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2010년 2월의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 전시회 개최

뉴스 제공
독립기념관
2010-01-28 09:41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상덕(金尙德) 선생을 2010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전시회 기간 : 2010. 2. 1 ~ 2. 28
▶ 전시회 장소 :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
▶ 전시 내용 : 도쿄 유학시절 당시 김상덕 선생 등 관련 사진자료 20점

김상덕 선생은 1891년 12월 10일 경상북도 고령군 저전동(현 고령읍 저전리) 558번지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7년부터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에서 공부한 선생은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되는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 등에 참여하며 한인 유학생들과 민족운동방안을 모색했다.

선생은 1919년 1월 6일 도쿄에서 조선유학생학우회가 주최한 웅변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독립선언서 작성과 발송을 위한 실행위원으로 선정되어 김도연·백관수·최팔용 등과 함께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마침내 2월 8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날의 독립선언으로 선생은 1920년 2월까지 옥고를 치렀다.

1920년 3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2년 1월에는 소련의 모스코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도 참여하였다. 1923년 1월 개최된 국민대표대회에 경상북도 대표자격으로 참가한 선생은 임시정부를 유지하면서 개혁하자는 개조파의 선언서 수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에는 상해청년동맹회를 결성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도모했다.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다가 1920년대 중반 만주로 옮긴 선생은 재만농민동맹의 중앙집행위원 겸 책임비서, 정의부의 중앙집행위원, 시사연구회 책임비서로 활동하였고, 1928년 5월에는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를 개최하여 만주에서의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2월에는 지린(吉林)에서 혁신의회와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를 조직하여 민족유일당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1931년 9월 일제의 만주침략으로 다시 중국 관내로 건너온 선생은 신한독립당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35년 7월 난징(南京)에서 민족대당으로 창당된 민족혁명당에 참여했다. 그리고 민족혁명당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선생이 소속되어 활동하던 민족혁명당이 1942년 임시정부에 참여를 선언하면서 선생은 제34차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학무부 차장, 문화부 부장 등을 역임하며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노력했다.

광복 후 1945년 11월 환국한 선생은 비상국민회의 대의원과 민족통일총본부 총무부장을 지냈고, 1948년 5월 제헌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6.25전쟁때 납북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2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웹사이트: http://www.i815.or.kr

연락처

독립기념관 기획조정실
김석중
041-560-0229
이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