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기간 : 2007. 9. 1 ~ 9. 30
ㅇ 장소 : 근대민족운동관(제2전시관) 내
ㅇ 내용 : “낙양군관학교 사령부 건물”,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제83호” 등 자료 16여점
1903년 11월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박시창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강렬한 민족정신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으며, 1916년 오성(五星)학교 졸업후 부친의 지인을 따라 해삼위(海蔘威)로 건너갔다.
1919년 9월말 선생은 하얼빈을 거쳐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에 도착한 선생은 1921년 10월 부친 박은식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 박경산(朴景山), 박태하(朴泰河) 등과 함께 중국인 임택풍(林澤豊)의 지원으로 ≪사민보四民報≫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선생이 독립운동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1925년 11월 1일 오후 8시 부친 박은식이 68세를 일기로 상해의원(上海醫院)에서 서거하였다.
1926년경 선생은 근대적인 군사교육을 받기 위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인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5기 포병과砲兵科에 입교하였다. 1927년 7월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29년 국민혁명군 경위군(警衛軍)에서 근무하였고, 1932년에 상해사변(上海事變)이 일어나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이후 선생은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의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의 신병훈련처로 전임되었다.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을 창설하였는데, 당시 조선의용대 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선생은 이때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한민족의 끈질긴 항일투쟁과 연합군의 승전으로 일제가 패망하자 광복군총사령 이청천(李靑天)의 명령으로 일본군내 한적사병을 접수하여 잠편지대(暫編支隊)를 중국의 주요 도시에 설치하게 되었고, 선생은 1945년 8월 한국광복군 상해잠편지대(上海暫編支隊)의 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46년 7월 귀국 후 선생은 국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59년 6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사진자료를 9월 한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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