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중장년층 자극하는 복고풍 향수 물씬
판소리에서 유랑극단, 다시 라디오 드라마까지. 소박한 서민적 행복을 그리다!
사랑하는 ‘송화’(오정해 분)를 ‘누이’라 부르기 괴로워 집을 떠났다가 그녀가 눈이 멀었다는 소식에 다시 북장단을 익히고 ‘송화’의 자취를 찾기 위해 ‘동호’(조재현 분)가 찾은 곳은 바로 ‘유랑극단’. 그 시절의 유랑극단은 사람들에게 가장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이자 안식처였다. 전국 방방 곡곡을 유랑하며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며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유랑극단은 젊은이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고, 예술인에겐 새로운 무대였다. 또한 눈이 먼 ‘송화’를 만날 날을 그리며 라디오 드라마를 열심히 녹음했다는 ‘동호’의 대사에서는 더할 수 없는 정성과 정감이 느껴진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로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던 ‘라디오 드라마’는 ‘유랑극단’의 뒤를 이어 서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였던 매체였다. 극 중 송화가 즐겨 듣던 <전설 따라 삼천리>가 대표작. 이렇듯 <천년학>은 넉넉하진 않지만, 소박한 풍류를 즐기며 시름을 잊었던 그 시절 사람들의 여유와 멋을 주인공의 삶 속에 부드럽게 녹여내고 있다.
주막, 중동 파견 붐.. 고단한 세월도 잊지 않아!
한편 술과 함께 밥도 팔고, 숙박업도 겸하던 주막은 <천년학>에서 주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송화’를 찾아 긴 세월 먼 길을 떠돌던 ‘동호’가 송화의 얘기를 들려주는 용택(류승룡 분)을 만나 드디어 지난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술로 인생의 고단함을 달래기도 하고, 오랜 여행 끝에 몸을 쉬거나 마을의 잡다한 소문까지 모두 전해 들을 수 있었던 주막집. 이를 위해 <취화선>의 구한말 종로거리, <하류인생>의 60년대 명동 번화가를 그대로 재연했던 주병도 미술감독이 전남 장흥군 회진면에 녹슨 슬레이트 지붕과 폐목을 사용해 그 당시 주막을 완벽히 재연해 주위의 감탄을 자아냈다. 또한 ‘송화’가 소리 공부를 하며 보다 편히 지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동호가 돈을 벌러 중동에 간다는 설정 또한 어려웠던 시절, 돈벌이를 위해 너나없이 중동으로 떠나는 현상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그 시절 아버지로, 청춘으로 혹은 자녀로 살았던 이들에겐 서글픈 그리움 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지난 시절의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소리인 ‘판소리’를 그토록 사랑하여 <서편제>를 시작으로 <춘향뎐>을 거쳐 <천년학>에 이른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유랑극단’에서 ‘라디오 드라마’로 모습은 변해가지만 서민들의 가슴을 적셔주며 소박한 행복을 주었던 그 ‘무엇’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 주려는 것은 아닐까. 피곤한 길손들이 찾아드는 ‘주막’과 돈을 벌기 위해 열사의 먼 나라로 떠나는 아버지들이 무수했던 ‘중동 파견 붐’에 이르기까지, 고단하고 힘겨웠던 지난 세월을 다독여 주었던 서민들의 작은 즐거움과 소리, 음악 그리고 주인공인 ‘동호’와 ‘송화’의 깊고 아득한 사랑을 통해서 그 시대 자체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층에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시대를 보여주며 그때 그 시절의 감흥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거장의 풍모가 느껴지는 <천년학>.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진정한 한국 대표 영화로서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선보일 <천년학>은 오는 4월 12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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