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의 독립운동가 박동완 선생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박동완(朴東完) 선생을 2008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간 : 2008. 12. 1 ~ 12. 31
ㅇ 장소 : 제1전시관(민족전통관) 출구
ㅇ 내용 : 기독교계 3·1운동 민족대표로 활동할 당시 선생의 모습 등 관련자료 14점

박동완(朴東完) 선생은 1885년 12월 27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리 도곡리에서 박형순(朴馨淳)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배재학당 대학부 재학 당시 세례를 받아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선생은 졸업 후《기독신보(基督申報)》 편집위원, 정동제일교회 전도사, 조선중앙 YMCA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손정도, 이필주 등 기독교계 독립운동가들과 사귀며 민족의식을 고취해 온 선생은 1919년 2월 하순 3·1만세운동에 합류하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추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민족대표로 참석하였다.

민족대표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루고 1921년 11월 출옥한 선생은 《기독신보》주필, 중앙YMCA 위원 등을 맡아 활동을 재개하였다. 1924년에는 기독교계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창간한 《신생명(新生命)》의 주간으로 활동하며 교회와 언론계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언론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선생은 이상재, 유억겸 등과 함께 실력양성운동 단체인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를 조직하였고, 1927년 초에는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발기인, 신간회 본부 상임간사 등을 맡아 실무를 관장하며 신간회 조직의 확대에 힘을 쏟았다. 한편 당시 중국 만주에서 거주하던 재만 한인들이 중국관헌과 지주 등으로부터 박해를 받자 선생은 재만동포옹호동맹 특파원으로 재만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봉천성과 길림성 일대를 직접 돌며 동포구제사업을 전개하였다.

1928년 8월 하와이로 망명한 선생은 하와이 와히아와(Wahiawa)의 한인기독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교회부설 한글학교를 확장하여 우리말과 역사·문화까지 두루 가르치며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 힘을 쏟았고 1934년에는 《한인기독교보》를 창간하여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뜻하는 근곡(槿谷)이라는 아호를 사용할 만큼 누구보다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사랑한 선생은 1941년 2월 23일 지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12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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