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와이어)--항상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작가들에 있어서 글쓰기란 처절한 실존의 확인이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팔레스타인 시인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선대 인문학연구소(소장 최성렬)는 (사)민족문학작가회의 광주전남지회와 (주)실천문학사 후원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는 기억한다’를 주제로 팔레스타인 시인 초청특강을 4월 4일(월) 오후 2시 본관 257강당에서 개최한다.

자카리아 모하메드(Zakaria Mohammed)의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는 기억할 것이다’,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Mahmoud Abu Hashhash)의 ‘팔레스타인 청년작가들―나는 시를 왜, 어떻게 쓰는가’ 강연으로 꾸며지는 이날 특강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아랍권 문학을 만나고, 이 지역의 살아있는 역사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는 기억할 것이다’(자카리아 모하메드)=내 강연 제목이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는 기억될 것이다’라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내게 좋은 언술이다.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나는 내 말, 내 시, 내 입술의 산물이 영원하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행복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 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이 말에 무척 고무될 것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험한 언술이다. 그것은 시가 세상에서 유일한 실체이며 모든 것들 뒤에도 남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영원하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건 시가 신과 같은 어떤 것이라는 의미이다. 신과 시는 영원하고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지속될 것이다. 이런 언술은 시인이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의 언술도 똑같이 말한다. 시는 유일한 실체이며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만일 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시인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는 신과 마찬가지로 영원하다. 유일한 차이라면 시인의 주장을 거부할 사람은 많이 있지만, 하늘에 신의 주장을 논의할 다른 신들이 없다는 것뿐이다. 신은 창조하는 동시에 비평할 수 있다. 신은 빛을 만들었고 그것이 좋다고 말했다. 신은 창조자이며 동시에 비평가이다. 시인은 혼자가 아니다. 그는 창시자이며 동시에 비평가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언술 속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는 시가 영원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신약]에서처럼 말하고 있는 셈이다. [신약]에 이르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한복음 1:1)
우리의 언술도 똑같이 말한다. 시는 신처럼 영원하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시는 남을 것이라고. 내게 주어진 제목은 이렇게 말한다. “시는 좋고 또 영원하다.” 반면, 우리는 그것을 마치 그것이 물질과 비물질 간의 갈등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물질은 사라지지만, 시처럼 비물질적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물질적인 것들: 차, 집, 돈 등등. 이것들은 곧 사라지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내 생각에 이것은 우리 시대 시인의 가난한 물질생활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썩 좋은 경제적 환경에서 살고 있지 못하다. 그런 언술을 통해, 그들은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부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처럼 아주 값진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인들은 그들이 계속 시를 쓰려면 자기들의 생산품에 대해 자꾸 떠벌일 필요가 있다.
이제, 진짜 제목: ‘만일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는 기억할 것이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매우 좋은 진술이다. 나는 전적으로 여기에 동의한다. 이것은 시의 임무가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시는 시드는 것, 사라지는 것, 죽어가는 것들이 없어지기 전에 붙잡아야만 한다. 많은 것들이 매순간 사라지고 있다. 어린 소녀의 미소, 노인의 눈물, 하늘을 나는 새의 노랫소리, 해질녘의 노을 등등. 시의 임무는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무엇인가 머무는 것 하나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우리 문명은 수없이 많은 종들을 멸종시켰다. 그것들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시는 그것들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는 사라지는 것들의 화석을 기억해야만 한다. 화석이 없다면, 우리는 공룡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그런 화석들이 우리 앞에 있다.
시는 죽어가는 것들의 화석화 또는 죽은 왕들의 박제화 과정이다.
시의 임무는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시는 어떤 것이든 뒤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시는 잃어버린 것들의 족적이다.
그것은 패배한 자들, 약한 자들, 깨지기 쉬운 것들 그리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의 노래이다.

자카리아 모하메드 팔레스타인 시인, 소설가. 1950년 나불루스 출생. 현재 이스라엘 점령지인 라말라에 거주. 이라크의 바그다드대학에서 아랍어학 전공. 1976년 이후 베이루트, 암만, 다마스커스 등지에서 자유기고가로도 활동. 1986년부터는 시리아, 키프로스,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신문,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그의 시는 현대 아랍시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간주된다. 1999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 시축제에 참가했다. 팔레스타인 문화센터인 사카키니 센터 운영위원이다. 이스라엘의 라말라 점령 당시 영국에 있는 친구 시인이자 번역가인 사라 마과이어의 노력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광범위한 독자와 만날 수 있었다. 시집으로 [마지막 시들](1981), [손으로 만든 물건](1990), [아스카다르를 지나가는 말](1991), [햇살](2001)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빈 눈동자](1996), [자전거 타는 사람](2003), 비평집 [팔레스타인 문화론](2003) 등을 펴냈다. 현재 아랍작가연맹과 팔레스타인 작가연맹 회원이다.

△‘팔레스타인 청년작가들―나는 시를 왜, 어떻게 쓰는가’(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팔레스타인 청년작가들은 다른 나라 다른 세대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쓰는 행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점령 상태가 글쓰기를 실존적 관심사와 생존의 메커니즘 이상의 것으로 몰고 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생을 지속하기 위해 투쟁의 모든 수단을 부활시키고 있다. 자신들의 기억이 위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믿는 팔레스타인에서는 투쟁이 생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희생은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왜냐하면 생의 감각은 그것이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인 한 따돌림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생에 대한 의미와 신뢰를 복구시켜 준다. 추(醜)와 파괴로부터 미를 고양시키는 책임을 지니게 한다. 그것은 작가들의 도덕적 책임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 과정 자체의 핵심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청년작가들은 그들의 선배세대 작가들을 대할 때 종종 느끼는 의무감이나 구속감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실존적 도전 앞에 놓여 있다.
자유가 전체 팔레스타인 문학에 결정적인 문제였던 것처럼 청년작가들의 글쓰기에도 여전히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청년작가들에게 자유의 문제는 민족의 자유를 다루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창작의 자유 문제이기도 하다. 형식을 찾아내고 그들 자신의 사적이고 미적인 관심을 제기하며, 창작 행위 그 자체를 통해 그들 자신의 자유를 실천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창작이란 다만 자유와 관계되는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글쓰기는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에게 글쓰기란 어떤 순간에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강요하는 긴급 상황에 의해 침해당하고 위협받는 매우 좁은 사유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는 유력한 길이다. 그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현실이나 그것의 매개적 표상의 강요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글쓰기가 강요하는 관습과 질문들로부터 자신들의 창작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쓰는 것이 시든 산문이든 아니면 둘 다이든, 소설이나 개방적 텍스트, 또는 자서전, 또는 이런 형태의 것들이 다 포함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창작의 한 영역을 특화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으며,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그들이 사는 시대의 문학적 거주자들이다. 청년작가들은 그들의 선배 동료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인간의 불행을 미적으로, 혹은 즐거운 경험으로 변화시킬 때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말했듯이 그들 자신만의 정직한 범죄를 저지르는 셈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글쓰기 자체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미에 대한 줄기찬 질문 속에서 삶과 죽음의 실존적 조화를 향한 하나의 가능한 접근법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생을 침략하는, 의미를 가혹하게 파괴하는 행동에 맞서는 하나의 방식이다. 문학은 그 자체의 상상적 세계로 하여금 파괴의 막중한 구체성과 조우하게 하려고 애쓰는 한편, 매체 속에서 현실의 실제적인 표명과도 조우하게 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 팔레스타인 시인. 1971년 팔레스타인 알 파와르 출생. 비르제이트 대학에서 영문학 전공 후 영국 런던 시티대학에서 예술비평과 예술경영학 석사 학위 취득.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팔레스타인 대중문화센터에서 근무. 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라말라에 있는 카탄재단에서 문화 및 과학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근무. 1999년 13인의 다른 젊은 팔레스타인 시인들과 함께 공동시집 [Dueof An-Naar Ad-Da’emoun] 발간. 그후 시집 [유리의 고통](2001)과 장편소설 [헤브르](2003) 출간. 그의 작품들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청소년들을 위한 노래 가사들을 짓기도 했으며, 아랍권 전역의 각종 신문, 잡지 등에 활발하게 시와 에세이, 단편소설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과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

깜빡 잊고 마저 먹지 않은 반쪽의 사과 떠올리고
현관에서 되돌아 왔네
이빨 자국 선연히 남은 사과, 끝내지 못한 채 죽을까 두려웠네.

우리 어머니 흐느낌 그치려지 않았네
“그 애는 사과도 다 먹지 않았다오”
그녀 손에 남은 썩은 반쪽 사과, 통곡하는 여인들에게 보였네.

나는 사과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현관문 다시 닫고는
산산히 부서진 내 일들 뒤로 했네
여기 저기 내 시들 미완으로 남겼네.

장미 -자카리아 모하메드

나 이 장미를 원한다
나 이 장미를 박살내길 원한다
마치 멋진 도자기를 주먹으로 내질러 조각내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참살하길 원한다
마치 칠면조 내장 뽑고 꼬챙이로 꿰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절단하길 원한다
마치 부싯돌로 한 소년 할례하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갈망한다
나 이 장미가 내 온 몸과 영혼 위에서
물집과 농양으로 화농하길 원한다
나 이 장미를 쳐박길 원한다
나의 멀어버린 한쪽 눈 썩은 눈구멍 속으로
나 이 장미를 별들로부터 은하수를 지워내는 일에
사용하길 원한다
무엇보다도 나 이 장미를 구름 속으로 던져 올려
폭발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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