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분야에서 만개한 디지털 정보 처리 기술이 A/V 가전에 접목되면서, 가전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장미빛 기대가 담겨있다. 그러나 DV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디지털 TV 등 디지털 가전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볼 때 시장은 그 때의 기대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휴대폰, Device(LCD, 메모리 반도체 등), 백색가전 등에 비해 디지털 A/V 가전의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국내 가전 기업들은 특히 디지털 TV를 디지털 가전의 핵심적인 사업 기회로 여기며 주력해왔으나, 아직은 DV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등 다른 디지털 A/V 가전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왜 디지털 TV 사업에서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이 향후 지속될 것인가? 어려움을 잘 버텨낸다면 살아남을 국내 기업들에게 유리한 사업환경이 조성될 것인가? 디지털 TV 시장에서 어려움의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시장성 및 기회요인을 재점검해 보기로 한다.
저수익의 늪에 빠진 디지털 TV 시장
LCD TV, PDP TV를 중심으로 디지털 TV 시장은 외형적인 규모 면에서는 양호한 성장을 하고 있다. 디지털TV는 2003년 이후 연평균(CAGR) 43%의 높은 성장을구가하면서 2005년에는 6,400만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 성장의 주축을 이루는 LCD TV, PDPTV의 경우 2003년에서 2005년까지 각각 연평균 115%,109%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눈부신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급격한 가격 하락으로 인한 저수익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LCD TV 1위 업체인 샤프의 경우 2001년 10% 수준이었던 영업이익률이2004년 4%대로 하락했다. 그 밖의 상위권 기업들 역시2%대의 낮은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으며, 소니는 적자까지 기록했다. PDP TV의 경우에도 마쓰시다가 5%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적자 혹은 1%대의 낮은 영업이익률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저수익의 원인은 신규 경쟁자들의 대거 진입으로 인한 급격한 가격 하락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LCD, PDP 등 핵심 부품의 손쉬운 외부 조달을 통해 디지털 TV 제조가 용이해지면서, 중국 기업, IT 기업 등다수 기업들이 디지털 TV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있다. 특히 Dell, HP 등의 IT 기업은 PC 시장에서 가격파괴를 불러왔던 온라인 유통 채널을 활용하여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중소 전문 기업들 역시 낮은 간접 비용, 저렴한 부품 소싱 등을 통해 가격 인하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디보스, 이레전자, 디지털디바이스 등 전문 기업들은 기존 가전 기업에비해 3~4개월 앞서 가격 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적 가격 하락으로 평판 TV의 경우 지난 2년 동안 매년 20~30%씩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CRTTV의 성장기 가격 하락이 15~20%였음을 고려할 때 매우 가파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TV 시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매력도와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디지털 TV 사업우선 디지털 TV는 시장 매력도 측면에서 타 디지털A/V 가전들은 압도한다. 디지털 TV는 시장 규모 면에서 약 900억 달러(2005년 추정)의 전체 A/V 가전 시장중 3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품목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Lehman Brothers는 2005년 TV가 500억 달러의시장을 형성할 것이며, 이중 LCD, PDP 등 디지털 TV는 2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DVD 플레이어(190억 달러), 오디오 기기(120억 달러),디지털 광학 기기(120억 달러) 등 다른 가전 제품에 비해 매우 큰 규모이다. 미래의 성장 잠재력까지 고려한다면 디지털 TV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디지털 방송의확대, 지속적인 가격 하락 등의 요인으로 디지털 TV의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DisplaySearch, iSuppli 등 주요 전망 기관들은LCD TV, PDP TV가 향후 3~4년 동안 연평균(CAGR)30~40%의 고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TV는 디지털 A/V 가전을 대표하는 품목으로서 가전 기업들에게는 전략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디지털 TV를 시장에 선보이는 것은 해당 기업이 디지털 A/V 가전 사업을 제대로 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며, 실제 사업에 있어서도 타 제품의 판매에 시너지 효과를 주게 된다. 따라서 디지털 TV 사업에서철수한다면, DVD 플레이어, STB 등 디지털 TV와연결되는 제품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어다른 디지털 A/V 사업 수행에 차질을 빗게 된다.
3~4년 내로 구조 조정기 도래 예상
이렇듯 시장 매력도 뿐만 아니라 제품 리더십 측면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저수익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TV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출혈 경쟁으로 인한 저수익 구조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동안에는 기업들이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디지털 TV 시장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노력 여에 따라 시장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요 전망 기관의 LCD TV, PDP TV 시장전망치를 종합해보면, 100%를 상회하던 성장률이2006년을 기점으로 두 자리 대로 낮아지며, 2009년경에는 10%대의 안정 성장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고성장에서 안정 성장으로 성장 국면이 바뀌는 3~4년 후부터는 하위 기업들이 퇴출되는구조 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률 둔화는경쟁과 가격 급락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이때 하위기업들은 성장성이 둔화되는 시장에서 저수익을 견디면서까지 경쟁을 지속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특히 중소 전문 기업의 경우 취약한 자본력으로 인해 저수익 구조를 견뎌내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구조 조정기를 시장 주도권 확보의 기회로
그러면 구조 조정기를 지나면 디지털 TV 시장 여건은좋아질 것인가? 경쟁 격화로 인해 급격한 가격 하락과저수익 현상이 생겨났기 때문에 구조 조정기 이후 경쟁이 완화되면 수익성 제고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우리 기업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구조 조정기를 잘 견뎌낸다면 오히려 디지털 TV 사업에서 주도권을 획득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디지털 TV를 둘러싼 경쟁 기업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핵심 부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트까지 생산하는 기업군(Group I) ▲핵심 부품은 없지만 그 동안 가전 시장에서 사업을 수행해온 기업군(Group II) ▲IT 기업, 중국 기업, 중소 전문 기업 등 새롭게 시장에 뛰어든 후발 기업군(Group III)등이다.
이중 LG전자,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가전 기업은 Group I에 속해 있다. 다른 그룹에 속한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부품 보유와 TV 사업경험이 향후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작용한다면 구조 조정기를 견뎌냄은 물론이고 이후의 주도권까지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국내 기업의 차별적인 강점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한국 기업의 디지털 TV1등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 부품이 고강도 경쟁을 견디는 버팀목
우선 LCD, PDP 등의 핵심 부품이 향후 펼쳐질 3~4년 간의 극심한 경쟁을 견디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핵심 부품 보유 기업을 중심으로 경쟁 구도가 재편된 캠코더 시장의 예는 이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캠코더는 초기에 결혼식, 회갑연 등 기념촬영에 한정되어 사용되다가, 점차 소형화되면서 자녀 성장, 개인 취미(여행, 운동) 활동에 대한 기록등 수시 촬영으로 용도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용도 확대를 통한‘1가정 1캠코더’의 시대를 예상한 다수의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많은 기업들은 핵심 부품인CCD(고체촬상소자: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서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하는 부품)를 소니 등의 기업으로부터 외부조달해서 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점차 참여 기업이 늘어나면서 극심한 경쟁이 발생했고, 지난 10년 동안 핵심부품을 가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조정기를 거쳤다. 핵심 부품을 가진 기업이 외부 조달하는 기업에 비해 경쟁 격화로 초래된 가격하락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핵심 부품의 외부 판매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는 한편, 핵심 부품을 저렴하게 내부 소싱하여 세트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함으로써 극심한 경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핵심 부품 보유가 제품 성능의 우월성을 지원함으로써 질적인 측면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현재 캠코더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니의 경우 CCD라는 핵심 부품을 바탕으로 캠코더의 영업이익률을 15%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LCD TV, PDP TV 산업 역시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 모듈을 자체 조달하는 기업들이 향후 구조 조정기의 가격 경쟁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 모듈이 캠코더의 CCD와 같이 제품의 성능을 크게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발 기업들은 대부분 LCD TV, PDP TV를 생산하고있는 기업들로부터 디스플레이 모듈을 조달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저수익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TV 사업 경험이 경쟁력으로 연결
TV 사업 경험 역시 중국 기업, IT 기업 등 후발 기업에대한 경쟁 우위로 작용할 수 있다. 우선 TV 사업을 통해 쌓아온 화질 구현 기술력은 후발 기업들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역량이다. CRT(브라운관) TV 시장에서의 예를 들어보자. CRT는 LCD, PDP 등이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의 디스플레이로 꼽혀왔으며, 최근까지도 중저가 제품을 중심으로 TV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CRT를 생산하는 기업은 소수이며, 이들 기업에게서 부품을 납품 받아 생산하는 세트기업들간의 품질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같은 부품을 사용하면서도 화질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은 CRT TV와 마찬가지로 LCD, PDP TV 등 평판 TV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즉, 같은 모듈을 사용해제품을 만들어도 화질 기술력의 차이로 기업간 제품 성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Sony, LG전자,삼성전자 등 주요 가전 기업들은WEGA, XD, DNIe 등과 같은 독특한 화질 구현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통한 성능 차별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제품 성능차이는 평판 TV에서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평판TV의 경우 CRT TV와는 달리 High-end 제품으로 화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가 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전 시장에서 구축해온 브랜드 이미지 역시 후발기업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브랜드는가전 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2005년DisplayBank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TV 구매 시 주요 고려 요소 중 브랜드가 가격 및 성능과거의 비슷한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 기존 가전 기업들의 경우 이미 수 십년 동안 가전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이미지를 구축해왔으며, 후발 기업이 이러한 브랜드 인지도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TV, 1등 한국을 기대하자
한국의 가전 기업이 TV 사업 경험을 통해 후발 기업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핵심 부품 보유의 강점을 충분히발휘한다면, 디지털 TV 분야의 세계 1등도 기대해 볼 수있다. 앞서 분류한 경쟁 기업군 중에서 Group II에 속하는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17.9%(LCD TV), 17.6%(PDPTV)이며, Group III의 경우에는 26.4%(LCD TV),16.4%(PDP TV)에 이른다. Group I에 속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쟁 구도가 재편되면서, Group II, III 시장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획득한다면 한국 기업이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의 디지털 TV 세계 1등은 국내 가전 기업이시장 주도권을 쥐는 Big Player로 도약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를 통해 안정적인 고수익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디스플레이에서 한국이 누리고 있는 세계 1등의 지위를 디지털 TV에서도 실현하게 될 날을 기대해보자---김성환 산업기술그룹 선임연구원
웹사이트: http://www.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