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의 독립운동가 우재룡 선생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우재룡(禹在龍) 선생을 200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간 : 2009. 1. 1 ~ 1. 31
ㅇ 장소 : 제1전시관(민족전통관) 출구
ㅇ 내용 : 선생이 친필로 기술한 광복회 내력 등 관련자료 14점

우재룡(禹在龍) 선생은 1884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국권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력으로 대항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1902년 대구부 진위대에 입대하여 강제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1907년까지 근무하였다. 군대 해산 후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이 지휘하는 청송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청송의 보현산(普賢山)과 영일군 동대산(東大山) 일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 등 산남의진의 핵심인물들과 함께 체포되어 '내란죄'라는 혐의로 '종신유형'을 선고받았다.

1911년 옥고에서 풀려난 선생은 박상진(朴尙鎭)과 함께 음력 1915년 7월 1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광복회를 결성했다. 광복회 본부의 지휘장이자 국외 연락책임자로서 만주로 파견되어 길림에서 길림광복회를 설치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혁명기지의 건설에 힘썼으며, 군자금 모집에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여 경주에서 세금을 운송하는 우편마차를 공격해 8천7백원을 탈취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자산가로부터 의연금을 모집하기 위해 1917년 포고문을 발송하고 친일세력들을 처단하는 의협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이로 인해 일제의 감시를 받으면서 지도부를 구성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체포되고 조직이 크게 와해되었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1920년 6월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하고 김좌진이 활동하고 있던 길림군정사와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였으나 전개 도중 일제에 붙잡혀 큰 활동을 벌이지 못하였다. 선생도 이 때 체포되어 1937년 석방될 때 까지 16년간의 긴 옥고를 치렀다.

해방이 되면서 건국사업에 참여하고자 광복회와 주비단에서 활동했던 생존지사들을 중심으로 1945년 10월 1일 서울에서 광복회를 재건하고 독립운동 희생자들을 위한 선양사업을 실시했다. 선생은 1955년 3월 3일 대구에서 서거하였고,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1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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