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한화갑 장상 공동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오늘(7.31) 신익희, 조병옥, 장면, 박순천, 정일형 박사 등 민주당 역대지도자들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이날 참배에는 7.26 성북을 선거에서 당선된 조순형 당선자와 신낙균 수석부대표, 김효석 원내대표, 배기운 사무총장 등 당직자 80여명이 참석했다. 조순형 당선자는 이날 선친인 유석 조병옥 박사 묘소에 지난 7.26 성북을 보궐선거에서의 당선증을 바쳤다.

■ 다음은 한화갑 대표, 장상 공동대표 와 조순형 당선자의 추모말씀 요지

◎ 한화갑 대표
신익희 선생, 조병옥 박사로부터 시작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민주당의 역대 지도자들은 민주당의 정당사 일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하다. 오늘 역대 지도자 묘소 참배는 민주당의 전통과 역사성, 정통성을 확립해 우리의 정치발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특히 오늘 참배는 7.26재보선에서 조순형 전 대표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이루어져 더욱 뜻 깊다. 우리 민족이 5천년 역사를 자랑한다면서 이 같은 전통 있는 정당을 육성하지 않고서 어떻게 역사 민족이라 할 수 있나.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위해서도 이 같은 전통과 역사성, 정통성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민주당도 조순형 전 대표의 당선을 계기로 과거의 모든 부정적 시각과 패배의식을 떨치고 새 출발하자. 민주당은 민주당사가 곧 한국정당사가 될것이므로 젊은 세대들을 위해 민주당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작업을 벌이겠다.

◎ 장상 공동대표
신익희, 조병옥, 장면, 박순천, 정일형 박사 등은 지난 반세기동안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마치 지금 민주당이 “민주당이 희망입니다”라고 외치듯이 우리 국민들은 이분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해왔다. 그분들이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인 것이다. 민주당으로써는 소중한 분들이며 이제 우리에게는 이 분들을 기억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심화시키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것은 민주당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위해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성서에 ‘강한 백성은 자기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도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존하고 새롭게 써 나가야 한다.

◎ 조순형 당선자
민주당 창당은 1955년 9월이다. 1956년에 해공 신익희 선생이 첫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셨고, 그해 5월 5일 대통령 선거 호남유세중에 서거하셨다. 민주당의 창당과정과 지금 민주당의 상황은 비슷한 점이 많다. 민주당의 창당 주체는 신익희 선생의 지도아래 한민당과 국민당이 합쳐진 민국당이었고, 민국당의 초대 사무총장이 선친(유석 조병옥 박사)이셨다. 창당 당시 3대 국회에서 민국당의 의석은 15석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4사5입 개헌을 시도한 것을 계기로 민주세력이 모여야겠다라는 자각아래 15석의 민국당이 주최가 되고 장면 박사, 흥사단 등 민주인사들이 모여 민주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당시 신익희 선생을 대통령 후보로, 장면 박사를 부통령 후보로 냈으나 신익희 선생의 서거 후 이뤄진 선거에서 300만표에 달하는 ‘추모투표’가 나오는 등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당시 선거구호가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신익희 선생 서거 당일인 1956년 5월 5일 선친이 돈암동 집에서 나오시면서 서거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나서 마당에 털썩 주저앉으신 기억이 난다. 결국 민주당은 다음 총선에서 승리해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약진을 거뒀다.
당시 민주당 지도자들이신 신익희 선생과 선친(조병옥 박사), 장면 박사 등은 한결같은 독립지사이셨고, 다들 포용력과 스케일이 큰 공통점을 가지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같은 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은 컴퓨터나 영어 등 기능적인 것들은 잘해도 정치지도자로서 바다와 같은 포용력과 지도력은 부족하다는 점을 많이 느낀다. 지금 국민들이 얼마나 어려운가. 대통령의 좁은 소견과 갈등, 불신의 리더십 때문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우리는 선배들의 이 같은 포용력을 교훈으로 삼고 배워 실천하려고 해야 한다.
신익희 선생이 서거하신 뒤 4년 후에 선친이 1960년 대통령 후보가 되셨고, 그 해 2월 15일 치료차 도미, 미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작고하셨다. 국내의료수준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의 공작음모에 대한 우려 때문에 도미하신 것으로 안다. 선친이 도미하자마자 이승만 정권은 국무회의를 소집해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당겼다. 도미하신 선친은 수술 후 이 같은 소식을 듣고 크게 고민하셨다.
선친의 좌우명은 “개인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였다. 어려운 말이지만 후진 정치인들은 추모로 끝나지 않고 실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당 창당 후 대통령 후보를 지명할 때 신익희 선생, 선친, 장면 박사 등 세분이 앉아서 결정하셨다. 신익희 선생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선친께서 대통령 후보는 해공선생이, 부통령 후보는 장면 박사가 해야 한다고 양보했다. 선친은 당시 신구파로 나눠진 민주당 안에서도 구파이셨지만 신파를 더 배려하셨다. 이 같은 점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59년 강원도 인제에서 보궐선거를 나가셨을때, 당시 지원유세를 가셨던 선친을 모시고 동행해 처음 뵈었다. 당시 똑똑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 같은 민주당의 역대 지도자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2006년 7월 31일 민주당 대변인실<<김정현 부대변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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