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앤 ‘강인선 라이브’, 이 에리사 前 태릉선수촌장 편 방송

뉴스 제공
디지틀조선일보 코스닥 033130
2008-10-17 18:00
서울--(뉴스와이어)--10월 18일 토요일 밤 11시에 방송 되는 케이블 채널 비즈니스앤(Business&)의 [강인선 라이브]는 이 에리사 前 태릉선수촌장(現 용인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 이 출연하여 태릉선수촌과 탁구 등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신화는 국가의 지원 덕분

고등학교 3학년이였던 1973년, 세계탁구대회 단체전 우승으로 사라예보의 기적을 만들어 낸 이 에리사 前 태릉선수촌장.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순위 7위로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 낸 이 前 촌장은 “베이징올림픽 성적이 좋은 이유는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 덕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치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선수촌장으로 왔을 때 훈련일수가 105일이었다. 그 훈련일수로는 1000억을 준들 메달을 못 딴다. (국가에)훈련일수를 늘려달라. 즉 예산을 더 달라고 아우성을 했다. 그래서 2008년에 180일이 되었다. 베이징 준비를 잘 할 수 있는 밑바탕을 국가에서 잘 지원해주었다”고 말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핸드볼과 남자 하키의 8강 진출이 마음이 아파

베이징 올림픽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에 대해서 묻자 “남자 핸드볼과 남자 하키에 마음을 많이 썼다. 4강에 들어가길 바랬는데 8강에 멈췄을 때 가슴 아팠다”고 토로 했다.

또 그녀는 양궁 개인전에 졌을 때 안타까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양궁선수들이 개인전에서 졌을 때 어떻게 격려해줄까 생각하다가 “활 당장 부러뜨리고, 양궁 안하고 싶지? 나도 그랬다. 선수는 지는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준비해왔기 때문에 지는 순간의 허탈감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위로해 주었다”고 말했다.

태릉선수촌, 문화재청이 아닌 다른 주인을 찾아 주고 싶다

“2005년 선수촌장으로 왔을 때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었다. 세계 10강의 스포츠국가의 나라인데 1978년도에 개관 하고 나서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집도 몇 년에 한번씩 다 개조하는데 집을 단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째 훈련일수, 둘째 집안 단장, 셋째 선수들이 안전하고 다니기 편한 곳을 목표로 살림을 시작했다”고 했다.

“태릉선수촌은 문화재청이 주인이다. 문화재청 허락 때문에 아무것도 손을 못 댄다. 훈련 기간에 여관에서 잠을 자는 여자 선수들도 있었다. 리모델링 하려고 몇 번을 요청해도 허가가 안 나서 작년에 선거일을 하루 앞둔 12월 18일에 문화재청 앞에서 훈련중인 선수들과 데모까지 했다”고 했다. 이어 그녀는 “왜 태릉선추촌의 주인은 문화재청이 되는지. 지금처럼 문화재청이 되면 나무 한 그루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이제 (태릉선수촌)의 주인을 찾아주는 일을 통해서 체육계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미란 선수, 재능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잘하고, 금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자랑스러워

스포츠계의 40여년 생활, 크게 될 선수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다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선수 중에 그런 선수들이 보이기도 한다. 현정화 감독이 그런 경우다. ‘그만해라’ 하면 5분을 더하는 근성과 자기만의 감각과 재능이 있다.”

이어 장미란 선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장미란 선수는 재능 뿐만 아니라 인성, 품성, 인간관계도 너그럽게 잘한다. 운동도 힘든 일인데 싫은 내색 없이 금메달을 따기 위해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랑스럽다.”

또 그녀는 요즘 선수들의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애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놀라는 게 즐길 줄 알고 때로는 연예인보다 더 큰 스타의식이 굉장하다. 베이징에서 박태환, 장미란, 사재혁 선수와 기념 우표를 찍으러 가는데 태환이가 방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하더니 빨간 티를 입고 머리를 만지고 왔더라. 정말 멋있었다. 자기 할 것 다하면서 과하지 않게 멋도 내는 것이 멋있다.”고 말했다. 스타로 즐기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는 이 前 촌장은 대해서 “그때는 (스타로 즐기는 생활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예전에는 비장했다. 단적인 예로 북한과 시합하면 비행기를 타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아프리카로 이민 가야는 거 아니냐고 했다.” 특히 그녀는 “(선수시절 당시) 중국과 질 때 가장 속상했다. 사실 이번에 베이징에 가면서도 이야기 했는데 탁구선수만 4~5천 만이 있고, 국교화 되어 있는 중국을 이기고 싶었다. 지면 땀이 아깝고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수생활 은퇴를 빨리 해

국가 대표 8년을 하고 은퇴를 했는데 빠르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오래하고 싶지 않았다.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게 정말 힘들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세계 챔피언도 했고, 국내에서 7년 연속 챔피언을 했다. 이쯤이면 된 거 아닌가? 지도자로 감독이나 코치로 성공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지난친 교만과 욕심인데 뭔가 남들보다 먼저 잘해보고 싶은 조급증이 빨리 은퇴한 계기가 되었다.”

선수촌장이 될 때부터 나가는 예행연습 해. 태릉선수촌과 선수 들을 발전 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 前 촌장. “안 믿겠지만 학교(용인대학교)에 있는 다른 교수들이 섭섭하지 않냐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들어 오는 날부터 나가는 예행연습을 했다. 그래서 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나는 선수촌장이 되면서 여성 최초 촌장이 아니라 나갈 때 박수 받는 촌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고맙게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잘 해 주어서 이렇게 영광스럽고 홀가분하게 나가게 해주어서 더 고맙고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비즈니스앤TV의 ‘강인선 Live’는 조선일보 강인선 기자가 진행하며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명사(名士) 들이 출연해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장소에서 인터뷰를 진행한다.

디지틀조선일보 개요
1995년 10월 국내 최고의 신문 조선일보의 뉴미디어 계열 자회사로 탄생한 디지틀조선일보는 국내 최초로 인터넷(온라인)신문 서비스를 통해 디지털 매체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1997년 8월 국내 뉴미디어 업체로는 최초로 코스닥(KOSDAQ)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해 한 달 여 동안 꾸준히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최고의 종합멀티미디어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왔다.

웹사이트: http://digitalchosun.dizzo.com/

연락처

디지틀조선일보 방송마케팅팀 오지원 02-3701-2652 019-552-0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