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영어강사들이 인종차별을 느낀다고 생각될 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서울컴이나 한국인들이 거창한 사상적 편향 속에서 자기네들을 차별하거나 박해한다는 의미는 아닌것 같고, 일상 생활에서 자기네들이 다른 한국인과는 다르게 대우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은 원어민 영어강사가 차별에 대한 불만의 댓글을 서울컴에 올린 것이다.
- 한국인 여자친구는 만난지 6개월이 지나도 부모에게 자기를 소개하지 않는다.
- 애들이 자기에게 뛰어와서 한국어로 욕을 하는데 다른 한국 남자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 가게나 식당에서 사람들이 내게 말을 않고 금전등록기의 가격을 손가락으로 가르쳐 보인다.
- 버스에서 내 옆에 빈자리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내 옆에는 앉지 않고 서 있는다.
- 병원이나 식당에 가서 줄서서 기다리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외국인"이라고 부른다.
- 내가 한국여자와 만나면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쑤근댄다.
-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내게 키스하거나 손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 택시기사가 날 보고는 속도를 내어 지나치거나 내가 먼저 기다렸는데도 나 대신 한국 손님을 태운다.
- 바나 클럽에서 모르는 남자가 나와 만나는 한국 여자에게로 와서 귓속 말을 하고 가는데
그러면 그 여자는 이상한 눈으로 날 보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 스쿠터에 똑 같이 빨간 등을 달아도 경찰이 외국인인 나만 잡는다.
- TV에 나오는 속옷 광고 모델은 전부 백인여자들이다.
- 내 백인 여자친구에게 한국남자들이 창녀를 대하듯이 접근한다.
이런 현상은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 들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아직도 주위에서 자주 벌어지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야 무심코 이런 행동을 할지 모르며,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 사람들을 특별히 차별 대우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하는 원어민 영어강사의 입장은 기분 나빳을 것이고, 우리와 달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 이제라도 이런 행동은 즉각 중지하고 고쳐지도록 사회가 나서서 계몽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가 주한 외국인들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것은, 학교 역사 시간에 공부한 것으로, 멀게는 18세기 선교사를 앞세워 침투 했던 불행했던 서구 열강에 대한 기억이 강력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고, 가까이는 일부 몰 지각한 미군 병사들이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리거나 부녀자를 폭행하거나 강도 행위를 하는 등 우리의 정서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자주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없앤다고 해서 무조건 역사적 사실을 숨기거나 언론 보도를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주를 붙여서 선악에 대한 공정한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요사이 한국이 국제화가 되면서, 우리 보다 더 박식하고 잘 생기고, 그리고 점잖은 외국인들을 많이 보게 되고, 그들의 합리적 사고 방식을 알게 되면서, 외국인에 대한 편견도 크게 개선이 되어가고 있으며, 업적 별로 뛰어난 인물에 대해서는 그들을 존경하는 일도 매우 흔하지만, 이번 일 처럼, 항상 그런 좋은 일들은 모두 가려지고 문제점만 돌출되어 나타나는 것이니, 마치 한국인 전부가 외국인 전부에게 못 되게 구는 등, 차별 대우를 하는 것으로 보일 지 모른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오래 전 부터 크게 개선되어 오고 있었기에 우리가 무관심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원어민영어교육이 채택되면서 많은 숫자의 원어민 영어강사들이 일시에 대거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서로를 잘 모르는 두 젊은 집단 - 내것을 주장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약간의 우월감을 내재한 채 나누어 가질 것을 주장하는 그러나 한국을 잘 모르는 원어민 영어강사 집단은, 서로 충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일종의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들은 사실 매우 사소한 것이며, 우리의 진지한 노력에 따라서
수정 되어 질 수 있는 의식 수준의 문제이므로, 두 집단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고쳐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역사적 사실로 본 한국과 프랑스, 미국의 첫 충돌
당시 국가이름은 조선이었는데, 조선은 오래 오래 동안 평화롭게 살아 왔고 18세기가 되기까지는 유럽인들은 조선을 잘 몰랐었다. 식민지 확대를 통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서구 열강들은 앞을 다투어 아시아, 아프리카로 진출 하였는데, 그 앞에는 언제나 카톨릭 신부들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에는 18세기에 프랑스 신부들이 들어와서 카톨릭을 한국에 전파했는데 그들은 당연히 당시 조선의 관습이나 도덕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조선의 관습과 질서를 깨뜨리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조선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드디어는 조선의 많은 캐톨릭 신자와 함께 9명의 프랑스 신부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에 구실을 잡은 프랑스는 함대를 동원하여 조선으로 쳐 들어 왔고 마을을 불사르고 규장각 강화 분소를 불지르고, 거기에 보관되어 있던 345권의 장서와 19박스의 은궤를 가지고 도망 갔고 이 사건이 병인양요라고 부르는 조선으로서는 지극히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우리는 역사시간에 그렇게 사실적으로 배웠다. 프랑스는 아직도 그때 훔쳐 간 도서를 반환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는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사건은 미국의 해적선 셔만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왕의 무덤을 파 헤치고 보물을 훔치려 했고, 이를 막는 사람들을 죽이고 불지르고 했으므로 조선의 군대가 그 배를 침몰시켰는데, 그러자 미국의 군함이 쳐들어 와서 조선의 수군을 약 400명 이상 죽이는 사건이 벌어 졌고 이 사건을 신미양요라고 한다. 물론 프랑스나 미국의 함대가 조선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지만, 많은 피해를 주었고, 한국인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었으며, 그 사건 이후 조선의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과 쇄국 정책은 더욱 강화 되었고, 국민들의 가슴에 외국인을 경계하는 불안감을 오늘날 까지 깊이 새겨 놓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그 사건들을 잊지 않고 있음을 원어민 영어강사들도 안다면, 아마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지 않을까.
만약 미국이나 프랑스에 한국의 군대가 가서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나왔을까. 그들은 자기네 국민이 한 두 사람이라도 희생된다면 국가적 힘을 기우려 이를 보복하려고 했으니, 지금도 아마 우리도 보다도 더 지독한 응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봐서 지금의 한국이 위에서 말한 정도의 차별을 하는 것을 두고 인종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우리로서는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대 놓고 불만을 이야기 할 자격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2차 세계 대전이후 우리는 미국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우리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서 베트남,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두 나라는 아주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경제를 발전시켜 세계의 부국 중의 하나로 되었고 이제 영어를 더 배워서, 세계 시장을 향해서 더 나아 가려고 한다.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많이 끼이는 법이니, 우리는 그걸 극복해 내어야 하고 그러자면 지나간 아픔들은 잊는 것이 좋다. 아직 우리들의 가슴속에 외국인을 향한 경계와 분노의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긴하지만, 우리는 개선하고 있으며, 더 빨리 국제화를 함으로서 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껴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젊은 외국인 영어강사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뭘 어떻게 했건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것이며, 지금의 자기네들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 할지 모르겠다....서울컴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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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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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8일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