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반을 허용할 수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은 ‘과목별 수준별 수업 확대, 총점에 의한 능력별 반 편성은 금지’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공공연하게 우열반을 편성하고 있는 게 학교 현실이다. 더구나 대학입시에 매달려 있는 고등학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가 늘고 수준별 이동수업을 위한 여유교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과목별 수준별 수업을 확대할 수 있는 교실 수도 부족하고 수준을 나눠 수업을 담당할 교원 충원 대책도 찾아 볼 수 없다. 대규모 학교 여건에서는 시간표를 작성할 수조차 없다. 이런 학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다른 과목으로의 수준별 수업 확대는 결국 우열반 편성으로 귀결될 것이다.
방과 후 학교 운영 방안은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사례를 지양’하겠다고 하지만, 서울지역의 모든 고교가 0교시 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무줄 잣대’가 되어 버린 이 지침으로는 현실적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학교에 학생들을 잡아두고 있는 시간과 학생의 성적이 비례한다고 여기는 전근대적인 학력관이 학교 교육을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0교시 수업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없다. ‘성급한 자율화로 인한 학교현장의 갈등과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변명은 학교 현장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방과 후 학교 활동에서 ‘초등학교의 교과 프로그램 운영을 허용’하면 성적경쟁 중심체제가 초등학교까지 확산될 것이다. 올해 정부 계획에 따라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면, 고등학교 진학에 매달리는 초등학교에 입시대비반이 생겨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음악 · 미술 등 특기적성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초등학교 방과 후 활동마저 일부나마 사교육비가 절감되었던 긍정적 효과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방과 후 학교 활성화조치로 ‘영리단체에 개별 프로그램 위탁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학교의 학원화를 가속화할 조치이다. 학교의 방과 후 학교 전부를 사설업체에 위탁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우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눠서 한 과목씩 맡기겠다는 것이므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지침에 불과하다. 이미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는 대형 사설학원의 강사를 끌어들여 학생들은 한 과목당 32만원씩 수강료를 내고, 강사는 10회 강의료로 600만원을 받아 가고 있다. 결국 ‘낮에는 학교, 밤에는 학원’ 현상이 가속화되어 공교육의 기반이 붕괴되어 갈 것이다.
고교 사설모의고사 참여를 학교별로 자율 결정하게 될 경우 학교를 상대로 한 사교육업체의 로비가 치열해지면서 모의고사 채택 리베이트가 되살아날 것이다. 학생들의 입시대비 성적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는 각 시·도교육청이 공동주관하는 모의고사와 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하는 모의고사로 충분하다. 사설모의고사 허용은 이미 공룡화된 입시산업이 학교 교육을 잠식할 수 있는 교두보를 허용해, 사교육 산업을 키워줄 것이고 이는 교육 모순의 핵심인 입시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종양이 될 것이다.
계기교육을 할 경우 ‘학교장 승인을 받아 실시’하는 조항은 남겨 두었다.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워야 함에도 교실에서 가르칠 내용에 대한 교사의 판단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4·15 조치’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교육 강사에게는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허용하면서 교사의 계기교육은 학교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는 조항이야말로 교사들에 대한 불신에 기초한 ‘사이비 자율화’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린이 신문 단체구독 문제는 최근 서울초등학교장협의회가 어린이신문 구독을 요구해 왔으므로 학교별로 허용하면, 어린이신문 강제 구독을 막아왔던 이전 상태로 급속하게 회귀하게 될 것이다. 언론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일부 언론의 로비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학교는 신문영업을 대행하는 기관의 역할을 맡게 될 수밖에 없다. 행정실은 신문대금을 걷어야 하고, 교사와 학생은 신문배달을 대신해 주면서 공정거래행위를 위반하는 사례가 빈발하게 될 것이다. 3,500원 구독료 중 학교에 700원씩을 떼어 주었던 과거 부조리가 급속도로 재현될 것이다.
기간제 강사는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임용 가능하게 되므로 전체적으로 교사의 질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특히 영어 몰입교육을 위해 교육학을 이수하지 않아도 영어 전용교사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임용고시 중심의 교사 임용 구조가 붕괴되고 공교육의 질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다.
수능이후 교육과정 내실화 방안을 폐지하면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학생들의 학원 수강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담임교사가 이런 요구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학원 수강을 학교출석으로 인정 하는 등 학생들의 출결 관리 등 생활지도가 불가능한 상황이 예견된다.
실업계고 현장교육 운영지침이 제정되게 된 배경에는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게 도와주는 실습이 아니라,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변질된 현장실습을 개선하려는 실업계고 교사들과 인권 단체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런 문제가 재발할 경우에 대비한 방안 없이 지침을 폐지하면 실업계고 학생들의 ‘인권침해와 임금착취’라는 문제점이 재발될 것이다.
100만 원대 교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구매를 행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교복 공동구매 지침이 없어지면, 지난 2~3년간 학부모 단체, 교육 단체 그리고 학교운영위원회의 노력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교복 공동구매 운동이 어려워질 것이다. 건전한 소비자로서의 학생들에 대한 소비자교육도 어려워질 것이므로, 교복공동구매를 지원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교육적 방안을 마련해 학교 현장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오늘까지 7일째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과 40만 교사는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 식 폭주를 좌시할 수 없다. 그리고 학사 일정이 진행 중인 일선 학교현장은 8개 시·도교육청이 제시한 ‘4·15 학교 자율화 조치’들을 곧바로 시행할 수도 없고, 무리할 경우 오히려 혼란과 갈등만이 야기될 것이다.
전교조는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복지 체제 실현을 위해, 다시 한 번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관련 시민사회단체 등과 충분한 의견 수렴을 위한 공개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이명박 정부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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