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다시 여론의 초점을 받고 있다. 부산에서 시작된 동영상 사건과 교원평가제 시범실시 때문이다. 이 둘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 의미는 넓고도 깊다. 전교조의 입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떠나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교육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영상 사건의 핵심은 동영상에 담긴 욕설만은 아니다. 동영상은 의 별첨으로 제공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수업안 자체이다.
전교조는 여러 차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공동수업(계기수업)을 시행해 왔다. 공동수업은 주로 시사적인 주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교조는 2000년에 4·13 총선을 앞두고 총선수업, 2002년 SOFA 불평등 공동수업,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과 관련하여 반전평화 수업, 2004년 대통령 탄핵소추 관련 수업, 이라크전 한국군 파병과 관련하여 반전·평화 계기수업, 2005년 6·15남북공동선언 기념 공동수업, 사립학교법 개정 계기수업, 이번에 집중적으로 여론의 포화를 받은 부산전교조의 APEC 수업을 기획하고 시행하였다. 전교조는 시사적인 주제를 대상으로 하는 공동수업은 일반적인 교육 현상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관찰해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시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들이다.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사건들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생관과 국가의 명운이 갈릴 수 있는 중대한 사건들이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나 수학의 방정식과는 차원이 다른 주제들이다.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교사 집단이 공교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피력하는 것을 그냥 교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용인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우선 사회적인 쟁점이 되어있는 내용에 대한 수업을 그런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이념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교육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주제가 된 세계화는 대단히 복잡한 주제이다. 인류 역사상 최근에 등장한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화의 역사적 의미나 파장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수업안에서 그들은 “세계화 시대에 국가간의 협력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더욱더 증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강대국의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고,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협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수업안은 세계화 시대에 국제적으로 필요한 현안들을 처리하는 APEC에 대한 확고한 단정을 담고 있다. “그동안 APEC은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옹호하였으며, 지구 환경 개선을 위한 기후변화협약에 대해 반대하는 등 인류 전체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는 강자의 논리를 편들어왔다”라고 수학 공식을 말하듯이 단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세계화에 관한 글들을 교사용 참고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자료를 읽어본 사람이면 다음과 같은 사설이 전혀 근거 없는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일 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은 정말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들 교육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내용이나 그것을 전하는 말씨가 조폭만도 못한 이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통째로 맡기고 어떻게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 걱정은 전교조가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우리 교육을, 우리 나라를 망치는 것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 하는 것이다.
세 번째 걱정은 이 정권은 전교조와 손잡고 이 나라를 기어코 결딴내고 말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전교조 출신을 대통령 교육비서관으로 들인 이 정권이다.” (조선일보)
“어린 학생들이 전교조의 볼모가 돼 버렸다. 전교조 소속 교사는 10만명에 육박한다. 교원 4명 가운데 1명꼴이다. 전교조는 강한 결속을 과시하지만 다른 교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현 정권은 전교조와 ‘코드’가 비슷하다. 대통령교육수석비서관도 전교조 출신이다. 교육 당국도 전교조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누가 전교조의 궤도 이탈을 감시하고 견제할 것인가.” (동아일보)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중립성을 강조하고 교육기본법 제6조는 교육이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우리는 문제의 동영상이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고 믿는다. 교육부는 이 같은 위헌-위법을 과연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문화일보)
전교조가 지금까지 시행해온 공동수업에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적개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우리 체제가 근본으로 삼고 있는 중심축을 구성하고 있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확대해석하면 전교조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헌법을 훼손하고 체제를 부정할 수 있는 사고를 학생들에게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 체제나 이념 문제를 떠나 어린 학생들에게 적개심과 증오심을 심어 준다는 것은 그것의 대상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화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이런 추세를 거역하는 것은 용감하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자유시장과 시장경제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주는 것이고, 장차 학생들이 몸담고 살아가야할 미래 세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학생들의 도전의식을 죽이는 일이다.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은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불만세력이 되어 미래 사회에서 무능력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미래 세계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교사가 수행해야할 중요한 도덕적 의무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하는 세계가 아무리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어린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신념을 심어주는 것은 교사의 도덕적 의무이다. 미래 사회가 이념적으로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일방적인 신념을 심어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하도록 고무하여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화 논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에 동참할 것인가, 세계화를 거부할 것인가?”에 대해 단순 구호로 대처할 문제는 아니다. 지금 좌파의 세계화에 대한 입장 정리가 그들이 지치지 않고 비판해온 냉전적 반공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을 키워주려고 한다면 일방적인 이데올로기 주입은 삼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상상력과 능력이 없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책임 있고 양심적인 교사의 태도이다.
더구나 본부나 지부에서 학습 자료를 내려 보내는 것은 좌파 관료주의의 극치이다. 집행부의 지시로 움직이는 조직은 이미 창조적인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전조교가 교육적인 신념 때문에 저항하고 고난 받을 때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이미 권력 집단이 되어버렸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자신에 대한 반성 없이 교육에 대한 근본주의에 빠지면 참교사로서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다.
교육소비자의 선택권이 존중돼야
그러나 잘못이 전교조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전교조의 이념이 발붙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일조하였고, 자식의 성적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반성은 전교조뿐만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방관한 교육자들과 그것을 모르면서 방관한 학부모 모두가 해야만 한다. 한국 교육의 모든 문제점을 전교조에게만 전가하면 할수록 우리 모두는 교육에서 소외된다. 교육에서 소외되어 모든 교육적인 문제를 타인에게만 돌릴 때, 비판의 화살을 외부로만 돌릴 때 우리는 교육의 참다운 주체가 될 수 없다.
교육의 모든 주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침 일찍 잠자는 자식을 깨어 밥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과외 시키는 것만으로 자식 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자식의 생각이 더 이상 블랙박스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바로 보고 교육자로서, 학부모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아야 할 때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교조 부산지부가 일으킨 동영상 파문은 자유 교육과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체제가 굳건하게 뿌리 내릴 수 있는 교육적 토양 형성에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굳게 믿는 교사들과 자기 자식이 도덕적으로 바르고 유능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들은 학생들과 자식들에 대한 교육적인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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