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기 간 : 2007. 1. 1. ~ 1. 31.
ㅇ 장 소 : 근대민족운동관 내
ㅇ 내 용 : 공립협회 총회 임원 통보장 등 다수의 공적사진
임치정 선생은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1903년 노동이민을 지원하여 하와이 오아후섬의 사탕수수농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하였고, 1904년 근대학문을 수학할 목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다. 이후 선생은 소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는 한편, 안창호가 설립한 친목회에 가입하여 한인공동체 형성에 노력하였다. 특히 러·일전쟁 이후 일제가 주권침탈을 노골화하고, 해외 한인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자 1905년 4월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공립협회를 결성하고 항일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선생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상실하자 공립협회를 재미동포의 자치기관이자 국권회복운동의 중심기관으로 키워갔다. 대한제국 영사관을 대신할 공립관을 설치하고 기관지로 《공립신보》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이후 1907년 국내·외 한인단체의 통합과 국권회복운동 역량의 결집을 모색하면서 안창호·이강 등과 함께‘대한신민회’를 발기하였다. 이후 안창호가 귀국하여 신민회를 결성하자 이강과 함께 환국하여 이를 도왔다.
1907년 겨울 국내로 들어온 선생은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을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완용 등의 매국노 처단운동을 후원하면서 강력한 주권수호의지를 표출하였다. 이후 선생은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해외 독립군 기지 개척과 무관학교 설립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가던 중 양기탁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9월 출옥한 선생은 일제가 신민회 회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꾸민 데라우치 총독 처단 음모 조작사건으로 피체되어 다시 6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진남포 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에 동참하였다.
이후에도 1920년대 민립대학설립운동, 언론활동 등을 통해 민족운동의 열기를 이어가던 중, 1932년 1월 9일 민족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뇌출혈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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