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행정자치부 정부청사관리소에서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터의 내력을 조사하여 청사관리소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조선시대 예조 터로 오랜기간 사용되었던 중앙청사 터의 내력을 선초의 의흥삼군부에서부터 현재의 정부중앙청사 건립에 이르기까지 사진 자료와 함께 간략히 소개하였다.

터의 내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청사 소재지 이동과정, 세종로 일대(옛 육조거리)에 관련된 이야기 거리들도 함께 수록하여 청사관리소 홈페이지 방문객에게 전통적인 관아가로서의 세종로를 재조명해 보이는 한편, 읽을거리라는 팁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관련 사이트 : http://www.chungsa.go.kr/chungsa/cms/1/1/2/1.html

개 관

정부중앙청사 터는 조선초 태조때 의흥삼군부의 청사터로 잠시 쓰이다가 삼군부가 없어지면서 예조가 자리잡아 조선후기 대원군때까지 예조터로 사용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비대해진 비변사를 혁파하는 일환으로 선초의 삼군부를 부활시켜 예조터에 새로이 청사를 짓고, 예조는 한성부의 자리로 이전케 하였다.

1880년 개화기에 이르러 삼군부가 폐지되고, 이곳은 통리기무아문의 청사로 사용되다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황제의 근위병격인 시위대(侍衛隊) 청사를 거쳐 1910년부터 1931년까지 조선보병대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순종황제의 승하(1926.4) 및 대공황으로 인한 불경기 등의 영향으로 1931년 4월 조선보병대는 해산되고,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의 체신국 분실인 보험관리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이 기구의 기능과 위치는 해방이 되고도 체신부에서 넘겨받아 그대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정부조직과 기구가 확대됨에 따라 청사 수급 수요가 늘어나자 세종로 관아가 중 중앙청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지대인 옛 예조 터가 청사 신축부지로 선정되었다. 1967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당시 이 터를 사용하고 있던 체신부의 보험관리국이 이전되고, 삼군부 건물 중 남아있던 청헌당은 육군사관학교로 이건(移建) 조치되었다.

1970년 12월 정부중앙청사가 준공됨으로써 세종로 서쪽에는 정부중앙청사가, 동쪽에는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가 위치하고 있어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1.조선시대 前·中期

1-1 육조(六曹)거리

정부중앙청사는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서쪽 맨 앞 예조터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로는 조선시대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의정부를 비롯한 육조 이하 주요 관청이 자리 잡고 있어,‘육조거리’라고 불렸는데, 일제 통감부정치기인 1914년 육조거리의 명칭이‘광화문통’으로 개칭되었고, 광복후 1946년 다시 세종로로 고쳐졌다. 이는 세종로가 우리나라의 정치중심지로 역대 제왕 중 업적이 가장 뛰어난 세종대왕의 정치를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1-2 예조 터(1409~1865)

육조거리 내 관아건물의 배치에는 유교사상에 근거한 위계적 관념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는데, 즉 관아를 배열 할 때에 북쪽을 상위로 하고, 왕궁에서 볼 때 좌(동)측을 우(서)보다 상위로 하여 관위를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최고의 합좌기관(合坐機關)인 의정부는 좌측 상단에 배치되고, 그 밑에 육조 청사는 이조, 호조(이상 동측),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이상 서측)의 순서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현 정부중앙청사의 자리에 위치하게 된 예조의 청사는 조선 초 태조때 군을 통솔하는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청사(1393~1409)로서 지어졌다가, 태종9년(1409년)에 삼군부를 파(破)하고 예조·병조의 업무를 증대시키면서 오늘날의 외교·문교·문공부의 일들을 집행하는 예조(禮曹)가 이 청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2. 조선시대 後期

2-1 대원군과 삼군부의 부활(1865~1880)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 이후 비대해진 비변사(備邊司)를 혁파하기 위해 정치와 군사를 분립시키는 일환으로 의정부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삼군부를 부활시키게 된다. 즉, 훈련도감의 신영(新營), 남영(南營), 마병소(馬兵所)의 3군을 합설하여 삼군부라 칭하였다.

또한 청사 건물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낙후되어, 조선 초 구청사 건물을 참작하여 중앙에 총무당을, 좌우에 덕의당과 청헌당을 새로이 지어 삼군부의 청사로 쓰고, 당시 이 자리에 있던 예조는 한성부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2-2 총무당과 청헌당

삼군부 건물 중 총무당과 청헌당은 현재까지 남아있어 조선시대 관아건축 양식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삼군부의 중심 건물인 총무당은 1930년대 말경 옮겨져 성북구 돈암동의 삼선공원안에 세워져있고(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호), 청헌당은 정부종합청사 신축시(1967년)에 도봉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안에 이건(移建)하였다(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6호).

3. 근·현대(1880~1970)

3-1 시위대(1880~1910)

대원군 당시 중건된 삼군부청사는 1880년 개항과 함께 삼군부가 폐지되면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이후 통리군국사무아문)의 청사로 쓰이다가, 1894년 갑오개혁이후 황제의 근위병인 시위대 청사를 거쳐 1910년부터 1931년까지 조선보병대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3-2 조선보병대(1910~1967)

1907년 정미조약(丁未條約)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후 한국 군대의 흔적은 황제 근위대의 형태로 남겨지게 되었다. 근위대는 후에 규모가 축소되면서 조선보병대로 개칭되고 1931년 해산될 때까지 삼군부터에 사령부를 두고 존속하였다.

1926년 순종황제의 승하(昇遐)와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조선보병대는 결국 1931년 4월 일제에 의해 해산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체신국 분실인 보험관리국이 들어서 그 기능과 위치는 해방 후 체신부로 이어졌다.

3-3 정부중앙청사의 신축(1967~1970)

해방이후 정부조직과 기구가 확대됨에 따라 늘어난 청사 수급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세종로 관아가중 중앙청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지대인 옛 예조터가 청사 신축부지로 선정되었다.

3-4 청헌당, 체신부 보험관리국의 이전

1967년 청사 신축공사가 시작되어 당시 이터를 사용하고 있던 체신부의 보험관리국이 이전되고, 삼군부 건물중 남아있던 청헌당은 현재 육군사관학교로 이건 조치하였고, 1970년12월23일 현 정부중앙청사가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4. 세종로의 현재

오늘날의 세종로에는 옛날 고래등 같은 육조청사가 있었던 자리에 국무총리 집무실을 비롯하여 행정자치부, 통일부, 외교통상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등이 자리하고 있어 관아거리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으며, 미국대사관을 비롯하여 일본대사관, 호주대사관 등 7개국의 대사관이 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어, 국제무대의 중심지로서의 세종로의 위상을 살필 수 있다.

이와 같이 그 형성에서부터 한민족의 역사와 같이 하였던 세종로는 일제치하에서 시인 심훈이 ‘그날이 오면’에서 읊은 바와 같이, 민족 독립과 화합의 대축제를 기원하고 실천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서, 오늘날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자 축제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안전행정부 개요
전자정부 운영, 민생치안, 재해 재난 관리, 건전한 지방자치제도 개선 및 지방재정 확립, 선거 국민투표, 공무원의 인사 및 복지, 행정조직의 관리 등을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내무부에서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 안전행정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세종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소속기관으로는 정부청사관리소, 국가기록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지방행정연수원, 이북5도위원회, 경찰위원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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