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절지사 동은 이중언 선생 어록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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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09-10-14 10:07
천안--(뉴스와이어)--오는 10월 15일(목) 오후 2시 독립기념관에서는 일제침략에 항거하여 자정순국하신 동은 이중언 선생의 뜻을 기리는 어록비 제막식이 독립기념관 시어록비공원에서 개최된다.

독립기념관에 세워지는 이중언 선생의 어록비에는 “한 치 흔들림 없이 빼앗긴 내나라 위해 오직 이 한 목숨 던지노라”는 이중언 선생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어록비는 비신과 좌대를 보령오석으로 가로 1.5m, 세로 4.9m이다.

동은 이중언 선생 어록비 제막식 주요 참석인사는 김영일 광복회장, 김주현 독립기념관장, 안주섭 전국가보훈처장, 권영해 전국가안전기획부장, 이준 전국방부장관, 이흥복 전대전고등법원장, 이경희 동은이중언선생기념사업회장과 퇴계 이황 선생의 종손 이근필 선생, 군장교 선후배 및 천안동문과 진성이씨 문중 등 500여 명이 참석한다.

독립기념관은 현재 경내 야외 곳곳에 애국시·어록비를 건립하여 이를 교육자료와 전시물로 활용하고 있으며, 총96기의 시·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동은 이중언 선생 약력

1850년 2월 12일 안동시 도산면 하계리에서 대 성리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1대손으로 출생한 이중언 선생은 1879년 5월 대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가 1892년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봉화군 임당산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1896년 1월 안동 선성의진의 진무장과 전방장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3월 태봉전투에 참가하였다가 6월 선성의진 해산으로 봉화(奉化)에 은거하였다. 1903년 하계마을로 돌아와 동암(東巖) 바위 아래 집을 짓고 나라의 운명을 근심하면서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죽음을 각오하고 선조의 사당에 고하고 한양으로 상경하여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 다섯 역적의 목을 베소서)’을 올리고 통곡하며 돌아온 뒤 세상과 발을 끊었다. 이어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왜적 치하에서는 살려고 음식 먹는 일은 결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9월 8일 단식을 결심하였다.

이튿날 9월 9일 동은 이중언 선생은 일제에게 보내는 ‘경고문(警告文)’ 을 쓰면서 “한치 흔들림 없이 빼앗긴 내 나라 위해 오직 이 한 목숨 던지노라”고 서릿발 같은 뜻을 밝혔다. 이어서 일제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굽히지 않고 맞서다가 순절 직전 ‘술회사(述懷詞)’를 읊으며 빼앗긴 나라를 탄식했다. 10월 4일 단식 27일 째, 동은 이중언 선생은 순국하였다.

이후 1962년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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