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샤판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킨 일본 문부과학성을 규탄한다.
2009년 4월 9일, 문부과학성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지유샤[自由社]라는 출판사를 통해 검정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이하 지유샤판 교과서)의 합격을 발표했다. 이러한 결정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기존의 대표적인 역사왜곡 교과서와 거의 같고 심지어 개악되기까지 한 교과서를 또 하나 합격시킴으로써 일본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역사왜곡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2005년 한국이 역사왜곡의 시정을 요구한 내용에 대해 단 하나도 시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존의 역사교과서를 중복 검정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이웃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건전한 역사인식 형성에도 역행하는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검정 통과된 지유샤판 교과서는 후소샤[扶桑社]판교과서를 복제하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인식과 서술에서 똑 같은 문제점을 반복하고 있다. 첫째,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제국의 역사를 근거 없이 모멸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한반도 침략과 병합, 식민지배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없고, 오히려 근대화를 도왔다는 식으로 강변하고 있다. 둘째, 전시체제기에 관한 기술에서도 창씨개명, 징용, 징병 등을 짤막히 언급했지만,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하여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정확한 실상과 반성의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반면 전쟁에 헌신한 국민을 크게 칭송하고 있다. 전쟁을 찬미하고 “일본의 전쟁은 정당했다”고 가르쳐 다시 전쟁에 목숨을 걸 국민을 육성하려 하고 있다. 셋째, 청일·러일전쟁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미화·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두 개의 전체주의로 규정하면서 강하게 비판하는 반면, 천황제파시즘의 전체주의적 억압체제에 대해서는 나쁜 정치체제가 아니었다고 함으로써 역사의 전도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부 신설하거나 수정한 곳에서는 더 개악된 곳도 있다. 신화에 나오는 천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기술하거나 근현대의 문화적 시대구분을 ‘메이지[明治]의 문화’ ‘다이쇼[大正]의 문화’ ‘쇼와[昭和]의 문화’로 구분하는 특이한 방법을 써 천황 중심의 역사관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쇼와천황의 말씀」을 새로 실어 천황의 평화적 이미지를 교묘히 부각시켜, 침략전쟁과 파쇼적 지배의 최고 지도자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을 은폐하고 있다. 식민지배의 서술에서는 조선인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을 쓰면서도 ‘개발’ 정책을 강조하여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서술에서는 조선인, 중국인 이외에 일본인도 살해되었다는 것을 추가로 언급함으로써 민족 학살(제노사이드)을 희석시키려는 유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1982년 교과서 검정으로 침략사실 은폐에 대해 일어선 아시아제국의 항의를 계기로 교과서검정기준에 “근린 아시아 제국간의 근현대 역사적 사상을 취급함에 있어서 국제이해와 국제협조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하는 조항(근린제국조항)을 일본정부는 만들었다. 그러나 지유샤판과 후소샤판 교과서는 이러한 점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편협한 ‘일본국가에 대한 긍지’와 왜곡된 ‘역사에 대한 애정’을 강요하고 있다.
2001년 이후 일본의 중등역사교과서는 전체적으로 후퇴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왜곡세력에 의한 비방과 공격, 그리고 ‘새역모’ 등과 연대한 정치가의 개입·압력이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우경화시키려는 문부과학성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소샤 스스로도 ‘완성도가 낮고’ ‘내용이 우편향’이라고 평가한 책, 그리고 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지유샤판 교과서를 검정 합격시킨 문부과학성의 행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애당초 516개 곳에 결함이 지적되어 교과서로서 적격하지 않다 하여 불합격한 것을 문부과학성이 직접 나서서 수정을 지시하고, 다시 제출하게 한 뒤 통과시킨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무리를 해서라도 역사왜곡 교과서를 하나 더 만들어 교육현장에 유포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또한 새역모와 후소샤의 진흙탕싸움으로 교과서 자체가 법정 소송에 휘말린 상태인 것을 알면서도 문부과학성이 이를 통과시킨 것은 행정당국으로서 체면조차 버린 것이며, 이웃나라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정책에 대해 만일 한국 정부가 미래와 화합이라는 이름아래 역사왜곡 시정을 요구하지 않고 침묵한다면 이는 큰 오판이다. 잘못된 역사교육이 이번에도 그대로 관철되어 교육현장에서 시행된다면 그 후유증은 너무나 클 것이며, 결국 평화로운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2010년은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해로서, 20세기의 낡은 유산인 식민주의를 완전히 청산하고 말 그대로 평화와 공존을 위한 시대를 만들기 위해 동아시아 각국이 노력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도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일본 교육당국의 이번 결정은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주는 행위이며, 국제적으로도 고립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인권과 평화를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1. 일본 정부는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지유샤판 역사교과서 검정 합격을 즉각 철회하라.
1.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모든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기술을 즉각 수정하라.
1. 한국 정부는 화해라는 이름 아래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을 묵인하는 정책을 철회하고, 역사왜곡이 시정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하라.
2009년 4월 9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웹사이트: http://www.edu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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