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진주박물관 특별사진전 ‘다시 보는 진주의 옛 모습(1910-1927)’개최

진주--(뉴스와이어)--국립진주박물관(관장 강대규)에서는 겨울방학을 맞이하여‘다시 보는 진주의 옛 모습(1910-1927)’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미 2004년도에 연장전시를 거듭했던 사진전시회로 방학을 맞아 겨울나들이로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특히 학생들에게 민족의 격변기에 근대화되기 직전의 진주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을 통해 진주의 근대사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전시된 사진은 20세기 초반인 1910년부터 1927년 사이에 촬영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 원판 필름을 인화한 것이다.

이번 사진전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진주의 역사를 알리고, 우리 지역민들에게는 진주의 옛 모습과 정신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 전시기간: 2007년12월 25일(화)~2008년 3월 2일(일)
2. 전시장소: 전시실 로비
3. 기타 사진전 관람객 선착순 만 명에게 기념엽서 제공.

〔특별사진전 ‘다시보는 진주의 옛 모습(1910-1927)’전시내용〕

20세기 초 진주는 경상남도 도청소재지인 영남의 큰 도시였고, 이에 걸맞은 활기찬 도시였다. 천년 이상의 전통과 새로 밀려드는 근대식 건물, 생활양식이 혼재하였다. 또한 오래도록 유지되고 있었던 신분의 타파를 부르짖었던 형평운동(衡平運動)과 같은 사상적인 새 물결도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1906년 진주성의 동장대(東將臺)가 무너진 것을 계기로 진주성의 외성(外城)을 헐어내면서 일제(日帝)는 식민지의 원할한 통치를 위해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도시를 파괴하고 변형하였다. 일제는 시가지건축물취체규칙(1913), 면제시행규칙(1917), 조선시가지계획령(1934) 등의 시행과 1925년의 경남도청 부산 이전 등을 전후하여 진주성의 규모를 축소하고, 성의 해자역할을 하던 성밖의 저습지인 대사지(大寺池)를 메워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한편, 옛 관청 건물은 부산지법 진주지청, 진양군청, 경남도청 등으로 사용하였다.

이 사진 속에서는 당시의 진주풍물이나 ‘개화(開化)’에 대한 흔적, 또는 활기찬 삶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의 모습이 빠진 채 이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덩그러니 서있는 고건축물만을 볼 수 있다. 또는 진주 근처의 수많은 고분을 발굴하면서 찍은 유적 사진에 부수적으로 올망졸망 자리하고 있는 진주 시내의 초가집들이 보인다. 이 사진들을 통해 진주 시가가 본격적으로 근대적 도시로 변모하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또한 지금은 볼 수 없는 전국에서 제일 큰 규모라는 진주 객사(客舍), 1961년 이건(移建)되기 전의 향교 명륜당(明倫堂)과 풍화루(風化樓), 1960년 재건된 촉석루(矗石樓)와 의기사(義妓祠)와 같이 현재는 사라지거나 이전되어 변형되어 버린 건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진들은 우리의 불행했던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식민지 통치의 기초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총독부 등 일제의 식민지통치 기관에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에 보이는 인물들은 조선인의 골격을 조사하기 위해 강제로 데려다 찍은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가슴팍에 번호를 달고 정면과 측면을 찍힌 이들의 모습에서 불안감과 반항의 눈빛을 읽을 수 있다(이들은 백정이다). 또 다른 사진들은 조선의 고적을 발굴하면서 촬영한 것이다. 일제는 진주 근처의 수많은 고분을 발굴하면서 유적과 유물을 찍었다. 이 때 출토되거나 수집된 유물 중 일부는 현재 도쿄대학교[東京大]에 소장되어 있고 사진만 남아 그 실체를 짐작하게 한다.

전시되는 사진들은 비록 26장에 지나지 않고 그간 소개된 것들도 있으나 평소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작품들로 민족의 격변기에 근대화되기 직전의 진주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되는 사진 한 점 한 점 그 의미를 되새기며 역사를 공부하듯이 관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웹사이트: http://jinju.museum.go.kr

연락처

국립진주박물관 김희정 055-742-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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