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두창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우두접종도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낙관했지만, 그 이후 새로 발견된 신종전염병의 수는 대략 30종에 이른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비롯, C형 간염, 에볼라 출혈열, 병원성대장균(O-157균) 등 이전보다 더욱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위협
인플루엔자의 위협도 갈수록 만연하고 있다. 거의 해마다 독감이 유행하고 있으며, 독감예방 백신을 맞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십 수 년에 한 번 꼴로 부정기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인플루엔자의 대유행(pandemic influenza)이다.
특히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이른바‘스페인 독감’은 현대판 흑사병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1918년~1919년 사이에 대략 2천만~5천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위생적인 환경과 보건의료 기술의 미비,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필연적인 집단생활과 영양결핍이 피해를 더욱 크게 만든 측면도 있지만, 그 후로도 독감과 그 합병증인 폐렴은 여러 차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1957년 2월에는 중국에서 발생한 독감이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200만 명이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고, 1968년에 발생해 이듬해까지 지속된 홍콩독감 역시 전세계적으로 최대 100만 명의 인명피해를 초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7년에는 러시아에서 대규모 독감이발생했다. UN과 그 산하기구가 나서기 시작했지만, 저개발국과 인구밀집지역에서의 집중적인 인명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7년 홍콩에서 발병한 이래 동남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는 조류에서 인체로도 감염되는 이른바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사람간 전파를 통해 대량의 인명을 살상하는대유행 전염병으로까지 변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발생지역이 동남아시아권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UN과 미국은 올해 들어 바짝 경계의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게다가 지난 10월 초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87년 동안이나 냉동 보관돼 오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을 분석한 결과 현재의 조류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특성을 보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돼지 같은 중간감염체(숙주) 없이 직접 감염으로 조류를 죽일 수 있으며 인간에게도 감염된다는 점이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람간 전파까지 가능하게 되면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던 과거의 대유행이 재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WHO는 지난 5월, 조류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에‘세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계획(Global Influenza Preparedness Plan)’의 수정안을 내 놓으면서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단계를 재정의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현 상황을 제4단계(Phase 4)로 규정하면서 바이러스가 인체에 아직 잘 적응하지 못하여‘사람간 전파가 소규모로 일어난다’고 명시함으로써 사람간전파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산하에설치된 질병관리본부에서 정하고 있는‘대유행의 위험수준별 단계’에서 주의보가 발령될 개연성은 결코 작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WHO 이종욱 사무총장은‘조류 인플루엔자의 인간 대 인간 감염과 전세계적인 대유행은 시기와 정도가 문제이지 반드시 일어날것’이라고 예측했다.
WHO는 조류 인플루엔자가확산될 경우의 공식 인명 피해 예상치를‘200만명에서 740만명’수준으로 발표했지만 그 이전에 WHO의 조류독감 방역담당관인 나바로 박사는‘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최대 1억 5천만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아래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확산되는 단계에 따라 미치게 될 경제적 영향을 조류 인플루엔자의 확산 정도별 시나리오를통해 살펴 보도록 한다.
대외거래 위축 및 양계 관련 산업의 대규모 피해
최근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는 아직 국내로는유입되지 않았으며 해외에서도 발생지역에서 극심한 피해를 낳고 있지는 않다. 사람간 전파를 통한 대규모 감염사례도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본연구원의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 시나리오상의 <Ⅰ단계>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경제적 파장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조류독감이 발생한 나라가 우리나라와 교역량이 많은 나라일 경우 그 지역으로부터의 가금류 수입이나 그 지역으로의 관광 등이 감소하고 해당국가의 경제활동이 둔화됨에 따라 그 나라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이 줄어들가능성이 있다. 지난 2004년 베트남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일시적이나마 급감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Ⅱ단계>는 사람간 전파가 발생하지 않은상황에서 조류독감이 국내에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경제적 피해의 범위는 해외 부문뿐만 아니라 국내의 가금류, 특히 양계농가 및 그 가공,판매업체가 입게 되는 직접적인 피해로까지 확산된다. 이 경우 가금류의 생산 및 유통이 상당 부분 중지될 수밖에 없고 감염된 가금류에 대한 도살 및 폐기처분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된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기준 GDP에서 닭고기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0.19%로 중국(0.41%)이나 인도네시아(0.83%), 필리핀(0.71%)등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가금류의 생산,가공 및 유통산업이 입을 피해 정도 역시 이들 나라보다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월 5일을 기준으로 2004년 이후 베트남에서는 1천 5백만 마리의 조류가 살처분됐다. 베트남에서 사육되는 총 닭 수 2억 3천 3백만 마리의 6.5% 정도에 해당하며, 한 마리의 가격을 3달러로 계산했을 때 대략 4천 5백만 달러의 생산액이 상실된 셈이다. 폐기처분이나 방역에 드는비용까지 감안하면 폐사 및 살처분으로 인한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12월과 2004년 2월 사이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해, 인체감염자는 생기지 않았지만 닭 500만 마리가 살처분된바 있다. 지난 2004년 발병해 국지적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베트남의 조류인플루엔자 사례와 유사한 위험도를 가정하고 우리나라에서 예상되는 피해규모를 잠정적으로 추정해 보면 가금류(주로 양계)의 살처분은 대략820만 마리, 닭 한 마리의 가격을 3천원으로 가정하면 대략 250억 원어치의 폐기처분이 일어날것으로 예상된다. 좀 더 나아가 세계은행이 제시한‘비관적 시나리오’대로, 조류축산농가 활동 6개월 분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GDP 중닭고기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했을때 7천억원이 넘는 부가가치 손실이 발생한다. 이것은 경제성장률이 대략 0.1%p 낮아지는 것에 해당한다.
사람간 전파 발생시 경제적 피해 급증조류 인플루엔자가 조류가 아닌 인류에게도대규모 재앙이 될 것인지의 여부는‘사람간 전파’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사람간 전파가 이루어진 것으로규명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지만,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2003년), 베트남(2005년) 등지에서 사람간 전파 가능성이 수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그리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전자재조합(reassortment)이나 적응변이(adaptive mutation) 과정을 거쳐 사람간 전파,특히 호흡기 감염이 가능한 형질을 획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WHO를 비롯한 해외 전문가들도 사람간 전파가발생할 가능성을 오히려 조심스럽게 열어 두고있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사람간 전파가 시작된 반면에 국내에서는 아직 발병사례가 나타나지 않는 <Ⅲ단계>의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진원지가 인접한 중국및 동남아시아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앞에서 설명한 <Ⅰ단계> 및 <Ⅱ단계>로부터 곧바로 <Ⅳ단계>로 진행될 개연성도 크다.
<Ⅳ단계>는 해외에서 사람간 전파가 일어나지역에 따라 집중적 발병이 일어남과 동시에 국내에서는 사람간 전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적으로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병이 보고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 경우 조류 인플루엔자 만연 국가와의 교역 및 인적 이동이 크게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무역의 이익이 줄어들고해당 국가를 상대로 하는 각종 업무도 크게 차질을 빚게 된다.
일례로 홍콩에서 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이 발생한 2003년 2분기의경우, 방문자 수는 분기당 40만 명 수준에서 20만 명 미만으로(50% 감소), 평균 80% 내외를 유지하던 홍콩 지역의 호텔객실 예약률은 20% 수준으로 급감(75% 감소)했다. 3~4개월이 지나면서 방문자 수와 호텔객실 예약률등의 지표는 예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치명적인전염병이 사람들 사이로까지 전파되면서 그 지역을 방문하는 외래인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드는현상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국내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의 사람간 전파가 발생하고 발병 지역이 확산되는 <Ⅴ단계>의경우 그 경제적 파급 효과는 양계 및 관광산업 또는 대외거래 등 특정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전반으로 확산된다. 피해가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 및 전국적 범위로 확대되면서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민간소비 전반의 위축을 야기한다.
이 경우 우리나라가 받게 될 경제적영향은 2003년 사스 발병 당시의 홍콩 국내 상황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외국인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관광수입 등 서비스산업의 활동이크게 둔화될 것이다. 200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방문객 수는 580여 만명으로 이들이 지출한 금액은 약 57억 달러에 달한다. 홍콩에서 사스가 발병했을 당시와 비슷한 정도로 방문객 수가 감소하는 기간이 6개월 간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20억 달러가 넘는 관광수입이 줄어든다.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비스업 부문을 중심으로 한 민간소비 둔화는 우리 경제를 또 다른 침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수 있다. 국내에서 사스 발병 당시의 홍콩과 같이 민간소비가 3분기 연속 3~4% 감소한다면 부가가치 기준으로 8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민간소비 둔화뿐만 아니라 대외거래 위축의 효과까지 감안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진다.
2000년대 들어8~10%의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중국은 사스가확산되면서 2003년 2분기 경제성장률이 7%대로떨어졌다. 중국 독감이 만연했던 1958년 미국 경제도 이전 10년간의 평균 경제성장률 3.9%에 크게 못 미치는 마이너스 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최악의 경우 생산활동 위축, 금융시장 혼란심화로 인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훼손될 우려마저 있다. 감염자가 속출해 대량의 인명 피해가발생하고 불안 심리가 확산될 경우 외출, 출근,등교 등 정상적인 사회활동 자체가 어려워진다. 경기부진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의 도산이 늘어나 실업률은 높아지고 금융기관의부실채권이 급증할 수 있다. 그 결과, 주가, 원화가치, 부동산가격 등 전반적인자산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망자 뿐만 아니라 환자 및 생존자들이 겪게 되는 병고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감안하면 단순한 경제성장률의 하락 이상의 막대한 피해로 귀결된다.
사태 악화 가능성에 면밀하게 대비해야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간 감염이 현실화되고 감염자가 늘어날 경우 그 경제적, 사회적 파장은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인류는 흑사병, 스페인 독감과 같은 질병의 대유행을 경험한 바있지만 현재 상황은 당시에 비해 훨씬위험성이 높다. 수 많은 사람들이 보다좁은 도시에서 밀집되어 생활하고 있다. 교통 및 운송 수단의 발달로 질병은 더욱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 생산의 글로벌화 및 국가간 분업화로 인해 특정 지역 및 국가에서의 발병은 수 많은 기업과 국가의 경제활동에 차질을 초래할 것이다.
특히,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한 중국의 경우 인접국가들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빠르게 번지고 있고 과거 사스의 발병 사실 및 현황의 공개를 꺼렸다는 점에서 향후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지역에 속해 있고 과거 발병 전력이있다는 점 이외에도 북한과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위험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보건 및 방역체계가 낙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체제 성격상관련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을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국제 보건기구 및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북한을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발병 및 확산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발병 동향을 파악하고 방역 체계를 강화하는 것 이상의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발병 국가의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기구 주도의 국제적 공조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 발병이 시작되는 순간 그 경제적 파장은 몇 배로 커진다. 일상화되어버린 외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를 감안할 경우 국내 방역의 강화만으로는 질병의 확산을 막는데 불충분하다. 동시에 과도한 불안감 및 비이성적행동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와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다수 대중의 동요가 단순한 닭고기, 오리고기에 대한 기피에서 생필품 사재기, 외출 및 출근 기피, 특정 지역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로 가시화될 경우 경제는 커다란 홍역을 앓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방역및 보건 당국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 및 산업 차원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의 진행 정도에 따른 사전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미리 대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배민근 정책분석그룹 연구원 조영무 경제연구그룹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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