부의 유구는 백제 한성기가 중심을 이루며 이후 고구려 남진기에는 후방 거점성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Ⅴ. 調査內容

1. 土層狀態

이번 시굴조사는 각 트렌치의 북벽과 동벽, 남벽의 층위양상을 개별로 기록하여 전반적인 층위양상을 파악하였다. 다만 지난 3차에 걸친 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두께 30~40㎝의 황갈색사질층이 지표층 바로 아래에 퇴적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1996년과 1997년 조사 때의 층위와 동일한 양상이다. 그러나 현 조사지역이 과거 군부대 막사가 위치하였던 관계로 문화층까지 교란되어진 경우가 많아 유구를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시굴조사 지역의 층위는 각 트렌치 별로 약간의 차이는 보이지만 대체로 6개의 층으로 구분되어진다. 먼저 Ⅰ층인 지표층은 대부분이 교란층으로 두께 10~70㎝이고 깊은 곳은 180㎝ 가량된다. 이 층에서는 군 시설물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폐벽돌과 비닐, 플라스틱 배관, 스티로폼 조각 등의 쓰레기와 함께 백제토기편 및 즐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Ⅱ층은 두께 30~40㎝의 황갈색사질층(10YR 7/8)47)으로 이 층위도 군 시설물의 영향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N0W1, N1W1, N1E1, N3E1, N4E1, N5E1 트렌치에서만 보인다. 이곳에서는 유구와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Ⅲ층은 흑갈색사질층(10YR 3/1)으로 두께 30~60㎝이며 백제토기편만 소량 출토되었다. Ⅳ층은 암갈색사질층(7.5R 3/3)으로 두께 30~60㎝ 정도이며 지표하 90~120㎝에서 확인된다. 유구와 유물은 대부분 이층에서 조사되었다. Ⅴ층은 명갈색사질층(7.5R 5/6)으로 두께 20~30㎝ 정도이다. 이층에서는 N5E1 및 N4E1 트렌치에서만 유구는 확인되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Ⅵ층은 황갈색사질층(10YR 6/8)은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순수 자연층으로 대부분 고운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2. 트렌치별 조사내용

1) N0W1 트렌치

조사지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트렌치로 지표면의 90~100㎝ 아래에서 유구가 발견되었다. 트렌치의 동·서·남벽은 군 시설물로 인해 문화층이 대부분 훼손되었다. 유구는 남벽부에서 주거지 1기와 동벽부 중앙과 북동쪽 모서리 부근에서 각각 수혈유구 1기씩 확인되었다. 이중 동벽부 중앙에서는 즐문토기가 출토되었으며 북동쪽 모서리의 유구는 일부 교란되었다. 유구 내부는 모두 점토와 목탄이 섞인 암갈색사질토가 충진되어 있다.

2) N1W1 트렌치

N0W1 트렌치의 북쪽에 위치하며, 깊이 100~110㎝에서 암갈색사질층이 확인되었다. 트렌치 내부는 남벽부를 제외하고 군 시설물로 인해 문화층까지 완전히 교란되었으나 유구의 흔적이 남벽과 서벽 단면상에서 확인된다. 특히 남서쪽 모서리에서는 벽체나 노지로 추정되는 황갈색 진흙이 단면에서 반원형태로 관찰된다.

3) N2W1 트렌치

문화층인 암갈색사질층은 지표 하 100㎝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이 트렌치 역시 군 시설로 인해 서벽과 남벽 그리고 동벽의 문화층까지 대부분 교란된 상태이며, 내부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있다. 다만 트렌치 동쪽 토층단면에서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노출되었다.

4) N3W1 트렌치

N2W1 트렌치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N3E1과 인접하여 있다. 지표 하 100~120㎝에서 유구가 확인되었다. 노출된 유구는 원형의 수혈유구 2기와 중복된 장방형과 원형의 주거지가 있다. 원형의 수혈유구와 남쪽의 장방형 주거지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하강조사를 실시하였다.

트렌치 남쪽의 동벽에 연접하여 노출된 장방형주거지는 서벽에 붙어 연장되고 있으나 둑 붕괴를 고려하여 노출된 부분의 절반만 절개하여 조사하였다. 바닥과 벽체는 별도의 시설을 하지 않았다. 유구 전체를 조사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으나 형태와 규모로 볼 때 주거지로 판단된다. 규모는 깊이 50㎝, 길이 310㎝이다. 또한, 장방형 주거지 하부의 원형주거지에서는 벽체에 황갈색의 점토가 다량 함유되었다. 유물은 내부퇴적토에서 회청색경질타날문토기 구연부편과 빗살무늬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트렌치 북쪽의 원형유구는 서쪽으로 이어지는 원형의 유구와 중복되어 있다. 조사결과 벽체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바닥 역시 소형의 강돌을 이용하여 마무리하였다. 유구의 중앙부에서 불먹은 모래와 목탄이 소량 노출되었으나 유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에서는 즐문토기편과 적갈색, 회청색 타날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으며, 벽체와 바닥에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아 저장용 수혈유구로 추정된다. 규모는 깊이 110㎝, 폭 220㎝이다.

5) N4W1 트렌치

유구는 깊이 100㎝ 아래의 명갈색사질층에서 노출되었다. 군 시설물이 트렌치와 평행하게 설치되어 문화층까지 교란되었다. 트렌치 중앙에서 원형의 수혈유구가, 동남벽 모서리에서는 수혈로 보이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트렌치 중앙의 수혈유구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의해 파괴되어 반원형의 윤곽선만 확인된다. 벽체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바닥은 작은 강돌을 이용하여 마무리하였다. 유구의 일부분만 조사하여 형태와 성격은 분명치 않지만 주거지로 보기에는 소형이며 깊이가 깊은 것으로 볼 때 저장용 수혈유구로 판단된다. 내부퇴적토에서는 대형옹편·호 구연부편·즐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규모는 깊이 100㎝, 폭 230㎝이다.

6) N5W1 트렌치

콘크리트 구조물에 의해 문화층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지표 하 70㎝ 지점에서 황갈색사질층이 노출되었는데, 이는 다른 트렌치에 비해 약 50㎝ 정도 상면에 해당된다. 토층의 높이로 볼 때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원지형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7) N1E1 트렌치

지형의 제한으로 인해 동쪽의 7m 구간만 조사한 결과 암갈색사질층에서 주거지로 판단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범위확인을 위해 그리드 전체를 확장하였는데, 문화층은 군 시설물과 연탄재 및 각종 쓰레기 등의 매립으로 인해 절반가량이 교란되었다.

유구는 주거지 5기·수혈유구 2기가 노출되었다. 그리드의 중앙에서 4~5m 정도의 폭으로 목탄과 점토가 평행하게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는 ‘凸’자형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凸’자형 주거지의 하부에서 선대의 것으로 보이는 2기의 유구가 중복되어 조사되었다. 그러나 교란이 심하여 윤곽선은 분명치 않다. 남벽에 붙어 조사된 장방형의 주거지는 중앙부에서 부뚜막 시설로 보이는 석재들이 노출되었다. 또한, 동벽에 접해서 주거지의 바닥면으로 판단되는 부정형의 유구 2기가 확인되었는데 바닥면에서 비닐 및 시멘트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의 상면은 훼손된 것으로 판단된다. 타원형 수혈유구 2기가 서벽의 중앙부에 인접하여 조사되었다. 한편, 확장 트렌치의 중앙부에는 근래에 조성된 배수시설의 흔적이 있다.

8) N2E1 트렌치

N2E1 트렌치는 인접한 N1E1 확장트렌치와 입지조건이 동일하여 동쪽으로 7m만 조사하였다. 유구는 지표면 120㎝ 아래에서 노출되었으며 유구의 범위와 분포를 확인하기 위해 확장하였다. 그 결과, 각종 쓰레기 매립으로 인해 문화층의 절반정도가 교란되었으며, 황갈색사질층에서 주거지 2기·수혈유구 2기가 노출되었다. 유구는 확장트렌치 서쪽에서 폭 3~5m 정도에 남북 장축으로 관찰되나 중복상태가 심하다. 확장트렌치의 동쪽으로 군용 폐기물과 함께 연탄재, 시멘트구조물, 자갈과 모래 등이 있으며, 후대 배수시설의 흔적이 남북방향으로 길게 남아 있다.

9) N3E1 트렌치

군 시설물로 인해 동벽은 전체적으로 교란되었으며 유구의 상면도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유구는 깊이 100~120㎝ 아래에서 확인된다. 조사된 유구의 윤곽선은 분명치 않지만 주거지가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백제토기만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주거지로 판단된다.

10) N4E1 트렌치

지표 하 100~110㎝의 깊이에서 유구가 노출되었다. 남벽에 70㎝ 정도의 콘크리트구조물이 문화층을 파괴하고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서는 2기의 주거지가 잔존해 있다. 모두 동벽에 인접하여 남북방향으로 길게 노출되었으나 중복관계가 심하여 전체적인 형태는 불확실하다. 다만 내부에서 백제토기만 출토되고 있어 백제주거지로 판단된다.

11) N5E1 트렌치

시굴조사지역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트렌치로 우천시 침수와 붕괴가 이어져 조사를 진행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총 2기의 유구가 지표 하 100~120㎝에서 노출되었다. 북동벽 모서리에는 두께 50㎝, 높이 1m 가량의 사각형 콘크리트구조물이 문화층을 파괴하고 설치되어 있다. 이 구조물로 인해 북쪽은 대부분 교란되었지만 유구로 보이는 윤곽선이 바닥면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동벽 중간지점, 즉 콘크리트 구조물 밑으로 연접하여 부정형의 유구가 노출되었다. 한편, 동남벽 모서리에서 확인되는 유구는 윤곽선이 인접한 N4E1 트렌치의 북쪽 유구 윤곽선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N4E1 트렌치 북쪽유구와 동일유구로 판단된다.

Ⅵ. 遺構와 遺物에 대한 檢討

육계토성에 대한 정밀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육계토성은 외옹성을 지닌 토축의 평지성임이 확인되었으며, 부분적으로 노출된 기단부를 조사한 결과 2~4단 정도의 기단석을 쌓고 그 위에 성토하여 축성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시굴조사 결과 주거지 15기, 수혈유구 11기, 용도 미상 유구 1기 등 총 27개의 유구가 확인되어 96·97년도 조사지역과 연계하여 육계토성의 공간구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 장에서는 조사결과에 따른 유구의 기본적인 현황에 대하여 검토하고 출토유물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遺構

이번 시굴조사는 총 11개의 시굴트렌치에서 ‘凸’자형 주거지 1기를 포함한 주거지 15기와 수혈유구 11기, 용도 미상 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다만 유구간의 중복상태가 심하고 트렌치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조사하여 유구의 성격별 개수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조사자 입장에서 각 트렌치별 유구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유적 전체를 이해하는데 유리 하리라 판단된다.

유구의 하강조사는 N3W1과 N4W1 트렌치의 유구 가운데 윤곽선이 명확한 2기의 원형 수혈유구와 1기의 장방형 주거지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N3W1 트렌치의 수혈유구는 깊이 110㎝, 지름 220㎝로 벽체는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바닥은 작은 강자갈을 이용하여 처리하였다. 또한 N4W1 트렌치의 원형 수혈유구는 벽체와 바닥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유물은 내부퇴적토에서만 소량 수습되었다. 이로 볼 때 이번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수혈유구는 저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2. 遺物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토기류이며 적은 량이다. 시대로 보면, 백제 토기가 주를 이루며 경질무문토기와 신석기시대 즐문토기가 소량 수습되었다.

백제토기는 대부분 Ⅳ층인 암갈색사질층에서 수습되었다. 모두 잔편이라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이 많았는데, 구연과 저부 등을 보고 기종을 추정해 보았다. 대부분이 호·옹이며 이외에 발·동이·기대·파수부 편 등이 확인되었다. 이중 N5E1 트렌치 교란층에서 발견된 옹 구연부편의 아래쪽에 방형의 구멍이 뚫린 것이 있는데, 이는 다른 한성백제기 유적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어 주목된다.

기대편은 발견된 예가 드문 기종에 속하는 것으로 N5E1 트렌치 교란층에서 수습되었다. 원통형에 연한 황갈색을 띠고 외면에는 돌대가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나 잔편이라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현재까지 기대가 출토된 한성백제기 유적으로는 한강유역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이천 설봉산성, 포천 자작리 유적 등이 있다.

이외에 동이와 완류, 파수부편이 각각 1점씩 있는데, 동이류는 구연이 90° 정도로 외반되었고 완은 동체부만 확인되었다. 파수부는 적갈색을 띠며 끝이 잘려 뭉툭한 형태이다.

경질무문토기는 총 4점으로 이중 구연이 남아있는 것이 2점 있다. 잔존해 있는 것으로 보아 호로 추정된다.

즐문토기는 대부분 Ⅳ층인 암갈색사질층과 유구 내부퇴적토 그리고 지표에서도 일부 채집되었다. 작은 편들이라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밝은 황갈색을 띠며 태토는 무문토기태토와 유사한 것으로 다량의 석립과 사립이 포함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굴조사라는 한계는 있지만 출토된 유물의 양도 적고 기종이 비교적 단순한 편에 속한다. 백제토기는 호·옹류와 동이류, 완류, 발류 등 일상 생활용기가 대부분이나 기존 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기대편이 확인되어 앞으로 유적의 성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전체 유물의 양상과 지난 조사와 비교해 볼 때 대략 3~4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빗살무늬토기편은 무문토기와 태토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인근의 구석기 유적을 비롯한 선사유적이 산재해 있어 이 지역이 오랜 시기 동안 인간이 거주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음을 확인케 해준다.

Ⅶ. 調査成果와 意義

이번 시굴조사의 목적은 그동안 개략적인 보고에 그쳤던 육계토성에 대한 범위와 규모, 성벽, 시설물 등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통하여 토성의 현황과 구조를 파악하고, 군부대 이전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유구의 분포범위를 확인하여 앞으로 체계적인 학술조사 방안을 세우고 유적의 장기적인 보존정비대책을 수립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지표조사 지역이 대부분 경작지화 되어 있고, 성벽 상면은 인삼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좀더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시굴조사지역 역시 토지소유주와의 마찰로 인해 정상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실시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결과 새롭게 드러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육계토성 내부 시굴조사에서 총 11개의 트렌치 조사를 실시한 결과 N2W1, N3W1, N5W1 트렌치를 제외한 모든 트렌치에서 ‘凸’자형 주거지를 비롯한 주거지 15기, 수혈유구 11기 등이 조사되었다. 유구는 후에 군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상층의 대부분이 교란되었지만 조사지역 서쪽의 하층 유구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둘째, 추정문지 2개소, 고대지 2개소, 수구지 1개소, 추정외옹성 1개소 등의 성내 시설물이 조사되었으며, 남벽부가 잔존해 있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기존조사에서는 북벽 일부와 동벽 및 남벽 일부구간만 잔존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이번조사를 통해 현재 성내부의 주출입로 서쪽에 성벽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수해로 유실되어 지금까지 불확실했던 서벽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어 향후 복원·정비계획 수립에 단초를 제공하였다.

셋째, 유물은 경질무문토기를 비롯하여 백제 한성기에 사용된 저장용 생활용기인 호와 옹이 주류를 이루며, 이외에 기대편과 동이류 및 완·발류 등이 출토되었다. 기존의 조사와 비교해 볼 때 기종의 구성은 거의 유사하나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 등의 기종이 비교적 적게 출토된 차이점이 있다. 또한 지난 96, 97년 조사에서는 즐문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어 신석기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번 시굴조사에서도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석기 유물이 소량 출토되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또한 기존 조사 유물에 대한 재정리 과정에서 한양대 2호 주거지 출토 고구려 유물과 같은 장동호·대상파수호·철기류·기와 등의 고구려 유물이 다수 확인되었는데 이는 백제 이후 고구려에 의해 일정기간 이 성곽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웹사이트: http://www.cha.go.kr/

연락처

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