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회, 12월 연구발표회 ‘6-8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三國·南北國의 대외관계’ 개최

서울--(뉴스와이어)--한국역사연구회 12월 연구발표회 '6-8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三國·南北國의 대외관계' 를 주제로 2005년 12월 3일(토) 오후 2시 대우재단빌딩 8층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한다.

제1부 논문발표
◎ 책봉호를 통해본 삼국·남북국의 대외관계
책봉호를 통해 본 隋·唐의 동방정책과 三國의 대응(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唐代 책봉호를 통해 본 南北國의 위상(김종복, 성균관대 박물관)

◎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백제의 대외관계
백제 위덕왕대 남북조관계의 전개과정과 성격(박윤선,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7세기 중반 百濟의 대외관계(정동준, 성균관대 사학과)

◎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신라의 대외관계
羅唐同盟의 성립배경(이창훈, 성균관대 사학과)
삼국통일전쟁기 羅唐의 갈등(최현화,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제2부 지정 및 종합토론
사회 : 윤선태(동국대 역사교육과)
토론 : 정병준(동국대 사학과), 김선숙(한국학중앙연구원), 전미희(국사편찬위원회)

<6-8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三國·南北國의 대외관계>

6-8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전개과정
6세기 중반 이래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급변했다. 특히 589년 수(隋)가 남중국의 진(陳)을 멸망시킴에 따라 300여년간 분열되었던 중국대륙이 거대한 통일제국으로 통합되었다. 통일제국 수와 그를 이은 당(唐)은 종전의 다원적(多元的) 국제질서 대신 중국 중심의 일원적(一元的) 국제질서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와 수·당의 대외정책은 삼국의 대외정책 나아가 삼국의 역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더욱이 6세기 중반 신라가 한반도 중부지역을 장악한 이후 만주와 한반도의 정세도 종전과 다른 양상으로 변모했다. 동북아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고구려 세력권이 약화된 반면, 삼국 모두 중국왕조와 직접 교류하면서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었다. 삼국의 각축전은 당의 동방정책과 맞물리면서 각국에 정변을 야기하다가 급기야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동아시아 국제전은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지만, 이는 또 다른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당이 신라마저 지배하려고 획책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고구려·백제 유민과 힘을 합쳐 당의 야욕을 분쇄하고 한반도 중남부를 통합한 통일신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로써 당의 동방정책은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에 만주지역의 고구려유민도 말갈족과 연합하여 발해를 건국했다. 결국 만주와 한반도의 형세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와 맞물려 삼국 정립(鼎立)에서 통일신라와 발해의 양립(兩立)으로 변모한 것이다.

6-8세기 국제정세에 대한 연구동향
6-8세기 국제정세에 대해 일찍부터 많은 논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일본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책봉체제론을 주창하며 중국과 주변국 사이의 책봉-피책봉 관계를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책봉체제론은 중국 중심의 책봉질서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주변국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수·당과 서북 유목민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집중되었다. 오히려 삼국과의 관계를 연구한 논자는 책봉체제론을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일본학계의 책봉체제론은 중국학계의 연구동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최근 중국학계는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른 현재의 중화민족(中華民族) 개념을 과거에 그대로 투영시켜, 중국왕조와 주변국의 책봉-피책봉 관계를 중앙정권과 지방정권의 관계로 둔갑시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당대인들조차 이적(夷狄) 곧 외국으로 인식한 주변국의 역사를 중국사로 둔갑시키며, 삼국을 비롯한 당시 주변국의 역사를 중국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국 중심의 역사인식과 달리 한국학계에서는 중국 왕조의 책봉이 아니라 조공하는 주변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파악하려는 조공관계론이 전개되었다. 또한 여러 국가의 외교정책은 각국의 힘의 우열과 이를 조정하는 세력균형에 의해 전개되었다는 역학관계론도 전개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주변국의 능동적인 움직임을 다각도로 포착할 수 있지만, 주변국의 상황이나 주체적 입장만 강조할 경우 국제정세 전체의 흐름을 도외시할 위험이 있다.

본 발표의 기획의도와 내용구성
이에 본 연구반은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전반적인 변화양상을 고려하면서 각국의 상황과 주체적 입장을 다각도로 검토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반은 25사를 비롯한 중국측 사료를 정리하여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양상을 분석하는 한편, 각 연구자의 전공을 바탕으로 삼국이나 남북국 각국의 내부 상황과 대외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본 연구발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冊封號 授受를 통해 수·당의 동방정책 및 이에 대한 삼국과 남북국의 대응책을 고찰한 논문이다. 6-8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양상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논문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삼국과 남북국의 대응전략도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삼국이나 남북국이 오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수나 당의 동방정책에 대응한 사실, 나아가 외형적으로는 수·당 중심의 일원적 국제질서가 관철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국의 주체적 역량과 대외정책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다양하게 변모시킨 사실 등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었다.

冊封號 授受를 통해본 隋·唐의 동방정책과 三國의 대응(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책봉호 수수를 통해 수·당의 동방정책을 분석한 다음, 그에 대한 삼국의 대응책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특히 이 논문은 남북조 말기 책봉호 구성의 변화양상을 추적하여 중국 중심 국제질서의 성립 배경을 규명한 점이 주목된다. 아울러 남북조시기(4-6세기) 삼국이 중국왕조와 맺었던 조공책봉의 역사적 경험이 수·당과의 조공-책봉관계 체결, 나아가 수·당에 대한 대응전략 마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새롭게 밝힌 점도 주목된다.

唐代 책봉호를 통해 본 南北國의 위상(김종복, 성균관대 박물관)
唐代 책봉호를 다각도로 검토하여 통일신라와 발해의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고찰했다. 당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며 중국 중심의 일원적 세계질서를 실현시키는 듯했지만, 곧바로 나당전쟁의 패배와 발해의 건국으로 퇴색되었다. 신라와 발해에 대한 당의 책봉호를 검토한 결과, 현실과 괴리되어 굴절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당은 신라에게 일관된 책봉호를 내려준 반면, 발해왕의 책봉호는 강등과 승진을 반복한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발해와 잠재적 대립관계에 있었고, 신라에게 발해 견제 역할을 기대한 것과 연관된다.

둘째 부분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고려하면서 각국의 대외관계를 분석한 논문들이다. 각국의 내부상황이나 대외정책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데 역점을 두었지만, 항상 각 시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전반적인 양상과 연관시켜 검토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종래 삼국 내부의 문제라고 치부했던 역사적 사실이나 삼국과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고 여겼던 국제적 사건들을 상호 연관시켜 새롭게 이해하고, 삼국의 대외관계나 대외정책을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 특히 수·당의 동방정책과 연관시켜 새롭게 규명할 수 있었다.

백제 위덕왕대 남북조 관계의 전개과정과 성격(박윤선, 숙명여대 사학과)
6세기 후반 백제 위덕왕대 남북조관계를 다각도로 검토했다. 이 논문은 위덕왕대에 북조(북제)와 교류를 재개한 대내외 배경을 새롭게 검토한 점이 주목된다. 검토 결과 백제가 일차적으로는 새로이 남북조 외교전선에 뛰어든 신라의 적극적인 외교활동에 자극받은 사실을 규명할 수 있었고, 나아가 고구려와 신라를 동시에 대적해야 하는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응하여 주로 고구려를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북조와 교섭을 가졌다는 사실도 새롭게 규명할 수 있었다.

7세기 중반 백제의 대외정책(정동준, 성균관대 사학과)
종래 백제의 멸망 원인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부족, 대외정책의 실패 등을 꼽아왔다. 이에 본 논문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고려하면서 백제의 대외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그 결과 백제의 멸망은 상시적 국제전 상황에서 군사방어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대외적으로도 고구려, 왜와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임을 새롭게 규명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이끌어낸 국내 정치상황에 더욱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나당동맹의 성립 배경(이창훈, 성균관대 사학과)
이 논문은 7세기 중반 만주와 한반도 국제정세 변화의 직접적 동인인 나당동맹의 성립배경을 집중 검토했다. 무엇보다 당의 전략과 신라의 대외정책을 병렬적으로 검토한 점이 주목된다. 검토 결과, 당이 645년 고구려 정벌 실패로 전략을 수정함에 따라 배후 지원세력을 필요하게 되었고, 신라 또한 642년 백제의 공격에 의해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으면서 외부의 지원을 모색했는데, 이러한 양국 대외정책의 접점에서 나당동맹이 결성되었음을 규명했다.

三國統一戰爭期 羅唐의 葛藤(최현화,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이 논문은 나당동맹의 와해 원인을 성립 당초 양국의 참여 의도를 통해 규명했다. 특히 당의 의도와 관련하여, 전쟁수행 중에 설치된 웅진도독부·계림주대도독부·안동도호부라는 기미부주의 존재에 새롭게 주목하였다. 그 결과 당은 처음부터 당 중심의 세계질서 구축을 의도하며 한반도 전쟁에 참여한 사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 또한 한반도 전쟁이 당의 세계질서 구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도 새롭게 규명할 수 있었다.

웹사이트: http://www.webkoreanhistory.org

연락처

한국역사연구회 연구위원회 남기현 간사 02-586-4854, 016-402-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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