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건설구간(창동 쇠꼬지)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개최 계획
일 시 : 2005. 11. 14(월) 15:30
장 소 :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발굴현장
참석대상 : 지도위원 지건길, 최병현, 이강승, 자문위원 길경택, 조사기관·사업시행사·문화재 관계자 등
회의안건 : 유구 및 출토유물의 성격과 편년검토, 유적의 향후 처리방안 등
발굴개요
발굴사유 : 도로건설구간내에서 확인된 건물지 및 제철관련 유구 발굴조사 실시
신 청 인 :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조사기간 : 2004. 09. 13 - 2005. 11. 24
조사기관 : 중앙문화재연구원
조사범위 : 6,339㎡
조사결과
- 유구확인 : 조선시대 건물지 4동, 제철관련유구 1기, 기와가마 1기, 수혈유구 2기 등 총 8기
- 출토유물 : 조선시대 기와편 및 백자편
발굴성과
충주 창동 쇠꼬지유적에서는 건물지는 1호 건물지의 경우, 남향으로 정면 3칸 · 측면 1.5칸의 평면배치가 확인되었으며, ‘官’자명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2호 건물지는 대부분이 조사범위 바깥에 위치하여 현재 건물지의 남동쪽 모서리 일부분인 동서 약 18m, 남북 약 20m 만이 조사되었다. 특히 기단은 최고 400㎝ 가량의 축석을 하부에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건물지는 ‘官’자명 기와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충주지역의 남한강과 달천강의 수운을 이용한 특수시설(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 참고사항
연락처 : 책임조사원 조재경(전화 : 011-250-1633)
조 사 원 조길환(전화 : 018-228-6556)
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 건설구간(창동 쇠꼬지) 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일시:2005년 11월 14일(월요일) 15:30
장소: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 건설구간
(창동 쇠꼬지)유적 발굴조사 현장
Ⅰ. 調査槪要
1.조 사 명 : 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건설구간(창동쇠꼬지)유적 발굴조사
2.유 적 위 치:충북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쇠꼬지 일원
3.조 사 면 적:6,339㎡
4.조 사 기 관: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윤세영)
5.조사의뢰기관:대전지방국토관리청
6.유 적 성 격:조선시대 건물지 · 제철관련유구 등
7.조 사 기 간:2005. 9. 13.~2005. 11. 14. (현재)
Ⅱ. 調査地域의 位置 및 調査經過
1. 調査地域의 位置
충주시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자리하며, 충청북도의 북서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제천시, 서쪽은 음성군, 남쪽은 괴산군·경상북도 문경시, 북쪽은 경기도 여주군·강원도 원주시와 접하고 있다. 충주지역은 서북 쪽의 차령산맥과 동쪽에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충주시의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53′ ~ 128°01′, 북위 36°54′ ~ 37°01′이다.
충주지역을 감싸고 있는 산맥은 북서변에 남서방향으로 뻗은 차령산맥이 자리잡고 있고, 남동변에는 소백산맥이 대략 남동방향으로 뻗어 있다. 내부로는 차령산맥의 오갑산(609m)에서 분기하여 부용산과 좌구산, 거대령 등을 지나 대략 남방으로 뻗은 노령산맥이 자리잡고 있다. 차령산맥은 그리 높지 않은 구릉을 형성하고 있어서 교류에 커다란 장벽은 되지 않으나, 소백산맥은 태백산맥과 마찬가지로 높고 험한 산맥으로서 양 지역간의 교류에 큰 장벽이었는데, 죽령·조령·이화령·추풍령 등이 그 교류의 통로 구실을 해왔다.
산맥과 함께 한 지역의 특성을 결정짓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은 하천과 평야이다. 충주지역을 관통하는 하천은 크게 南漢江과 達川江이라 할 수 있다. 달천강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하여 米院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심한 곡류를 하여 탄금대에서 합수하여 남한강과 북쪽으로 흘러 북한강과 합류한다.
이들 산맥과 하천에 의해 형성된 충주평야는 美湖盆地에 버금가는 평야로서 북부지방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충주분지는 동쪽은 계명산과 남산이 가로막고 서쪽은 멀리 玉女峰·寶蓮山·願養峰이 줄지어 있어 대체로 南高北低의 지형이다. 남한강 북쪽은 200m 내외의 구릉지와 침식평야가 넓게 전개되어 있다. 반면에 남쪽 달천유역에는 자연제방과 범람원이 발달하여 토양이 비옥하고 관개가 편리하다.
충주평야의 중심지는 충주시·주덕·가금의 3개 지역이며, 총 면적은 19,589㏊이다. 교통은 충주시를 중심으로 충주~장호원, 충주~청주, 충주~제천, 충주~문경간 도로교통이 발달하였다. 충주 일대에 형성되어 있는 남한강·달천·요도천 그리고 북한강은 경기도를 경유하여 서울에 이르는 특성으로 인하여 수운이 발달하였다. 취락은 충주시를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한 곳에 발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촌락은 周德 · 水安堡 · 龍山 · 龍浦 · 蓮河 등이 있다.
조사지역은 충주시내의 서북쪽에 위치한 가금면에 위치한다. 물가를 따라 나루와 창고 등의 지명이 남아있으며, 나루의 경우 70년대 이후 포장도로와 다리 등에 의한 육상교통로가 활성화되기 전까지 사용되던 곳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국보 제6호인 중앙탑(탑평리 7층석탑)과 국보 제205호인 중원고구려비가 위치하고 있다.
2. 調査經過
충주지역의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감당하고 혼잡한 충주시내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물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는 충주시 용두동에서 금가면 사암리에 이르는 연장 10.8㎞의 우회도로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사업의 시행에 앞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실시된 지표조사를 통하여 창동유적 등 7개소에 대한 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0,『용두-금가간 충주우회도로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
이에 따라 위 구간에 대한 문화재 시굴조사는 공사를 시행하고 있는 SK건설 주식회사에서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하여 문화재청의 허가(제2003-281호)를 통해 2003년 7월 28일~2003년 11월 26일 조사를 완료하였다. 조사결과, 김생사지(대상면적:5,680㎡)·북창유물산포지(대상면적:11,654㎡)에 대한 발굴조사와 창동 쇠꼬지 야철지 유적에 대한 시굴조사가 보고되었다.(중앙문화재연구원, 2003,『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공사구간내 문화재 시굴조사보고서』)
쇠꼬지 야철지 유적은 충주시 금가면 창동리 금강사의 남동쪽에 위치한다(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1998, 문화유적분포지도, 120쪽). 본 유적은 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의 본선과 지방도 520번을 연결하는 연결도로(램프구간)가 문화재지표조사 완료 이후에 추가 설계됨에 따라 발굴조사에 추가하여 시굴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창동 쇠꼬지 야철지 유적에 대한 시굴조사와 김생사지(충주시유지 포함) 그리고 북창유물산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의 허가(제2004-208호)에 의해 2004년 4월 19일부터 조사에 착수하였다. 이 가운데 창동 쇠꼬지 야철지 유적에 대한 시굴조사를 먼저 실시하여 조선시대 건물지와 시대미상의 수혈 등을 확인하였고, 2004년 5월 3일 현장설명회 및 지도위원회의를 거쳐 축대와 초석적심군 그리고 쇠똥 등에 대한 명확한 성격 파악을 위한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건설구간(창동 쇠꼬지) 유적’에 대한 매장문화재 발굴허가(허가 제2005-203호)를 득하였고, 중앙문화재연구원은 발굴조사를 2005년 9월 13일에 착수하여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Ⅲ. 調査內容
조사지역은 달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서쪽부분으로, 행정구역상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에 속한다. 북편으로 두물머리를 비롯한 남한강이 잘 조망되는 곳으로 2개의 골짜기가 만들어 놓은 급경사면에 축대를 만들어 일정 면을 형성하고 있다.
조사지역의 인근 지역은 창동의 철광산 개발과 함께 현재의 강변도로가 확보되었고, 광산은 20여 년 전에 모두 폐광되었다. 일부 지역은 철광석이 노두에 노출되어 있어 노천광산이 개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사면의 일부 지역이 계단식 지형으로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은 산촌의 형태로 형성되어 있으며, 집은 10여채가 넘지 않는다. 이 가운데 발굴조사지역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동향의 터에 마련된 30여년 된 금강사가 위치하고 있다. 금강사를 중심으로 건물지 축대가 3곳이 확인되며, 그 가운데 동쪽에 위치하는 건물지는 남동쪽 일부가 발굴조사구간에 포함되어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곳 주민에 따르면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고 전해오며, 이곳의 지명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초 남한강 상류지역의 내륙지역과 영남의 물자는 이곳 충주를 중간 기지로 하여 집산(集散)이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조사지역의 동쪽에 위치하는 갈마 · 용두 등의 지역은 선착장이 위치하던 곳으로 배의 접안과 하역 그리고 수리 등이 이루어진 장소로 알려져 있다. 조사지역의 북서쪽은 창동사지와 마애불 등이 위치하는 창골이 위치한다. 조사지역은 두 지역의 사이에 위치하며, 능선의 낮은 지역에 형성된 재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 건물지 4동 · 제철관련유구 1기 · 기와가마 1기 · 수혈유구 2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대다수 기와편으로 등문양은 창해일파(蒼海一派) 형이 대표적이며, 두께는 대부분 2.5㎝ 미만이다. 이외에 청자 · 분청사기 ·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청자유물과 분청사기유물은 편의 상태로 소량 확인되며, 백자유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1. 건물지
건물 배치는 지형을 따라 배치됨에 따라 향이 동쪽 · 남쪽 · 북쪽 등 다양하다. 기단의 축조방법과 축석을 위한 할석의 특징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내부출토유물 또한 시기적 차이가 관찰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일정한 계획 축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동일 계획에 의해 조영(造營)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건물지는 모두 4개가 조사되었으며, 이와 관련성이 높은 성격 미상의 석열이 조사되었다. 석열은 1호 건물지 남쪽에 위치하는 동서방향의 계곡부에 남북 330㎝의 간격을 두고 단을 형성하는 2개 석열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은 계곡부의 뻘을 메우고 그 위에 형성되어 있는 점이며, 길이는 동서방향으로 최고 39m 가량이다.
1) 1호 건물지
남향으로 자리한 건물지로 서쪽부분은 조사범위 바깥에 위치하여 전체적인 조사가 진행되지 못 한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특징은 파악이 가능한 상태이다. 현재 노출된 면적은 동서방향 약 30m, 남북 약 8.2m으로 서편은 동서 3칸, 남북 1.5칸의 기둥배치가 확인되며, 동편은 작은 할석으로 구성된 석열 등이 배치된 상태이다. 요철형의 건물배치에 따른 성격이 다른 동일 건축물의 가능성이 고려되나 서편의 기단석열 대부분이 유실되어 정확히 언급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초석적심군은 직경 120㎝ 내외인 원형으로 땅을 파고 직경 10~20㎝의 부정형 할석을 둥글게 채워 넣었다. 적심의 깊이는 교란된 부분의 것으로 판단할 때 약 110㎝ 내외로 추정된다.
기단은 서쪽 가장자리 부분에 동서방향으로 360㎝ 가량 잔존하며, 남은 단은 2~3단이다. 축조는 두께 10㎝ 내외, 너비 40~60㎝, 폭 20㎝내외인 편평한 할석을 사용하여 줄쌓기를 하였다.
기단 앞에 해당하는 남쪽부분에는 폭 70㎝ 내외의 면이 형성되어 있는데, 두께 10㎝ 내외, 너비 40~60㎝, 폭 20㎝내외인 편평한 할석을 한 층으로 깔아 건물의 격을 높여 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官’ 명문와 편이 서편 건물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현재 ‘宀’가 유실된 상태이다. 이외에 창해일파형 등문양의 와편과 분청사기편 · 백자편 등이 출토되었다.
2) 2호 건물지
2호 건물지는 장축이 남북방향으로 좌향은 동쪽이다. 현재 건물지의 남동쪽 모서리 일부분 만이 조사된 상태로 대부분은 조사범위 바깥에 위치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특징파악은 어려운 상태이다.
현재 조사된 범위는 기단 상면을 기준으로 동서 약 18m, 남북 약 20m 이다. 초석은 길이 90~170㎝, 너비 100~130㎝, 두께 30~40㎝의 규모의 다각형 할석이다. 현재 확인 가능한 기둥배치는 동서 4칸, 남북 3칸이다. 기둥간격은 평균 동서 240㎝, 남북 430㎝ 이다.
기단은 최고 400㎝ 가량의 축석을 하부에 마련하고, 그 위에 길이 25~35㎝, 두께 10㎝내외인 편평한 할석으로 기초석열을 한 단으로 놓은 후, 다시 그 위에 약 10㎝ 들여서 4~5단을 쌓아 마련하였다. 동서방향의 기단은 길이 45㎝ 이상인 큰 할석을 사용하여 쌓은 반면, 남북방향의 기단는 길이 35㎝ 미만의 중간 크기의 할석을 사용하였다.
남쪽에 해당하는 동서방향의 기단은 남쪽으로 각각 너비 160㎝, 110㎝인 2단의 하층 기단이 직경 45㎝ 이상의 할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의 높이는 동쪽을 가면서 점차 높아지는데 이는 급경사를 형성하는 원지형의 성격에 기인한다.
이외에 배수를 위한 암거와 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배수구는 폭이 45㎝ 내외이며, 길이 100㎝ 내외의 세장방형 할석이 뚜겅돌로 사용되고 있다. 수구는 남쪽기단으로 마련되어 있다. 수구는 너비40㎝, 높이 25㎝이며 바닥돌 3매가 남아있다. 수구는 2단의 하층기단 위에 위치한다.
출토유물은 ‘官’ 명문와 편이 동쪽기단의 사면퇴적토에서 출토되었다. 이외에 창해일파형 등문양의 와편과 백자편 등이 출토되었다.
2. 제철관련유구
쇠꼬지 광산의 서쪽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철재(slag)가 확인됨에 따라 제철관련 유적의 존재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잡석 위에 철재(slag)가 모여있는 양상이다. 장축방향을 북서-남동방향으로 계곡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평면모양은 둥근꼴로 규모는 길이 740㎝, 너비 540㎝, 두께 15㎝내외 이다.
철재(slag)는 표면에 쇠가 녹아 흐른 흔적이 뚜렷하며, 크기는 직경 25㎝ 미만으로 부정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철재(slag)의 아래에는 잡석과 흑갈색사질토가 위치한다. 잡석과 흑갈색사질토는 슬래그와 구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흑갈색토와 잡석의 외곽은 길이 30㎝ 내외의 부정형의 할석이 일부 열을 이루고 있으나 뚜렷한 형태을 찾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Ⅳ. 調査結果 - 調査團意見-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의뢰로 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 공사구간에 포함되는 창동 쇠꼬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지역은 달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서쪽부분으로, 북편으로 두물머리를 비롯한 남한강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지형은 2개의 골짜기에 의해 형성된 급경사면에 축대를 만들어 대지를 조성하고 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4기의 건물지를 확인하였으며, 조사범위 바깥에 위치하는 금강사 주변으로 2기의 축대가 지표에 노출되어 있다. 이곳 주민에 따르면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고 전해오며, 이곳의 지명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충주지역은 경부선이 생기기 이전인 20세기 초까지 남한강 상류의 내륙지역과 영남의 물자가 집산(集散)하는 곳이었다. 이와 관련된 지명이 북창 · 창골 등의 지명으로 남아있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 건물지 4동 · 제철관련유구 1기 · 기와가마 1기 · 수혈유구 2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대다수 기와편으로 창해일파(蒼海一派) 형의 등문양을 지닌 것으로 대표된다. 이외에 청자유물과 분청사기유물은 편의 상태로 소량 확인되며 백자유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건물지는 지형을 따라 배치됨에 따라 향이 동쪽 · 남쪽 · 북쪽 등 다양하게 나타나며, 시기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1호 건물지의 경우, 남향으로 정면 3칸 · 측면 1.5칸의 평면배치가 확인되었으며, 기단 앞에 폭 70㎝ 내외의 면을 형성하여 건물의 격을 높혀주고 있다. 또한, ‘官’자명 명문와가 출토되어 중심건물로 추정가능하다. 2호 건물지는 대부분이 조사범위 바깥에 위치하는 까닭에 현재 건물지의 남동쪽 모서리 일부분인 동서 약 18m, 남북 약 20m 만이 조사되어 동서 4칸, 남북 3칸의 기둥배치를 확인하였다. 특히 기단은 최고 400㎝ 가량의 축석을 하부에 마련하고 있으며, 2단의 하부석축과 암거시설을 마련하는 등 특수한 시설(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제철관련 유구는 둥근꼴의 평면을 지닌다. 철재(slag)는 하부의 잡석과 흑갈색사질토로 이루어진 층과 구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흑갈색토와 잡석의 외곽은 할석이 일부 열을 이루고 있으나 뚜렷한 형태를 찾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Ⅴ. 會議案件
1. 유적의 성격 및 처리방안
2. 기타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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