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 ‘한국경제의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 진단’

서울--(뉴스와이어)--삼성경제연구소 ‘한국경제의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 진단 - 유동성선호 분석을 중심으로’

1. 최근 디플레이션 현실화 논의의 배경

금융위기 확산으로 글로벌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점증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자산가치의 하락이 진행 중.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7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 및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의 가치가 현저히 하락. 미국의 경우 최근 1년간(2007.3/4∼2008.3/4) 총 7조 7천억 달러 이상의자산가치가 증발. 2007년 4/4분기 이후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자산가치가 하락하기 시작. 금융기관들의 레버리지 축소와 실물경기 침체 심화에 따른 금융시스템내 위기 재발 우려로 자산가치의 회복이 지연. 기업 수익성 악화 및 가계대출 부실화와 같은 불안요인도 여전히 잠재

일반 소비자물가도 상승세가 둔화 또는 하락하는 추세로 디플레이션의 현실화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음. 2008년 4/4분기 들어 주요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일제히 하락. 미국의 2008년 11월 소비자물가는 1.7%로 하락해 대공황 이후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 유로 지역과 일본 역시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전환- 소비자물가 하락세는 상당부분 자산가치 급락에 기인. 자산 디플레이션 시기에는 해당 자산의 구매에 소요되는 화폐의 실질적인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물가 역시 하락. 실제로 자산가치(주가) 변동에 따른 화폐의 구매력 변화가 일반 소비자물가 변동의 원인변수로 추정

2009년 주요국 마이너스 성장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디플레이션 압력은 연중 지속될 것으로 예상. 미 의회예산국은 특단의 정책 조치가 없을 경우 미 GDP가 향후 2년간 잠재수준에 7% 가량 미달할 것으로 보고

디플레이션의 공포

디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물가하락으로 상품 구매와 자산 취득 시 구매자 부담이 경감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원자재가격 하락 등 비용측면에서의 절감효과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함으로써 경제성장에도 기여. 그러나 통상 디플레이션은 경제의 과잉투자 또는 공급조정 과정에서 급격한 수요위축을 수반하기 때문에 부정적 효과가 큼

특히, 디플레이션은 역사적으로 생소하고 경제시스템에 미치는 악영향이 치명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 2차 대전 이후 정부의 정책 개입이 보편화되면서 디플레이션 발생은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 경험이 거의 유일. 1970년대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정책의 인플레이션 편의(bias) 문제가 제기될 정도. 예외적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당시인 1995년과 1999∼2003년 중 물가하락세가 장기간 지속

디플레이션은 경기침체의 고착화, 금융시장의 기능 마비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해 인플레이션 이상으로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침. 경기 불확실성 증대로 소비, 투자가 감소하고 특히, 가격인하를 통한 수요유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기업은 생산, 투자, 고용 감축으로 대응. 자산가치 하락 → 기업 담보가치 하락 → 금융기관의 대출여건 강화 →기업 자금난 심화의 경로를 통해 금융시장의 자금중개기능이 마비

디플레이션 가능성 평가 준거로서의 유동성

물가변동은 통상 수요와 비용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본문에서는 유동성 선호 분석을 통해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진단하고 평가. '인(디)플레이션은 곧 화폐 현상'이라는 명제에서처럼 물가변동은 결국 유동성 총량의 변동이 전제. 경험적으로 대규모 유동성 투입에도 수요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 진입 시기에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증가.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현금보유성향이 급증해 시중에 투입된 유동성이 유통되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기 때문. 1930년대 대공황과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당시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진입하면서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디플레이션이 발생

2. 주요국의 유동성 함정 및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

유동성 함정 및 디플레이션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음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이나 엔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경기가 부진한 일본은 상대적으로 유동성 함정이나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이 큼. 미, 일의 경우 사실상 제로금리정책을 시행 중이며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 지연으로 민간의 현금보유성향이 급상승. 2009년 2월 현재 미 FRB는 기준금리를 0∼0.25%로, 일본은행은 0.1%로 운용 중. 금융불안이 심화된 2008년 9월 이후 미국의 현금보유성향은 3개월 만에 2배 가까이 증가(2008년 9월: 0.108 → 12월: 0.196). 정부의 유동성 투입 효과가 민간부문의 현금보유성향 증가로 상당부문 상쇄되어 수요부진에 따른 물가하락 압력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미, 일의 소비자물가는 2008년 10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 중

최근 IMF는 2009년 중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로 미국과 일본을 지목. '디플레이션 발생가능 지수'가 미(0.47 → 0.53), 일(0.64 → 0.71) 모두 상승하며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위를 차지

단, 각국 정부는 동원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디플레이션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 금융위기 이후 미 정부가 투입했거나 투입예정인 자금은 약 8조 달러로 연간 GDP(13조 달러)의 절반 수준. 미 신정부는 최근 2,800억 달러의 감세와 5,000억 달러의 재정지출 확대를 골자로 한 총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도입 및 집행할 예정. 유럽 각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경기부양과 구제금융을 위한 재정 및 금융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 유럽은 2,000억 유로, 일본은 약 64조 엔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고 사회간접자본(SOC)과 에너지, 환경, 보건 등의 분야에 자금을 집중 투입. 국가별로 GDP의 1∼7%에 이르는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본격화되면 디플레이션 위험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

3. 국내 경제의 유동성 함정 및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

국내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 대두

2008년 하반기 이후 급격한 경기 하강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에서도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대두. 2008년 4/4분기 경제성장률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물가상승세도 크게 둔화된 데 기인

·경제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08.1/4 (5.8%) → '08.4/4(-3.4%)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 '08.7(5.9%) → '09.1(3.7%)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과 금융시장 안정화 시책에도 자금경색심화 및 민간부문의 수요 부진으로 디플레이션 발생이 가능하다는 인식. 2008년 10월 이후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화 및 원화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부문의 자금융통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 정부는 수출중소기업 자금지원 목적으로 수출입은행을 통한 수출환어음매입과 fast track 등 다양한 중소기업 대출 유인책을 도입 시행 중. 한국은행은 동기간 기준금리를 3.25%p 인하(5.25% → 2.00%)하고 RP거래,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시중에 22조 원 상당의 유동성을 투입

대규모 유동성 공급 조치에도 신용위험이 해소되지 않고 불확실성도 여전해 금융시장의 자금중개기능이 사실상 마비.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기피하고 기준금리 수취를 위해 대거 RP매수에 나서면서 시중에 공급된 유동성 중 상당부분이 한국은행으로 환류. 국채나 우량 회사채 시장은 사정이 양호하나 크레디트물의 수요기반이 취약하고, MMF 설정잔액이 110조 원을 상회하는 등 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도 심화

실물부문에 신용공급이 제한되면서 민간부문의 수요창출이 극도로 부진. 기준금리를 인하한 신용도에 따른 가산금리가 높은 수준으로 기업은 자금난을, 가계는 대출상환 부담을 호소. 최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점차 소진되는 반면, 수요부진은 지속되어 국내 경제의 '유동성 함정' 진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

유동성 함정 및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이 낮은 3가지 근거

현금보유성향의 추이를 볼 때 국내 경제의 유동성 함정이나 디플레이션진입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 한국의 경우 현재까지의 현금보유성향의 추이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님. 현금보유성향은 2008년 12월 현재 0.003으로 외환위기 이후 장기적인 평균수준(0.007)을 크게 하회. 신용스프레드가 300bp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안전자산 선호현상도 지속되고 있지만 극단적인 유동성 선호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 2006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급등으로 위험 회피성향이 크게 약화되면서 현금보유성향의 하락세가 이전 수준으로 반등하지 않은 상태

추세적인 물가수준을 감안하더라도 물가상승 압력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 2009년 1월 근원물가의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2%로 높은 수준인 점도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낮음을 뒷받침하는 근거

※근원물가지수는 유가나 농산물 가격 급등과 같은 일시적인 충격에 의한 물가변동분을 제한 물가지수로 장기적인 기조물가 수준을 반영

일부 환율상승에 의한 물가상승의 영향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어 물가하락이 아닌 물가상승률 둔화 가능성이 큼. IMF가 분석한 한국의 디플레이션 발생가능지수는 2008년 4/4분기 0.29에서 2009년 4/4분기 0.14로 하락

통화수요함수 추정 결과 통화완화정책을 통한 수요유발전략이 여전히 유효. 최근 경기 불확실성 증대로 금리정책의 전통적인 파급경로(단기→장기)가약화된 것으로 보이나, 저금리정책은 금융비용 경감 등을 통해 수요진작에 효과적. 추가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유동성 함정 및디플레이션 진입 논의는 현 시점에서 다소 시기상조

※통화수요의 이자율탄력성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7년 이후 더 작은 값(절대치)으로 추정되어 금리변화에 통화수요가 상대적으로 덜 반응하는것으로 나타남

4. 시사점

한국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낮음

경기침체와 자산가치 하락 현상이 장기화되지 않는 한 유동성 함정 및 디플레이션 진입 우려는 기우일 가능성이 큼. 물론,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층 심화되거나 국제유가 급등과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현재까지의 전개양상이 사뭇 다르게 진행될 수 있음

디플레이션 가능성 차단을 위한 선제적 대응은 필요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안하고 주식, 부동산 가격 등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경기부양과 함께 자산가치 급락 방지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하, 대출 시 신용증권 담보범위 확대 등을 통한신용경색 해소 노력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지속될 필요. 통화완화정책은 여전히 유효한 정책 수단인 만큼 신용공급이 제한되는 부분으로 자금흐름을 적극 유도. 신용조건이 극도로 악화된 외환위기 당시 유동성 선호 현상이 특히 강화되었던 점에 유의. 과잉투자 자산의 가격조정은 불가피하나, 부동산 등 가격연착륙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규제완화를 통해 자산 디플레이션의 진행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고려. 자산가격의 하락 추세가 향후 1∼2년간 지속될 경우 디플레이션 발생가능성이 증가

이미 계획된 감세나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추경 예산의 조기 편성 및 집행으로 경기침체 장기화를 방지·'잃어버린 10년' 당시 일본은 수차례의 경기부양책 도입에도 불구하고재정투입 시기가 분산되고 일관성이 없어 경기회복에 결국 실패. 재정 집행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

물가상승압력 해소기를 재무 건전화의 계기로 활용

기업이나 개인은 현재 보유 중인 자산현황을 점검하고 재무 건전화의 계기로 활용할 필요. 부실화되거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잉여 자산은 신속히 정리하고 우량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 이미 재무적으로 안정화된 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저가에 양질의 자산확보가 용이하므로 경기회복기를 대비한 꾸준한 투자가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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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 강민우 연구원 02-3780-8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