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154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여 자기자본비율이 2002년 11.6%에서 1.5% 수준으로 급락. 이 때문에 2004년 5월 미쓰비시자동차는 약 4,500억 엔의 자본 확충과 사업구조조정을 골자로 하는 독자적인 회생계획을 발표. 그룹 계열사로부터의 증자 및 부채의 자본전환을 통해 4,500억 엔 자본 확충. 2005년 경상이익 흑자, 2006년 당기순이익 흑자(약 700억 엔)달성 목표. 자본 확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적자 확대로 재차 자본잠식의 위기에 봉착. 2004년 6월까지 회생계획보다 450억 엔 더 많은 4,950억 엔의 자본 확충. 미쓰비시 계열사(중공업, 상사, 은행 등 11개사) 및 중국 합작업체인 中華汽車등으로부터 출자 1,650억 엔. 도쿄미쓰비시은행, 미쓰비시신탁은행에 대한 채무의 자본전환 1,300억 엔. Phoenix Capital, JP 모건, 신일본석유 등 시장에서 자본조달 2,010억 엔. 일본 내수시장에서의 극심한 자동차 판매 부진에 직면. 미쓰비시자동차의 일본 내수시장 판매는 승용차가 전년비 44.3%나 감소했고, 트럭도 동 21.1% 감소(2004년 3월~2005년 2월 누계 기준). 같은 기간 타 업체는 평균 승용차가 3.2% 증가하고 트럭은 5.9% 감소. 추가 자본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도산이 불가피. 2004년 3/4분기까지의 적자가 전년도 적자를 상회하고, 연간(2004년 4월~2005년 3월) 약 4,720억 엔의 당기순손실이 예상. 추가로 자본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2004년도 말(2005년 3월기)미쓰비시자동차의 자기자본비율은 3.4%로 급락. 2004년 9월 일본 금융청은 미쓰비시자동차 채권에 대해 '도산우려' 등급으로 강등
미쓰비시자동차의 최근 5년간 경영실적(연결기준)
(억엔, %)
2000 2001 2002 2003 2004년3/4 누계 연간
매 출 32,267 32,007 38,849 25,194 16,179 20,350
영 업 이 익 -739 402 828 -969 -997 -1,320
경 상 이 익 -941 119 543 -1,103 -1,441 -1,970
순 이 익 -2,781 113 374 -2,154 -2,282 -4,720
총 자 산 29,817 28,946 24,254 20,290 16,121 13,730
자 기 자 본 2,561 2707 2,803 300 2,898 470
자기자본비율 8.6 9.4 11.6 1.5 18.0 3.4
주: 2004년 연간실적에서 총자산 및 자기자본은 2005년 3월 미쓰비시 그룹 각사에 의한 추가 증자가 없을 경우를 가정한 수치.자료: 미쓰비시자동차 결산자료('04년 연간실적은 '05년 1월 28일 발표한「再生計劃」)
독자적인 회생을 포기하고 그룹 주도의 회생 방침으로 전환
독자적인 회생의 한계에 봉착한 미쓰비시자동차가 2005년 초 결국 미쓰비시 그룹의 지원 하에 회생을 추진하기로 결정. 2005년 1월 미쓰비시자동차는 독자적인 회생계획을 포기하고 미쓰비시중공업 주도하에서 회생을 추진하는 新사업회생계획을 발표. 新사업회생계획의 골자. 미쓰비시 그룹이 2,700억 엔의 추가 증자를 실시하고, 미쓰비시중공업의 신용으로 미쓰비시자동차에 운전자금(약 2,400억 엔)을 지원. 니시오카(西岡喬)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이 미쓰비시자동차 회장 겸 CEO를 兼任함으로써 사실상 자동차를 중공업 산하로 편입. 2006년 당기순이익 흑자화를 실현하고 2007년부터 흑자 기반 정착(당초 계획인 2005년도 경상이익 흑자화 목표에서 1년 후퇴)
<2005년 1월 발표한 미쓰비시자동차의 新재생계획 개요>
분야 / 주요 내용
추 가 자본확충
- 미쓰비시 그룹 핵심 3사(중공업, 상사, 은행)로부터 추가 자본 조달 2,700억엔
- 미쓰비시자동차를 미쓰비시중공업의 지분법 적용회사로 편입
- 미쓰비시중공업의 신용을 담보로 2,400억엔의 운전자금 차입
구조조정
- 국내 판매점 축소: '03년 929개 점포 → '06년 800개 점포
- 국내외 자동차업체와의 제휴 확대
· 닛산에 경자동차 OEM 공급을 확대하고, 프랑스 후조시트로앵에
SUV(다목적스포츠카) OEM공급
- 종업원 구조조정은 당초계획대로 1만 1천명 감축
- 일본 국내외 생산설비의 폐쇄 및 합리화는 지속 추진. 다만 호주, 북미공장에 대해서는 減損처리주)하는 것으로 대체
경영실적
- 2006년 당기순이익 흑자화(약 80억엔), 2007년 흑자 기반 정착
(약 410억엔) 당초 2005년도 경상이익 흑자화 목표에서 1년 후퇴
주: 설비의 시장가치가 장부가액을 하회하는 만큼 직접 상각하여 손실로 처리함을 의미하며, 미쓰비시는 2004년도 결산에서 약 1,130억 엔의 減損처리를 결정
사업회생에 난항이 예상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인재의 사외유출이 가속화됨에 따라 향후 신차개발 등에 차질이 불가피하여 회생계획 실현에 애로가 예상. 2004년 5월 간접인력 30% 감원, 본사의 교토 이전, 오카자키 공장 폐쇄 등의 회생계획 발표 이후 사원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 회생계획에 대한 실현계획이나 후속 대책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사원들의 불안감이 더욱 확산. 이 때문에 일반 사원들의 퇴사는 물론 핵심인력들의 퇴사도 속출. 신차개발을 담당하는 승용차기술센터 직원들의 퇴사가 잇달아 발생1). 재생계획 수립을 위해 중견 핵심사원들로 특별 편성한 조직횡단팀(CFT: Cross Functional Team) 구성원 중에서도 퇴직하는 사례도 발생. 부품업체, 하청업체, 판매업체 등의 脫미쓰비시 현상도 가속. 신차개발인력 유출에 따른 연구인력 부족으로 인해 향후 미쓰비시자동차는 신차개발에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 개발인력 부족현상을 보충하기 위해 미쓰비시중공업의 연구자 및 기술자를 파견할 예정이지만, 자동차사업에 대한 기반이 약해 실효성에는 의문. 합작 파트너인 다임러클라이슬러가 미쓰비시자동차 경영에서 한발 후퇴. 당초 미쓰비시 그룹 측과 공동으로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자금지원(출자규모) 방안, 회생계획 수립 등을 추진해 오던 다임러는 2004년 4월 자금지원 중단을 선언. 2004년 4월 다임러 측에서 파견된 에크로트(R. Ecrodt) 사장도 사임. 다임러 측은 미쓰비시자동차에서 분리·설립한 미쓰비시후소 경영에 주력
참고1) 개발부문 인력을 중심으로 하루 10여명이 퇴사하여, 2004년 후반에는 특정 개발부서 전원이 모대형부품업체에 스카웃 될 사태까지 직면했다는 기사도 보도(週刊다이야몬드 '05년 2월 12일자)
<미쓰비시후소 트럭·버스>
2003년 1월 미쓰비시자동차에서 트럭, 버스 및 산업엔진 개발·제조·판매업체 분리·독립하여 설립한 회사
· 자본금 200억엔, 종업원수(단독 4,300명)
· 주요 경영지표(2003년): 매출 8,900억엔, 경상이익 327억엔
지분 보유비율: 다임러클라이슬러 85%, 미쓰비시 그룹 관계사 15%
· 설립당시는 미쓰비시자동차도 42%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04년 3월 22%,'05년 3월 나머지 20%를 다임러크라이슬러에게 양도
위기의 원인 및 배경
1. 위기의 원인
잇따른 불상사로 인해 기업 이미지를 완전 상실
90년대 후반 수차례의 불상사가 반복 재발함으로써 미쓰비시자동차의기업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상태. 미국 현지 자동차공장에서의 성희롱 사건(96년), 총회꾼에 대한 이익공여사건(97년) 등으로 사회적 파문이 야기. 2000년에는 자동차결함관련 리콜2) 정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 발각. 일련의 불상사가 기업 이미지 실추와 동시에 판매부진·수익악화로 이어져 이미 2000년에 약 2,800억 엔의 적자를 기록.
<미쓰비시자동차 관련 과거 주요 불상사>
불상사 시기 / 핵심내용
성희롱 사건 1996년 · 미국 미쓰비시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성희롱으로 제소 당해, 화해금으로 49억 엔을 지급
총회꾼 사건 1997년 · 별장 이용료 명목으로 총회꾼에게 이익을 공여, 현역 임원을 포함하여 3명의 간부가 기소
리콜은폐 사건 2000년 · 리콜ㆍ클레임 정보 은폐 사실 발각되어 63만대 이상을 강제로 리콜
참고2) 일본은 자동차에 결함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경우, 법규로 그 정도에 따라 리콜(안전·환경 기준에 부적합), 개선대책(기준에는 적합하지만 지장이 초래될 수 있는 경우), 서비스캠페인(상품성이나 품질상의 이상) 등 3가지로 구분하여, 메이커가 무상으로 회수·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메이커가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부과 또는 행정지도 처분을 함
2004년 3월 미쓰비시자동차가 트럭에 대한 리콜도 고의로 은폐해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시장의 불신감이 재차 폭발. 2004년 3월 미쓰비시후소와 미쓰비시자동차가 1996년도 이후 제조한 트럭·버스 약 12만대에 대해 타이어 이탈 문제로 리콜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그간 미쓰비시자동차가 고의로 리콜을 은폐해온 사실이 발각. 동년 5월에는 2002년 10월 클러치 파열로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약 2만 2천대의 리콜 실시. 미쓰비시자동차는 2002년 1월 요코하마에서 트럭 타이어 이탈로 母子가 사망한 사고 원인에 대해 정비 불량이라고 주장. 사내 자체조사에서 차체결함을 알고서도 국토교통성에 리콜을 신고하지 않고 自主점검 형태로 은밀하게 수리·교환해 왔음3). 2004년 5월 미쓰비시자동차는 國土交通省으로부터 '리콜 은폐문제'에 대한 소명을 요구하는 경고서를 발부받았음. 이후 미쓰비시자동차는 트럭 타이어 이탈 사고 및 클러치 파열 사고의 원인이 차체결함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인정. 2004월 4월 미쓰비시의 경자동차(eK 웨건, 미니카, 톳보BJ) 8만대에 대해서도 리콜을 신고. 트럭의 타이어 이탈 사고로 사회문제가 된 상황에서 신고한 리콜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경자동차에서도 타이어 이탈'이라며 미쓰비시의 자동차에 대한 불신이 증폭
참고3) 2002년 당시 미쓰비시자동차는 '00년 7월 리콜은폐 사건 영향으로 2001년 3월기에 대폭 적자를 기록한 이후 사업회생(턴 어라운드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타이어 이탈사고를 차량 결함으로 인정하여 리콜을 실시할 경우 흑자전환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었음
<미쓰비시자동차ㆍ미쓰비시후소의 트럭 리콜 관련 불상사 일람>
시기 사건 개요
'02년
1월 - 요코하마에서 동사의 트럭 타이어 이탈사고로 母子3명 死傷
10월 - 야마구치현에서 동사의 트럭 클러치 파열로 운전자 사망
'04년
3월 - 미쓰비시후소, 트럭 타이어 이탈 문제로 약 11만대 리콜 실시
4월 - 미쓰비시의 경자동차 타이어 이탈 문제로 약 8만대 리콜 실시
5월- 국토교통성, 미쓰비시자동차에 대해 트럭 리콜은폐 여부 규명을 요구하는 경고서를 발부
- 미쓰비시후소의 우사미(宇佐美隆) 前회장 체포
- 미쓰비시후소, 트럭 클러치 결함 문제로 2만 2천대 리콜 실시
6월- 90년대의 승용차 리콜 은폐사실이 발각
- 가와소이(河添克彦) 前사장 등 6명이 체포됨
'05년 3월
- 과거 리콜 은폐사실에 대해 인정하는 내용의 최종보고서를 국토교통성에 제출
기업회생 계획을 둘러싼 지배 주주 간 마찰도 위기 극복을 지연
미쓰비시자동차의 경영회생을 둘러싼 미쓰비시 그룹 측과 다임러크라이슬러 간 의견 상충도 미쓰비시자동차의 위기를 가속.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생에 필요한 추가 지원 자금 산정을 놓고 양측 간 상당한 견해차가 존재. 미쓰비시 그룹 측은 최대 5,000억 엔 규모를 산정하고 있었던 반면, 다임러크라이슬러 측은 7,500억 엔 규모를 산정4). 미쓰비시 그룹 측은 2007년에 흑자기반이 정착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으나, 다임러 측은 2009년까지도 적자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으로 비관. 2004년 4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CEO 쉬렘프(J.Schrempp)가 미쓰비스 그룹 3사에 추가부담을 요청했으나 미쓰비시 측은 다임러의 안을 거부. 다임러 측이 3,000억 엔 지원하는 대신, 미쓰비시 측이 4,500억 엔 지원. 동년 4월 하순, 미쓰비시 그룹측 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 측은 미쓰비시자동차에 대한 추가 출자를 거부. 다임러 측이 파견한 에크로트 미쓰비시자동차 사장이 사임하고 미쓰비시중공업 출신의 오카자키(岡岐洋一郞)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 이후 미쓰비시 그룹이 단독으로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생계획을 수립하여, 동년 5월 '미쓰비시자동차 회생계획'을 발표했으나 시장의 불신은 지속
참고4) 2005년 3월까지 미쓰비시자동차의 자본 확충을 위해 미쓰비시 그룹 측이 실제로 동원한 자금(직접출자 및 제 3자 할당)은 7,650억 엔으로 당초 다임러 측이 산정한 금액을 초과
미쓰비시자동차의 경영실적 악화가 주가 폭락으로 연결
이러한 일련의 불상사로 인해 미쓰비시자동차의 실적은 극도로 악화. 2003년도 실적 악화는 주로 해외요인과 회계처리 변경에 기인. 2003년도 미국시장에서 자동차 판매부진(전년비 20% 감소)으로 인한영업 손실 약 1,260억 엔, 자동차판매금융사업의 손실이 약 500억 엔 적자. 2004년도 손실에 대응한 이연세금자산 조기 상각액 약 1,400억 엔. 2004년 들어서는 리콜문제에 따른 불신감이 표면화되면서 미쓰비시자동차의 일본내수 판매가 극도로 부진
주가도 폭락. 미쓰비시의 주가는 2004년 4월 14일 334엔에서 8월 4일 76엔으로 불과 4개월 만에 77%나 하락. 2004년 3월 중순 주가가 일시적으로 상승한 것은 미쓰비시와 다임러에 의한 회생계획 마련에 대한 기대 때문. 99년 닛산과 대등한 수준을 유지하던 미쓰비시 주가는 2000년 이후 닛산과 격차가 벌어졌고, 2004년 4월 이후에는 마쓰다에도 크게 밀리기 시작
2. 불상사의 배경
과거 성공경험에서 비롯된 외형·성과주의 경영이 대량 리콜을 초래
90년대 초 RV, 경차 등에서의 성공이 외형위주의 경영을 초래. 버블 붕괴로 닛산이 고전하는 동안, 미쓰비시는「RV 붐」을 타고 4륜 구동차, 경차 등에서 연속 히트를 치면서 95년에는 닛산을 거의 추격. 90년대 초반에 나카무라(中村裕一) 사장이 선언했던 '2000년 일본 국내 시장점유율 15%, 100만대 생산체제"를 조기 실현할 것으로 기대. 이에 고무된 미쓰비시는 닛산 추월을 위해 일정위주의 신차발매 추진. 98년부터 2000년까지의 3개년 경영계획의 성공 경험도 미쓰비시가 무리한 성과주의 경영을 추진하게 된 요인으로 작용. 미쓰비시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개년 경영계획「RM 2001-원가절감 4,200억 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1년 앞당겨 달성. 여기서의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4월부터는 새로운 경영계획「하트 비트 21-2003년까지 원가 6,500억 엔 절감」을 목표로 추진. 이 과정에서「쓴 정보」는 차단되고 품질보다는 코스트를 우선하는 기업체질로 연결. 조직 전체적으로 상급자는 가급적 부하로부터의「쓴 정보」에는 귀를 막는 체질이 암암리에 형성. 닛산 추격과정에서 신차발매 시기를 늦출 가능성이 있는 보고(설계·개발 인력의 부족, 발매 전 검사 불충분 등의 지적 사항)는 거의 사장. 신차개발을 지연시킬 수 있는 품질문제를 제기하는 사원은 불평·불만을 가진 사원으로 인식되고, 매출 확대에 반하는 정보를 보고하는 임원은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풍토가 형성. 개발과정에서 원가·품질 간 트레이드 오프 상황이 생기면 원가를 우선시 하는 분위기도 형성. 미쓰비시에게는 이전부터「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자부심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가를 줄이면서도 품질을 커버할 수 있다고 인식. 그러나 무리한 원가절감 정책은 결과적으로 대량의 리콜 대상 차량을 발생시킨 원인으로 작용
조직분위기가 이완되고 위기에 둔감
조직 전체가 긴장감을 상실. 버블 붕괴 후 경영의 어려움으로 타사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동안 미쓰비시는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에 소홀. 미쓰비시자동차의 딜러도 본사가 할당한 판매 목표 달성에 치중하고 고객 서비스에는 소홀히 하는 분위기가 만연.위기에 처하면 그룹에서 구제해 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위기의식을 저하. '미쓰비시' 계열사가 위기에 처하면 그룹력으로 구제하는 사례가 일반화. 미쓰비시 그룹은 舊재벌계 기업집단 중 가장 강한 결속력을 유지5). 대부분 주력 계열사가 '미쓰비시'란 브랜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브랜드도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 결과적으로 미쓰비시자동차도 그룹력을 통해 도산위기를 극복
참고5) 다만 최근 들어 그룹 주거래은행 간 합병 등의 영향으로 은행 미쓰비시 그룹도 ‘기업 그룹’으로서의 구심력과 존재 의식이 약화되는 경향
<경영난에 빠진 계열사를 미쓰비시 그룹차원에서 지원한 사례>
시기 회사명 내용
'84년 미쓰비시석유
· 美게티오일이 방출한 미쓰비시석유 株3억 3,500만 달러 상당을 그룹 각사(金曜會소속사)가 매입해 유통을 막음
· 99년 미쓰비시상사 주도로 日本석유 합병
'91년 우주통신
· 90년 인공위성발사 실패로 손실이 누적되자, 金曜會28사가
400억엔의 추가 출자를 실시하고, 98년에는 그 상당액을 감자
해 同社의 450억엔 누적손실을 압축
'98년 다이이치 電工
· 미쓰비시電機와 도쿄미쓰비시은행 주도로 증자와 채권포기 등의 형태로 380억 엔 지원
· '02년에 스미토모電氣의 피복전선 부문과 통합
'99년 치요다 화공
· 상사 주도로 그룹계열사가 113억엔 규모의 증자 추진
· '01년에도 상사와 은행은 200억엔 이상의 금융지원 실시
문제의 원인을 규명·근절하기보다는 경영진 교체 등 미봉책으로 대응
미쓰비시는 지난 10여 년간 불상사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을 규명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경영진 교체로 일관. 95년부터 2005년 초까지 10여년 간 7명의 사장단이 교체. '96년 성희롱 소송에 대한 인책으로 쓰카와라(塚原董久) 사장을 경질. '97년 총회꾼에 대한 이익공여 사건으로 나카무라(中村裕一) 회장, 기무라(木村雄宗) 사장이 사임. '00년 리콜 은폐 사건으로 가와소이河添克彦) 사장을 경질. '05년 1월에도 2004년 5월에 세운 사업회생계획의 추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오카자키(岡岐洋一郞)회장, 후루카와(고천 洽次)부회장, 다가야(多加谷秀保) 사장 등 3명의 경영진이 경질.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지 않은 채 경영진만 교체될 경우 차기경영자에게 과거의 문제를 떠넘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
시사점
불상사가 발생하면 원인규명 및 초기 진화에 주력. 초기단계에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고 소비자·사회에 대한 설명 책임에 충실함으로써 문제가 확산되거나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건을 예방. 미쓰비시는 사고 발생 시 이를 초기단계에 철저히 조사하여 설명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부인·은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업 존망의 위기까지 몰림. 경영자는 기업불상사 발생의 모든 책임을 지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함. 사내의 '쓴 정보'도 최고경영자까지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는 '트인 言路'를 구축. 기업의 경영방침에 반하는 정보나 목소리도 상급자와 경영자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채널이 필요. 공식적 채널 구축보다는 비공식적인 토론과 커뮤니케이션 분위기가 중요. 미쓰비시자동차가 결함을 양산하고 은폐하게 된 데는 사내의 '쓴 정보'에 귀를 막는 조직 분위기·체질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 사원의 문제점 지적과 개선의 목소리가 불평·불만으로 인식되고, 임원의 매출 확대에 반하는 보고가 무능으로 여겨지는 풍토 속에서 진정한 '쓴 정보'도 死藏
종업원에서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위기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는 조직을 구축. 과거의 성공경험이나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항상 위기의식으로 새로운 변화에 도전. 도요타가 매년 사상최고의 이익을 경신할 수 있었던 것은 사원이나 경영자가 항상 위기의식으로 개선책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 미쓰비시는 과거의 성공경험과 자신의 기술력에 자만하여 무리한 목표를 추진했기 때문에 결함 차량을 양산. 결과적으로 어려울 때 더욱 부담을 가중시키는 '負의 자산'으로 작용. 그룹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홀로 서기' 할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 구축. 이제 국내 기업도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으로 그룹 계열기업이 특정 기업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란 사고는 버려야 함. 그룹 계열 기업을 Captive Market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더 까다로운 고객으로 인식하고, 출자나 자금 지원도 더 높은 IRR(내부투자수익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 미쓰비시 그룹에 존재하는 '「미쓰비시」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사고가 미쓰비시자동차의 위기를 장기화. '위기에 처하더라도 그룹이 지원해 줄 것'이란 낡은 사고가 기업체질을 약화시키고 위기 극복 능력을 약화. 조직 쇄신을 통한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필요. 잘못된 과거의 잔재, '負의 유산'를 청산하여 새로운 도약을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외부로부터 과감한 수혈도 필요. 위기에 처한 닛산은 외국인 경영자 카를로스 곤 사장을 영입한 것을 계기로 개혁과 적자탈출에 성공. 미쓰비시자동차도 외국인 경영자(에크로트)를 영입하여 사업 회생을 추진해 오는 도중 불상사로 인해 회생에 실패.
최근 일본에서는 여성 CEO, 외국인 CEO도 과감히 등용하여 위기 탈출과 변화를 시도하는 분위기가 확산. 과거의 명성을 상실하고 부진을 지속해오던 소니는 2005년 3월 외국인스트링거(H. Stringer)씨를 회장 겸 CEO로 등용하여 부활을 도모. 실적악화로 위기에 처한 산요전기는 2005년 4월 여성 사외이사 노나카도모요(野中ともよ, 50세)씨를 회장 겸 CEO로 등용하여 조직쇄신과 위기탈출 시도. 경영회생을 추진 중인 대형수퍼다이에는 '05년 3월 하야시 후미코(林文子, 58세) BMW도쿄 前사장을 회장 겸 CEO로 영입
삼성경제연구소 구본관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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