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과거 좌파성향 정치인에 큰 호응’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유일한 승려출신(조계종25교구.봉선사)'의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혁신계 정치인 '운암 김성숙기념사업회''.(www.kimsungsuk.or.kr)가 젊은층의 지대한 관심사를 보이며 각종 포털 검색순위 상위로 급상승 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이 많이 찾고 있는 포털사이트인 '네이트(www.nate.com)검색순위에 '운암 김성숙'은 각 정당을 제치고 높은 검색순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부가 최근 3.1절과 광복절을 맞아 몽양 여운형선생을 비롯한 좌파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이 새롭게 조명되며 국가 유공자 포상대상에 대거 포함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운암 김성숙기념사업회(위원장 채영석)'의 관계자들는 이러한 반응에 한편 놀라워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운암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내시며 조국의 해방과 통일,그리고 이승만 정권과 5.16군사정권에 반대한 두드러진 업적에 비하여 정치적 노선으로 인하여 현실에서는 그다지 조명 받지 못했었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김재명(뉴욕시립대 박사.국제정치)씨가 쓴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은 청춘을 바쳐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웠으면서도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한 채 스러진 중간파 인물들의 삶을 추적한 연구서다.
내용은 이들이 모두 30년 안팎의 긴 세월 동안 풍찬노숙하며 항일투쟁에 몸바친 인물들이며,이들은 또 한결같이 "극좌·극우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통한 민족통일에 온 힘을 기울인
사람들이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이들은 친미적인 이승만 세력이나,그에게 빌붙은 친일파들의 극우 노선을 비판했고, 박헌영의 극좌 노선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극우파는 이들을 기회주의적 친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고,극좌파는 이들을 회색적 기회주의자로 비판했다"고 서술한다.
특히 이 책에서"'운암 김성숙선생(1898~1969)'은 기회주의적 면모를 느끼기는커녕,지나칠 정도로 강직한 성품을 지닌'지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며"운암 김성숙선생은 승려로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2년 간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열단 등에서 급진 혁명가로 활약했다"고 소개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민족진영 급진파로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임시정부 내에서는 이승만의 반소.친미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해방 뒤 귀국한 그는 몽양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결성해 좌우합작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분단과 전쟁 이후에도 혁신계 지도자로 활동했던 그는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채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는 협상과 대화로써 민족의 통일을 이루려 했던 이 중간파들을 '민족 양심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분단 극복이 최대 과제로 남아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들의 이상주의적인 통일 염원을 되새기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기념사업회 엄선하 교육팀장은 "조만간 뉴라이트(New Right) 전국연합이 출범과 관련하여 사업회에서 성명서를 낼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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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김성숙기념사업회 (02)391-9100 관리팀 김신선
이 보도자료는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가(이) 작성해 뉴스와이어 서비스를 통해 배포한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