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대한민국 헌법 제21조 ①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존중되기 때문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되고 존중받아야할 언론사에서 정상적인 편집회의를 통해 게재가 결정된 기자의 원고가 편집국장도 아닌 경영진에 의해 인쇄 직전에 빼돌려지는 현대판 분서 갱유 사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었다.

과거 언론사의 편집권을 위협하는 것은 정치 권력이었다. 넉달 째 편집국장의 퇴직과 기자들의 줄징계가 이어지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주체가 정치 권력이 아니라 경제 권력으로 옮아왔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거 언론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때에도 그 방식은 온전히 폭압적인 것은 아니었다. 언론사가 시장에서 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이 지난한 과제가 된 요즘, 이른바 경제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과거보다 훨씬 더 자발적이고 구조적인 편입 양태를 보인다. 광고주는 직접적 압력 행사보다 입맛에 맞지 않은 기사를 쓰는 매체에 광고를 주지 않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는, 6월27일자 제870호 62~64페이지에 실릴 예정이었던 삼성그룹 관련 경제 기사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가 인쇄소에서 삭제된 데서 촉발되었다. 기사가 작성 중이라는 것을 파악한 삼성그룹 관계자가 6월15일 시사저널에 찾아와 기사 삭제를 요구했었고, 이에 시사저널 경영진은 편집국의 관계자들을 회유했으나 말이 먹혀들지 않자, 6월17일 새벽 1시경 편집국장에게 알리지 않고 기사를 빼내고 빠진 지면을 광고로 대체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 기사의 일방적인 삭제에 항의해 이윤삼 편집국장은 사표를 던졌고, 그의 사표는 이튿날 곧바로 수리되었다.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에 대해서는 무기 정직을 비롯한 중징계와 경고장을 남발하고, 이 문제를 보도한 다른 언론사와 시민단체에까지 고소를 일삼는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후 <시사저널>의 편집권이 훼손되었다며 경영진의 조치에 항의한 기자들이 연이어 징계대상이 되었다. 8월 14일 장영희 취재팀장 무기정직, 8월 23일 백승기 사진팀장 직무정지 및 자택 대기 발령, 김재태 편집팀장 감봉 3개월을 비롯해 팀장급 6명 전원 징계, 9월 7일 시사저널 노동조합 부위원장인 윤무영, 노순동 기자 3개월 정직, 출근 금지 등 사실상 경영진에 비판적인 기자들에 대한 잔불끄기 작전을 실시한 것이다.

현재 시사저널 편집국 간부 가운데 징계를 받지 않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평기자 가운데에서도 정직 처분으로 출근이 금지당한 기자들이 나왔고, 기자들의 책상에는 경고장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고 한다. 기자들은 그처럼 줄징계를 감수하면서 넉달 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나 <시사저널>의 경영진은, 사장이 편집인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상적인 편집회의를 통해 게재가 결정된 기사를 인쇄 단계에서 빼돌린 뒤 ‘편집인의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사를 이끄는 경영자가 편집 회의를 통해 게재가 결정된 기사를 빼돌리고서 사과는 커녕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황당한 궤변을 당연한듯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온전한 언론을 갖지 못하는 사회는, 언젠가 그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와 그 종사자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회를 제대로 감시하라는 과제와 함께 부과된 권리이자 의무이다. 자유로운 언론이 곧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체득한 것이다. 정치권력이건 기업이건 자유 언론 환경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견제를 받을 수 있어야 부패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시사저널>에서 편집권이 침해당했다며 기자들이 몇 달 째 싸우고 있는 것을 특정 언론사의 문제가 아닌 특정 언론사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언론 자유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편집권 독립의 긴요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미 한국기자협회와 민주언론운동연합, 그리고 <한겨레21>은 <시사저널> 사태 초기에 경영진의 행태에 우려를 표했다가 시사저널 경영진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피소당했다. 이에 시민 단체 22곳이 힘을 합쳐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정상화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언론단체 공동대책위원회‘ 를 구성하는 등 이미 <시사저널> 사태는 한국 언론계의 핵심 사안이 되어 있다.

<시사저널>의 편집권 침해 논란은 한국 사회가 온전한 언론을 갖기 위한 정책적 고민을 더이상 미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편집권 독립은 보도 행위가 내외부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지 않고 온전히 행사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개정된 신문법조차도 ‘편집권 독립’이 규정되지 못하고 언론사의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유야무야식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언론사에 편집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법 조문에 명문화하는 것에 반대한 핵심 주체가 일부 언론사였다는 점은 언론 본연의 권리와 의무를 망각한 직무유기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자본으로부터의 영향이 점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현대판 분서갱유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언론의 독립적인 편집권을 보장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원점에서 논의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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