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8월의 독립운동가 박열 선정 및 전시회 개최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일본지역에서 아나키즘운동을 전개하고, 일왕 폭살을 계획한 박열 선생을 2006년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 간 : 2006. 8. 1. ~ 8. 31.
ㅇ 장 소 : 근대민족운동관 내
ㅇ 내 용 : 박열 선생이 저술한 잡지 및 저서 등 공적자료 다수

1902년 3월 12일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난 박열 선생은 1919년 경성고보 재학 중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선생은 반제 자유의식과 아나키즘에 심취하게 되었다. 선생은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1920년 11월 의혈단(義血團)을 조직하였고 이후 아나키즘단체인 흑도회에 참여하였으며, 그 기관지인「흑도」의 발간 책임을 맡아 선전활동에 주력하였다. 또한 선생은 1922년 말 직접행동 조직인 흑우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는데 이때 선생은 「민중운동(民衆運動)」·「후토이센징(太い鮮人)」·「현사회(現社會)」등의 잡지를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고, 서울과 도쿄의 여러 사회운동단체와 연대활동을 전개하면서 민중의 권익신장에도 힘썼다.

1923년 4월 선생은 불령사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의열투쟁을 추진하였다. 일왕 폭살을 계획한 선생은 거사에 사용될 폭탄 구입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일제 경찰에 의해 불령사 회원들과 함께 피체되었고, 경찰의 취조 도중에 폭탄 반입계획이 드러나게 되어 투옥되었다. 선생은 일제 패망 이후에도 ‘대역사범’이라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하다가 1945년 10월 27일에야 풀려났다.

출옥 후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의 부탁을 받아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선생 등 3열사의 유해를 발굴하여 고국으로 송환하는 책임을 맡았다. 1949년 영구 귀국한 선생은 박열장학회를 설립하는 등 후학들을 위한 장학 사업에 노력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선생은 조소항·엄항섭 선생 등과 함께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4년 1월 17일 평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러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웹사이트: http://www.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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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기획조정실 홍보팀 양원길 041)560-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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