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먼저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일과 관련 “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정치인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결정해야 될 일이 많고 이런 일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매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미래를 멀리 내다보면서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통령의 자리이고, 시간이 걸리는 그만큼 사고를 멀리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균형발전, 지방발전 얘기할 때 그 정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어 가시화되고 판이 짜질려면 30년 가야 가능한 일이고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이라며 “이런 점에 대해 이해를 함께 해 달라는 당부를 드린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는 “국가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면 빨간불, 파란불이 교차하고 있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경쟁력 관점에서 볼 때는 파란불”이라면서 “이해관계가 대립 충돌하는 그런 정책과제들을 해결 못하고 뒤로 미룰 때 그것이 우리 한국사회의 경쟁력뿐만 아니고 국민 통합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걱정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갈등 영역의 개혁은 아직 해결 안 됐다. 중요한 것은 갈등 과제를 개혁해야만 비로소 한국사회가 미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대화의 정치, 타협의 정치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남은 기간 대통령이 역점을 둬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와 같은 우리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국민들과 더불어서 함께 논의해 나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내년 초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국민에게 진지하게 제안할 몇 가지를 정리해서 제출하겠다”면서 “미래 과제와 그 과제를 잘 해결해 갈 수 있는 우리들의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또 경제정책 운영에 대해 “무리한 처방을 한 경제정책은 그 뒤에 반드시 경제 주름을 남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내다봐야 하는 국사가 있고 그 문제를 본질적으로 다루게 돼있다”며 “그럴 수밖에 없는데 그걸 놓고, 그거 다 덮어놓고 그날그날 경제 숫자나 챙기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10·26 재선거와 여당 대응과 관련, “잘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결정된 것은 결정된 대로 가는 것이 원칙이고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대로 가는 것이 정도”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의 의견은 말했지만 그 이상 개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의 자율에 속해 있는 문제다, 그 원칙을 견지해 왔고 앞으로도 견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대통령의 출입기자단 오찬 발언 전문이다.
- 오늘 일정은 재보선이나 당의 변동 혹은 일이 생기기 전에 잡은 일정입니다. 보선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정기국회이고, 결과가 어떻든 큰 변동 없이 갈 것이라고 보고 일정을 잡았던 것입니다.
- 요즘 대체로 궁금해 하는 것 중에 대통령은 무슨 생각하는가, 지난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나머지 계획은 뭔가, 크게 보면 그게 중요한 일일 겁니다. 나머지 최근의 현안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궁금해 할 테고.
1. 대통령의 역할과 국정운영 구상
- 지금 내가 대통령을 맡은 지 2년 반을 조금 넘어선 셈입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중에 자기 임기 안에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은 참 적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 그저께 국립중앙박물관 다녀오면서, 그 일은 김영삼 대통령이 결심하고 시작해 놓은 것인데 개관 축사는 내가 가서 하고, 사진도 내가 찍고 하는 것을 보고 대통령 일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정파적 이해에 얽매어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거듭 느낍니다.
- 얼마 전에 대통령 헬기 구입하는 건이 있었습니다. 얼른 생각에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은 헬기 멀쩡한데 왜 사냐 하는데, 그 헬기는 내년에 도입이 됩니다. 제 임기 중에 1년 남짓 타고 나면 다음 대통령 몫이죠.
- 또 지금 우리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 비행기)가 있습니다. 공군 1호기는 일본과 중국을 간단하게 실무적으로 나들이하는 경우 이상으로는 쓸 수 없습니다. 국내용이죠. 미국을 가고 유럽을 가고 멀리 정상외교를 위해서 가게 될 경우에는 1호기로는 안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 장만을 한다든가 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게 적용되는 시기는 제 임기 중이 아니고, 아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 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겁니다.
- 지금 우리가 계산해야 할 것은 대통령 순방용 비행기를 임대해서 쓰는 것과 전용기를 하나 장만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게 경제적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총리의 순방외교가 있을 때도 저만한 비행기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이냐, 국가정상의 품위 등을 고려할 때 어느 게 맞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시점은 10년 뒤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지금 계획을 세워 발주해도 들여오는데 한 10년 쯤 돼야 합니다. 나와 관계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없죠.
- 그래서 대통령이 생각해야 하는 게 우리 정부, 내 임기 중의 일과 별 관계없는 일도 참 많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일이 대부분입니다.
□ 대통령에겐 미래 내다보며 결정해야 할 일이 대부분
- 큼직큼직한 국책사업을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행정중심복합도시,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거기에 따르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남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S-프로젝트 등이 있습니다. 이런 계획과 전체 농촌 공간을 새로운 개념의 생활공간으로 구축하는 문제라든지, 이런 문제는 보통 시작하고부터 5년 지나야 첫 삽을 뜰 수 있고 그것이 현실로서 국민들의 생활에 와서 정착되는 데는 20년, 30년 걸려야 되는 사업들입니다. 그런 것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뭘 생각하고 또 결단해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 자리입니다.
- 다행스럽게도 직업 공무원제도가 우리나라에 탄탄히 뿌리내리고 있어서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정파적 이해관계나 관점에 관계없이 행정의 계속성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하는 사람들도 몇 년 안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물러줘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계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정치인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결정해야 될 일이 많고 이런 일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매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 행정중심복합도시나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은 단기적으로 보면 건설 일거리죠. 단기적으로는 건설 경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국토의 공간을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산업적 요인이 함께 따라가야 하지만, 어쨌든 국토 공간을 재편성 하는 것입니다. 수도권 1극주의로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석, 판단을 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유지해 가는데, 1극 중심의 체제와 분산-다극화 체제 중 어느 것이 국가경쟁력에 더 유리할 것인가 판단해야 합니다.
- 결국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려 하는 것도 우리 국민의 행복한 삶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1극체제가 아니라 분산-다극화 체제로 전국적으로 골고루 잘 사는 도시를 만들고, 농촌 생태계도 새로운 숲으로 가꿔 생태계도 복원하는 국토 재편성 같은 것을 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의 흐름이나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중될수록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또 한 부류의 흐름의 있습니다. 양쪽 모두 가치의 지향이고 이 둘이 조화롭게 가는 것이 결국은 멀리 내다볼 때 좋은 나라 만드는 길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 항상 이렇게 미래를 멀리 내다보면서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통령의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특별히 통이 크거나 안목이 커서가 아니라 일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기획부터 시작해 결과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 길다는 겁니다.
- 여러 예를 들어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투입부터 산출까지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그만큼 사고를 멀리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짧으면 5년, 보통은 10년, 길면 30년입니다.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균형발전, 지방발전 얘기할 때 그 정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어 가시화되고 판이 짜질려면 30년 가야 가능한 일이고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 이해를 함께 해 달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 누가 애국적이고 소신 있는 지도자인가 : 캐나다의 사례
- 1988년 말 캐나다에서 보수당이 집권했습니다. 그냥 집권이 아니라 169석이라는 압도적 승리로 집권했습니다. 멀러니 수상이 그 지지를 믿고 91년에 연방부가세 제도를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제조업에 대해서만 제조물 부가세를 매겼는데 모든 업종에 대해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법을 만든 겁니다.
- 그러고 나서 93년 선거를 치렀는데 그 결과 169석짜리 과반 정당이 2석 남기고 전멸했습니다. 물론 선거에서 진 이유에는 조세문제뿐만이 아닙니다. 퀘벡주를 보다 긴밀하게 연방 속에 편입하는 안, 즉 퀘벡주 자치를 크게 인정하고 연방에 편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놓고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졌습니다. 거기서 퀘벡 분리주민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또 보수당 당수 캠벨이 상대당 당수 크레티앙의 신체적 조건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역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연방부가세가 민심을 잃게 한 가장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 자유당은 93년 집권할 때 연방부가세 폐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그 결과 자유당이 압승하고 나머지는 각 지역당으로 표가 쪼개졌습니다. 그래서 자유당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크레티앙 수상이 들어섰습니다.
- 크레티앙의 라이벌인 마틴 수상이 재무장관을 맡았습니다. 그 당시까지 지속적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돼 왔습니다. 적자 누적 속도가 빨라 캐나다 정부가 파산 지경에 가 있었는데 파산을 면하기 위해 연방부가세를 도입한거죠. 97년에 와서 캐나다 재정이 드디어 흑자로 돌아섭니다. 그것 때문에 마틴 재무장관이 국민에게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다른 장점도 있으니까 그 한 가지만은 아니지만 역량 있는 정치인이 재정을 흑자로 돌아서게 하니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4년 크레티앙은 자진해서 물러나고 마틴이 수상이 됐습니다.
- 캐나다의 재정이 흑자로 되면서 캐나다 재정상태부터 시작해 전체적으로 캐나다 경제가 활력 있게 돌아간 것은 91년 연방부가세 때문임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멀로니 수상은 물러났고 당은 2석으로 몰락하고 당이 한번 갈라졌다가 다시 통합해 이후 70여석으로 야당을 하고 있습니다.
- 그 당시 자유당은 연방부가세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하고 정권을 잡은 뒤 ‘연구 중이다’, ‘대체수단 강구 중’이라며 미적거렸습니다. 선거 때 크레티앙 당시 당수는 명확히 철폐라는 공약을 말하지 않고 대체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수준으로 말했는데, 당에서 확 밀어서 철폐라는 당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그래놓으니까 집권한 후 힘들었지만 세금제도를 손대지 않았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만 놓고 보면 멀로니와 크레티앙-마틴 중 누가 애국적이고 소신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합니까.
- 캐나다 재정과 경제는 그때 멀로니가 결단하지 않았으면, 만일 지금까지 어떤 결단이 없었으면 거의 파탄 상태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멀로니는, 알고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당을 몰락시키고 캐나다 재정을 구했습니다. -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면서 현실정치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사회라야 가끔 그런 일이 한 번씩 생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나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멀로니 수상을 안 만나봤지만 기자라면 만나보고 싶을 겁니다.
□ 내년 초 미래 과제와 구상에 대해 국민들께 보고할 것
- 지난 임기 절반을 정리해 달라고 얘기하는데 2년 반 정리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2년 반을 정리하고 나머지 2년을 어떻게 꾸려갈 건지에 대한 내 계획을 정리해서 내년 연초와 3주년 그 사이, 즉 1월 1일부터 2월 25일 사이 적절한 시기에 국민에게 발표하려고 합니다.
- 내 생각은 지난날에 대한 평가보다 미래에 대한 얘기, 남은 내 임기 뿐 아니라 우리 한국의 장기적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얘기는 정파적 이해관계나 표를 떠나서 진지하게 하고 싶습니다.
- 왜 그런 것을 모으고 정리해서 얘기하려고 하나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봅니다. 현재 한국경제를 얘기하면 그동안 고생했지만 고비는 넘어섰고 앞으로는 파란불인 것 같다, 순항할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는 순항해도 여전히 어려운 곳은 어렵고 민생은 여전히 빨간불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끊임없이 축소돼야 하는 영역, 대표적으로 농업부분, 재래시장, 전통산업의 중소기업 이런 영역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이 부분이 소위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는 부분인데 이것이 미국의 4배, 일본의 2배 이런 수준입니다. 이런 것이 민생 문제이고, 이 민생 문제는 산업구조 조정 과정에서, 경제구조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이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을 세워 시간을 갖고 질서 있게 축소하고, 거기서 밀려나오는 사람들을 패자 부활전 하듯 다시 경쟁의 대열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도 아니고 당장 부닥친 정책과제입니다. 물론 효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 경제와 민생을 따로 떼지 않고 국가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면 빨간불, 파란불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개 경쟁력 관점에서 볼 때는 파란불입니다. 미래를 내다볼 때도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거의 밝은 파란불입니다.
- 그러나 아시다시피 양극화 문제가 이대로 진전됐을 때, 이해관계가 대립 충돌하는 그런 정책과제들을 해결 못하고 뒤로 미룰 때 그것이 우리 한국사회의 경쟁력뿐만 아니고 국민 통합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걱정해 봐야 합니다.
- 지금 당장의 갈등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 중에 제일 큰 것으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 당장의 갈등과제는 아니지만 미래 문제에 대해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점에 관해 지금 잘 풀어가고 있느냐, 그런 문제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할 때 조금 걱정됩니다. 그와 같은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치 영역에 속하는 일입니다. 정치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일 때 풀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풀지 못한다는 겁니다.
- 한국 사회의 개혁 속도에 대해서 우리 국민도 놀라고 외국 사람들도 놀랍니다. 놀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쪽에는 전혀 개혁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 전 국민과 시민단체가 일사불란하게 요구하는 개혁과제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우리 정부 모두 약간의 속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전체적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개혁돼 왔습니다. 정권이 개혁에 적극적이냐 저항적이냐의 차이가 있고, 떠밀려서 하느냐 주도적으로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속도는 빠릅니다.
- 그 내용은 권력을 합리화하는 것, 소위 권력 힘빼기, 그리고 숨겨진 것을 전부 공개하는 것, 즉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는 일, 그걸 민주화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정치 부문의 개혁은 노태우 정부를 포함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많이 와서 약간 뒷걸음 쳐야 할 정도로 정치적 영역의 개혁은 빠른 속도로 왔습니다.
- 그러나 갈등 영역의 개혁은 아직 해결 안 됐습니다. 노사문제는 2003년에 합의를 만들려고 했는데 못했고 전체 제도 정비하려는 것도 아직까지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밀어붙이는 것보다 합의해야 효과가 크고, 합의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놓아두고 있습니다.
- 개별적 사례 중에도 18년 미뤄놓았던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있습니다. 부안에서 정부가 일패도지했죠. 접근 방법에서 미숙함, 무리함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시점에서 정부의 말과 반대 집단의 말, 둘 중에 정부의 말이 신뢰성에서 현저히 밀렸습니다. 그래서 해결되지 않았죠. 아직 어렵게 풀어가고 있는데 지금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관련해서 현수막이 다 지역감정 부추기는 쪽으로 싸움이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 갈등과제 개혁 없인 미래과제 해결할 수 없어
- 그 외에 여러 영역에서 갈등 문제는 거의 타협된 게 없습니다. 정치영역도 마찬가지이고, 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으면 전부 저축해 버리고 돈을 정상적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소비 안하니까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죠.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 줄여서 얘기하면 권력의 힘을 빼고 권력을 합리화하고 정치와 사회를 투명화 하는 개혁, 전 국민, 전 시민단체, 전 언론이 이의 없이 함께 밀어붙이는 개혁과제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그 점에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개혁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해 한발 앞서 나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어느 정부도 거역할 수 없는 개혁과제입니다. - 중요한 것은 갈등 과제를 개혁해야만 비로소 한국사회가 미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화의 정치, 타협의 정치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우리가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옛날에는 억압의 문제였습니다. 부당한 억압과 맞서 싸우는 게 과제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원칙과 반칙의 문제였습니다. 투명성, 권력의 합리화는 원칙의 문제입니다. 불공정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억압의 문제는 이미 87년 6월 항쟁 때부터 얼추 끝났습니다. 그 후로 게임의 공정성 문제, 즉 권력의 민주화, 투명성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 앞으로 민주주의의 과제는 결론을 낼 수 있느냐, 합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대화와 타협의 역량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정치형태는 두 가지입니다. 다수결로 과반 확보하면 그쪽이 전적으로 권력 행사하고 진 쪽은 다시 집권할 때까지 기다리는 형태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정당이 합의해 결론을 이끌고 문제 푸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가 그런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양쪽 모두, 특히 다수결의 경우에도 일정 수준의 대화와 타협이 전제되고 거의 합의 수준을 70, 80% 정도까지 이뤄놓고, 꼭지 딸 수준까지 합의해 놓고 나머지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수준 높은 다수결제도입니다. - 한국은 다수결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다수결 규칙도 제대로 못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개혁 과제는 더 이상 억압 문제나 투명성 문제가 아니고 민주주의 성숙성 문제, 즉 대화와 타협의 문제라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제의식입니다.
- 권력을 합리화하고 사회를 투명화 하는 문제는 정치권이 거역하지 못하고 어느 정권이든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편을 갈라서 싸우는 문제는 정치권이 해결을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해결을 못하고 심지어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편 가름에 휘둘리는 것이죠. 정치인들이 필요에 따라 국민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이죠. 지역감정 부추기는 것은 다 정치인이 한 것입니다.
- 남은 기간 대통령이 역점을 둬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와 같은 우리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국민들과 더불어서 함께 논의해 나가는 일입니다.
- 내년 초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국민에게 진지하게 제안할 몇 가지를 정리해서 제출하겠습니다. 미래 과제와 그 과제를 잘 해결해 갈 수 있는 우리들의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민생문제 관련 잘못된 문제제기에 대하여
-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민생경제 문제와 관련된 잘못된 문제제기입니다. 대통령이 어디 나가 국민 몇 사람과 악수 몇 번 더하고 몇 번 회의 한다고 민생경제가 금방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얘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환자가 입원 중인데 의사보고 옆에 계속 붙어 있으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2번 회진할 사람 2번 회진하고, 그렇게 해서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게 의사죠. 근데 의사가 입원실 와서 환자 옆에 딱 붙어서 죽으나 사나 주사만 놓으라고 하면 무슨 주사 놓느냐, 증류수 주사, 비타민 주사 외에 할 게 있겠습니까.
□ 경제 ‘무리한 처방’은 반드시 ‘주름’ 남기게 돼있어
- 무리한 처방을 한 경제정책은 그 뒤에 반드시 경제 주름을 남기게 됩니다. 민생경제 문제를 그런 식으로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런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데 정략적 필요에 의해 쓰고 있는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조금 전에 길게 말했지만 대통령이 되면 내다봐야 하는 국사가 있고 그 문제를 본질적으로 다루게 돼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데 그걸 놓고, 그거 다 덮어놓고 그날그날 경제 숫자나 챙기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건 양심의 문제입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논리로 대통령 정치를 평가하는 한 수준 있는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민생경제를 안 챙기겠다는 게 아니고 필요한 만큼 최선을 다 하겠다는 겁니다. 그걸 정략적으로 공격 도구로 삼아 공격하면 정치가 왜곡됩니다.
3. 10·26 재선거 이후 당청관계
-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문제는 잘된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흔히 있어 왔던 일입니다. 모든 정당들이 과거 그와 같은 위기들을 잘 극복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잘 극복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위기를 잘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성숙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내 입장은, 잘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결정된 것은 결정된 대로 가는 것이 원칙이고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대로 가는 것이 정도라는 것입니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당장의 정기국회도 차질 없이 잘 진행되리라 생각합니다.
□ 결정된 것은 결정된 대로,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대로
- 어제 당 지도부라 할 수 없지만 당 중진들 만나 얘기했는데, 3시간 다 이 얘기한 것은 아니고 2시간 30분은 다른 얘기하고 30분 얘기했는데, 대개 큰 틀에서 정기국회 운영에는 큰 지장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나머지는 당에서 협의해서 잘 처리할 것으로 봅니다. 당에 맡긴다고 표현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내 결정으로 당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당에 맡겨져 있고 당이 알아서 풀어갈 문제입니다. 그 이전에도 대통령의 의견은 말했지만 그 이상 개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입할 수도 없습니다. 당의 자율에 속해 있는 문제다, 그 원칙을 견지해 왔고 앞으로도 견지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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