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성명-국회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원점부터 다시 논의하라
애초 법안은 “공공기관의 자율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 경영의 합리성과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취지로 제안되었다. 법안은 정부산하기관 및 정부투자기관 관련 두 기본법을 합하여 기획예산처-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뼈대로 공공기관 지배구조를 설계하고 이를 중심으로 임원 임면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경영평가를 강제하여 공공기관의 경영 합리성을 증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경영합리성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나 법안은 오히려 간이 아픈 사람의 심장을 수술하는 등 잘못된 처방에, 공공기관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핵심적 문제를 양산한다. 우리가 제기하는 주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경제주의적 비민주적 지배구조의 문제이다. 공공기관은 국민을 위한 공공적 서비스 기관으로서 공공기관 운영 당사자, 이용자들의 민주적 합의에 기초한 운영 원리가 보장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운영원리의 부재는 관료주의와 방만한 경영 및 무능력을 양산해왔고, 따라서 민주적 지배구조는 공공기관 수술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작용돼야 했다. 그러나 법안의 해법은 오히려 기획예산처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공룡 만들기로 비켜갔으며, 비민주적인 지배구조를 노정하고 있다.
첫째, 기획예산처의 위상 문제이다. 법안은 기획예산처장에게 무소불휘의 권한을 부여하여 경제주의 기조로 공공기관을 사육하도록 한다. 기획예산처장의 공공기관 지정 및 해제권(6조), 법안 심사권(7조), 기능 적정성 평가권, 기관통폐합·기능 재조정·민영화 계획 수립권(14조)을 신설한 것이 바로 그렇다. 공공기관의 경영은 설립취지와 같은 제도기반 및 주무부처의 정책 계획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획예산처가 주관하는 경영합리화는 재정 운영에 한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기획예산처와 주무부처의 역할분담에 혼선을 초래하는 한편, 기획예산처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여 공공기관 운영 방향의 문제를 노정한다.
둘째,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상과 구성의 문제이다. 법안이 신설하는 위원회는 공기업·준정부기관과 기타공공기관의 지정·구분, 지정해제와 변경지정, 기관 신설 심사, 공공기관의 경영공시, 인사상 조치, 공공기관 기능조정, 시장형 공기업의 선임비상임이사 임명,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임원에 대한 해임이나 해임 건의, 비상임이사·감사에 대한 직무수행실적 평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실적 평가 등 사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설치되며, 기획예산처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재정경제부장관이 지명하는 재정경제부차관이 부위원장이 되며, 법안이 정하는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과 법조계·경제계·언론계·학계 및 노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예산처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한다. 위원회 위상이 과도할 뿐만 아니라 비상임으로 운영위는 16인의 위원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전문성을 가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획예산처 장관추천권으로 인하여 기획예산처 입맛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지닌다.
셋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유도할 수 있는 공공기관 노동자 및 이용자의 운영권에 대한 조항은 전혀 마련되지 못했다. 법안을 만든 기획예산처의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기획예산처는 자기 부처의 통제권에만 관심이 있을 뿐 공공기관 경영합리화의 핵심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전혀 보장되지 못했다.
그리고 수익성 중심의 경영평가와 성과계약의 문제이다. 기획예산처가 주도하여 2년째 시행한 정부산하기관 경영평가는 공공기관의 직무과정과는 상관없이 덩치 크거나 수익성이 좋은 공공기관에게 유리하게 작용돼 왔다. 뿐만 아니라 평가위원의 전문성 부족, 비민주적 평가과정, 기능적 고객서비스 결과 반영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또한 경영평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은 다양한 평가에 시달려 가장 중요한 공공적 서비스 질 향상은 도외시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법안은 이러한 현장의 고민이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세금에 의존하여 운영되는 만큼 운영 목표와 예산의 적절성이 보장되어야 하나 이의 기준은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가령 수익성 및 예산운용의 효율성만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운영을 평가하고 이에 기초하여 기관장 및 임원 임면에 기획예산처가 개입하는 한편, 예산 조정권을 행사한다면 공공기관은 그야말로 수익성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시민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질적 하락은 뻔한 일이다. 즉, 수익성 모델뿐만이 아닌 공공성 모델 등 각 공공기관의 설립 목표와 주무 부처의 정책 방향이 가장 큰 평가 사항으로 고려되어야 하나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대안이 부재하다는 문제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경제주의적 적용 기준과 범위의 문제이다. 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으로 나누고 공기업은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시장형,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준정부기관은 기금운용여부를 중심으로 기금관리형과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나눈다. 분류 기준은 명확히 재정 중심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국민을 위해 공공서비스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을 재정 기준으로 나눈다는 것은 다양한 공공적 특성을 무시할뿐더러 재정중심으로 관리감독을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중앙행정부처가 다양한 공공기관을 신설하여 운영해온 진위가 재정여부로 판가름나야한다면 공공기관이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다. 세금으로 운영할 이유도 없다. 아예 수익성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공공기관을 민영화할 의도라면 기획예산처 존립의 타당성도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적용 기준도 문제지만 범위도 문제다. 특히 현행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에는 KBS, EBS은 적용범위에서 제외했지만 법안은 제외조항을 승계하지 않아 공론의 장인 공영방송을 경제주의적 국가관리의 대상으로 후퇴시켰다. 권위주의의 얼룩을 씻어내기에 바쁜 공영방송을 이제는 경제주의의 도마에 놓겠다는 발상이다. 국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및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증대해온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노력을 배반한, 무식하다 못해 저급한 경제관료의 발상이다.
따라서 법안은 경제주의에 경도된 기획예산처의 몸 부풀리기이자 농간으로밖에 풀이될 수 없다. 정녕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의 경영합리성을 증진하고자 했다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적 지배구조를 설계하고,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운영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이러한 정책 계획을 공공기관 운영 당사자, 이용자, 전문가와 다각도로 협의했어야 했다. 이 대신 기획예산처는 경제부처의 권한 강화와 수익성에 매몰돼 국민의 편의와 권리를 배반한 한편, 국회 운영위는 덩달아 발의 몇 개월만에 졸속으로 통과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입법예고 당시부터 누누이 제기됐던 참담한 정책 계획은 이쯤에서 끝나야 한다. 진정한 공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민주성과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운영 모델이 제시돼야 한다. 기획예산처가 제 잘못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국회가 바로 잡아야 한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의 재논의가 시급하며 배제된 사회적 협의와 합의도 진행돼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결단을 촉구한다.
2006. 12. 19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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