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의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윤기섭(尹琦燮) 선생을 2009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간 : 2009. 4. 1 ~ 4. 30
ㅇ 장소 : 제1전시관(민족전통관) 출구
ㅇ 내용 : 선생의 친필유묵 등 관련 자료 20점

윤기섭(尹琦燮) 선생은 1887년 4월 4일 서울에서 아버지 윤기영(尹耆榮)과 어머니 합천 이씨의 2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민족학교인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사로 부임하였고,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와 신민회의 청년운동단체인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 8월 중국 서간도로 망명한 선생은 신민회 인사들과 함께 신한민촌을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건립하는 등 만주를 무장독립운동기지로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10여 년 간 신흥무관학교에서 학감, 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장차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할 많은 군사인재를 양성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서간도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임시의정원에서 일제와 전쟁을 벌일 것을 직접 주장하였다. 장기적인 대일항전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창설에도 적극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대표들에게 독립요구서를 발송하는 등 외교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상하이에 설립된 한인학교인 인성학교(仁成學校)에서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선생은 1930년대 중반까지 임시정부가 우리민족의 대표기관이자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헌신하였다.

1935년부터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서 활동한 선생은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던 좌우익 독립운동세력이 모두 임시정부로 결집하면서 다시 임시정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임시의정원 경기도 의원으로 선임되었고, 1943년 3월에는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1944년 6월부터 환국할 때까지 생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 충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귀국을 돕기 위해 충칭에 남아있던 선생은 1946년 4월 조국으로 돌아왔고,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납북되어 1959년 2월 27일 북한에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4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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