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의 독립운동가 안공근(安恭根) 선생
ㅇ 기간 : 2008. 7. 1 ~ 7. 31
ㅇ 장소 : 제1전시관(민족전통관) 출구
ㅇ 내용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사진자료 등 15점
신암(信庵) 안공근(安恭根) 선생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큰 형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와 신한청년당을 이끈 작은 형 안정근(安定根 1884~1949) 선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안 출신이다.
1909년 10월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거 직후 공범혐의로 한 달 남짓 심문을 받기도 했던 안공근은 빌렘 신부, 안정근과 함께 안중근 의사가 있는 뤼순 감옥으로 갔다. 일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일본에는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는가” 라고 반문하며 의연한 자세로 일관하였다. 안공근은 일제에 대항해 당당하게 싸우다간 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중근 의사가 유언을 남기는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하였다. 이는 청년 안공근의 가슴 속에 항일의식을 자리 잡게 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후 안공근은 러시아로 망명하여 러시아말을 배우고 생활기반을 마련하면서 독립운동 방안을 강구하였다. 1914년에 해외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안중
근 기념사진 엽서를 발간하고 첩자 김정국(金鼎國)을 처단하였다.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최초의 러시아 대사로 임명되어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한 외교활동에 주력하였다. 모스크바에서 상하이로 돌아 온 안공근은 독립운동촉성회, 암살 비밀단체인 팔인단, 한국독립당 등 다양한 단체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31년 안공근은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단원의 모집과 관리, 통신연락, 특무활동 등에 관한 일을 총괄하였다. 그리고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내에 설치된 한인특별반을 통솔하였다. 이 때부터 임시정부의 중요 인물로 부상하면서 한국국민당 이사, 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위원 등에 선임되었다. 하지만 1937년 이후 특무공작단의 운영에서 제외되는 등 개인적,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김구 선생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안공근은 1939년 5월 충칭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안공근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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