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초청공연

서울--(뉴스와이어)--세계 정상의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9년 만에 다시 예술의전당 무대를 찾아 온다. 1세기가 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최상의 테크닉과 다이나믹한 앙상블, 유려한 사운드로 세계 무대에서 그 권위를 확고히 해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2003년 볼프강 자발리쉬의 뒤를 이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내한은 2005년 상반기 음악계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공연. 또한 함께 악단과 호흡을 맞출 피아니스트 랑랑,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김도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며 세계 음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연주자로 해외 전언으로만 들은 이들의 협연 무대를 처음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벨벳보다 부드럽고 황금보다 휘황찬란한, 필라델피아 사운드
흔히들 미국을 대표하는 메이저 오케스트라 다섯 팀을 가리켜 ‘빅 파이브’라 일컫는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들. 이 중에서도 펜실베이니아주 동쪽에 위치한 대도시 필라델피아의 문화적 상징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가장 개성적인 음색을 소지하고 있는 악단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각 파트마다 포진되어 있는 정상급 테크닉의 연주자들이 세월의 흐름에도 오케스트라 본연의 소리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기에 더더욱 돋보이는 존재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발족된 해는 1900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하여 시민 지도자들이 주도한 자선 음악회가 계기였다. 사람들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응할 관현악단 하나를 만들어 보자고 합의했으며, 그러한 논의는 이내 결실을 맺었다. 독일계 지휘자인 프리츠 셸을 초대 상임으로 같은 해 11월 16일 역사적인 첫 콘서트가 열렸다. 1907년 셸이 별세하자 슈투트가르트에서 생활하던 카를 폴리히를 2대 상임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번성기는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명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1882~1977)가 등장한 1912년부터였다.

취임 당시 나이 30세. 스토코프스키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모험가이자, 개척자였다. 매사에 보수적이었던 전임자와는 달리 레퍼토리를 일신함은 물론, 음향 효과를 올리려 악기의 무대 내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보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청중의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열 손가락의 마술사’라는 애칭답게 우아하고 멋스런 지휘 포즈도 톡톡히 한 몫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스토코프스키의 혜안이었다. 그는 새롭게 개발되는 미디어의 잠재력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1925년 베를린에서 전기 음향학을 공부하고 와 미국 최초로 전기 녹음을 시행하였다. 라디오 방송이 본격화되자 곧바로 음악 프로그램 연주를 떠맡았으며(1929), 유성 영화의 가능성에 매료되어 <오케스트라와 소녀>(1937)라는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스토코프스키는 실력 있는 단원들을 보충하고, 값비싼 악기를 속속 사들였다. 바야흐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이란 수식어에 합당한 명문 악단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퇴임 후에 제작된 필름이지만 애니메이션과 클래식을 결합시킨 월트 디즈니의 야심작 <판타지아>(1940)를 보면 스토코프스키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스펙터클한 음악을 창출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1938년, 스토코프스키는 2년 전부터 부지휘자로 근무하던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유진 오먼디(1899~1985)에게 상임직을 물려주기로 용단을 내렸다. 외형상 두 지휘자는 대조적이었다. 현란하고 비주얼한 스토코프스키에 비해 오먼디는 소탈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신사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다섯 살에 부다페스트 왕립 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했던 신동이었으며, 스스로를 ‘민주적인 독재자’라 공언할 만큼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오먼디는 초창기에 불거져 나왔던 소소한 불평들을 제거하고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장악하였다. 본인이 이상으로 하는 소리를 얻기 위하여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모든 현파트의 보잉 및 운지법을 일일이 지정하였다. 400종에 가까운 방대한 양의 레코딩을 내놓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렸다.

그렇다면 스토코프스키가 창안하고 오먼디가 심혈을 기울여 조탁한 이 악단의 톤은 과연 어떠한가? 이른바 ‘필라델피아 사운드’라 지칭되는 음향적 특질의 비결은 무엇보다 스트링 섹션에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현파트의 울림은 오로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이다. 벨벳처럼 촉감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윤기가 외피에 자르르 흐른다. 곡조에 따라 시시각각 빛깔을 바꾸어가며 풍성한 물결로 휘감아 친다. 관 파트도 뒤지지 않는다. 세계 제2차 대전 뒤 독일의 명장 슈미트 이세르슈테트가 북독일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립하며 ‘콘서트헤보우와 필라델피아가 결혼한 관’을 목표로 삼았으니 말이다. 탁월한 기량으로 맛깔스러운 솔로를 들려주는 목관,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금관이 균질성 높게 블렌딩되어 휘황찬란한 사운드를 빚어내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고유의 소리라는 것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즈음,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진실로 가치 있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40년 넘는 긴 세월을 단원들과 동거동락하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황금기를 구가했던 오먼디는 1980년, 스스로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후진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한 속 깊은 배려이리라. 그를 대신해 음악감독을 넘겨받은 주인공은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의 열혈남아 리카르도 무티(1941~)였다. 이미 1977년부터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던 무티는 별 어려움 없이 악단을 인계받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남국의 붉은 피를 오케스트라에 수혈하여 대폭적인 체질 개선을 꾀하였다. 특별히 오랫동안 사장되어왔던 필라델피아의 오페라 연주 전통을 부활시키는 것이 주력 포인트였다. 그로 인하여 베르디와 푸치니 등의 오페라가 여러 편의 콘서트 형식으로 상연되었다. 다만 오먼디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명석한 음형 디자인에 치중하여 특유의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과거보다 현저히 희석되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무티와 오케스트라 간의 관계가 삐걱거리자 악단 측은 구원 투수 감으로 뮌헨 출신의 맹장 볼프강 자발리쉬(1923~)를 초빙하기로 결정했다. 자발리쉬라 하면 아헨, 비스바덴, 쾰른 등 독일 각 지역의 오페라극장을 순회하며 튼실한 관록을 쌓은 정통파 커리어의 소유자 아니던가. 1971년부터는 바이에른 국립 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 재직하며 R. 슈트라우스 및 바그너 해석의 권위자로 명망이 최고조에 이르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자발리쉬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의뢰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1966년 유럽 순회공연 때 한 차례 지휘한 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1984년부터 정기적으로 객원 무대에 올랐던 그로서는 필라델피아가 신선한 도전 대상으로 느껴졌던 것이었다. 1993년 상임으로 취임한 자발리쉬는 단원들에게 단정한 절도와 중후한 음감을 주입시켰다. 노련한 리드 덕택에 일간 소원해졌던 파트너쉽은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애초에 오페라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까닭에 불만이 끊이지 않았던 아메리카 뮤직 아카데미에서 최신식 홀인 킴머 센터로 본거지를 옮긴 것 또한 잊지 못할 그의 큰 공적이다.

훌륭하게 업무를 완수한 자발리쉬는 여든 나이를 맞이하는 2003년 계관 지휘자로 퇴진하며 신세기의 명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1941~)에게 음악감독 자리를 이양하였다. 국내에서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에센바흐는 지휘자로서의 커리어에 집중하고 있는 지 오래다. 1988년에서 1999년 사이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으로 재임하며 이 악단의 위상을 몇 단계 제고시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그 외에도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페스티벌, 라비니아 페스티벌 등을 이끌면서 빼어난 음악성을 과시하였다. 특히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내는 브루크너, 말러가 관현악 매니아들에게 정평을 얻고 있다. 그는 제7대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감행하였다. 청중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 격식을 탈피한 편안한 복장으로 콘서트에 임하는 한편, 연주하기 직전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이해도를 향상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들의 기호에 무조건 영합하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제니퍼 히그던, 브라이트 솅, 다니엘 켈로그, 매그너스 린드버그 등 현존하는 작곡가들의 신작과 커플링하여 연주하겠다는 2005~2006 시즌 메인 프로젝트가 야심 차다. 2008년 완결될 말러 사이클도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1930년대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며 한창 명성을 떨치고 있던 거인 토스카니니는 이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항상 경탄을 표하였다. 스토코프스키와의 합의 하에 서로의 악단을 교환해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 단체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이다. 시대를 거슬러 현재로 돌아와 보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영국과 유럽 내 활동으로 굉장히 바쁘다. 미국 쪽 앙상블에는 거의 눈 돌리지 않는다. 그러한 그가 유일하게 객원 지휘하는 악단이 하나 있다. 그 단체가 바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이다. 2005~2006 시즌에도 나타나 러시아의 현대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작품을 초연할 예정이다. 현 상임지휘자 에센바흐는 북독일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포스트를 박차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손을 잡았다. 도대체 이 악단이 어떠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수많은 명지휘자들이 끌려 들어가는 것일까? 다가오는 6월, 예술의전당에서 거행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콘서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에서 오케스트라 군주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하면 아직도 대다수 감상자는 섬세한 터치를 지닌 피아니스트를 떠올릴 것이다. 모차르트 소나타(DG)에서 그가 들려준 영롱한 음색과 유연한 프레이징은 작곡가의 본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제 수많은 악기의 소리를 통합시키는 지휘자로 변신하여 팬들 앞에 섰다. 전환기는 1960년대 후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조지 셀에게 4년간 가르침을 받은 그는 1972년 함부르크에서 훌륭하게 지휘자로 데뷔했다. 그 후 20년간 콘서트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생활을 병행했다. 80년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제, 시카고의 라비니아 음악제 감독, 88년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에셴바흐는 포디엄 위에서도 피아노와 동일한 수준의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파리 오케스트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인 그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통한다. 내한 공연에서 들려줄 바르토크와 말러는 정점의 커리어에 있는 에센바흐의 명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랑랑(Pf)과 데이비드 김(Vn)

건반 위에 중국 바람을 일으키다, 피아니스트 랑랑

1999년 8월 14일, 별이 총총한 미국 시카고의 라비니아 페스티벌 마지막 밤은 한 명의 스타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중국에서 온 17세 피아니스트 랑랑. 97년에 도미,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대 2학년째를 맞은 그는 음악회 2주전만 해도 다음 연도 페스티벌 오디션을 준비중이던 ‘수험생’에 불과했다. 당시 페스티벌 매니저가 “만약 페스티벌에 출연하게 되면 어떤 곡을 연주하고 싶은가”란 질문을 던졌을 때 랑랑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런데 행운이 작동했다. 원 출연자였던 노장 앙드레 와츠가 몸살감기로 연주회를 취소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대역을 찾게 된 주최 측에게 시간은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구원의 손길은 오디션 때 호감을 샀던 랑랑에게로 뻗칠 수밖에 없었다. 사회자인 아이작 스턴의 소개로 맨 먼저 무대에 올라선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을 연주했다. 이날 랑랑은 1600여 청중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장밋빛 미래를 예약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놀라운 테크닉과 완전한 통제, 유연한 리듬, 탄탄하게 여문 톤 - 이 모든 것이 이미 그의 피아니즘에 배어 있다.” 고 평했다.

필라델피아에 뜬 한국의 별, 데이비드 김

랑랑이 라비니아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할 무렵, 필라델피아의 음악계에서는 작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1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유태인이 아닌 인물이 악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그것도 다른 영미권 연주자가 아니라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김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했다. 1964년 일리노이 카번데일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 살에 저명한 도로시 딜레이 문하에 들어갔으며,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데이비드 김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8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명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당시 미국 국적으로 참가한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유일하게 입상하면서부터이다. 이후 그는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유망한 솔리스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실내악 활동을 통해 더불어 연주하는 묘미를 깨닫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98년 한해를 댈러스 심포니의 부악장으로 보낸 뒤 99년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된다.
미국의 ‘빅5’에 속하는 악단의 악장으로서 그가 갖는 특권을 대단하다. 우선 시즌마다 어떤 세계적인 지휘자와 협연자를 초청할지, 어떤 레퍼토리를 연주할지 결정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악단이 대여하는 명기 과르네리의 사용권과 시즌별로 악단과 협연할 기회를 갖는다. 이와 함께 책임도 막중하다. 100명이 넘는 단원의 대표로서 지휘자와 악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조율해야하는 하며 현악기군의 앙상블을 고르게 다듬어야 한다. 지난 6년간, 특히 에센바흐의 부임이후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로 듣는 바르톡과 말러

첫 날 공연인 6월 6일은 드보르작의 ‘카니발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다음 날인 6월 7일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말러의 ‘교향곡 제1번 거인’이 연주된다.

첫 날 메인 프로그램인 벨라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기교를 시험하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스펙터클한 음향 효과와 더불어 헝가리의 이국적인 선율이 일품이며 좀처럼 실연으로 듣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바르톡의 원시적인 에너지를 만끽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협연 프로그램인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번’은 이미 두 번의 내한 연주를 통해 한국 팬에게도 낯익은 랑랑이 연주한다. 그러나 이번 연주는 독주가 아닌 협주곡, 특히 연주자를 스타로 만든 차이코프스키 1번을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 번째 내한 공연의 의미는 남다르다. 랑랑이 지난해 바렌보임과 녹음한 앨범(DG, 시카고 심포니 협연)을 들어보면 그의 해석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악장에서 웅혼한 기상을 담은 타건, 2악장의 섬세하고 정밀한 터치와 3악장의 질풍 같은 타건은 연주자가 ‘신동’에서 ‘예비 거장’으로 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내한 공연에서 랑랑을 서포트 할 에센바흐는 다름 아닌 라비니아에서 호흡을 이뤘던 지휘자이다. 그리고 자신이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누구보다 피아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악단은 그가 수학한 커티스 음대와 각별한 유대관계에 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그 파트너십이 어떠한 결과를 나을지 흥미진진하다.

이번 공연에서 최대 관심은 필라델피아의 실연으로 감상하는 둘째 날 메인 프로그램인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보헤미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가 1888년에 완성한 첫 번째 교향곡으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정평이 나 있다. 1악장 서주의 신비스런 분위기 연출, 2악장의 자연스러운 랜틀러(독일 무곡) 리듬, 3악장의 세기말적 탐미, 4악장의 가슴 터질 듯한 환희를 완벽하게 살리려면 지휘자의 탄탄한 리더십과 일급의 합주력 없이 불가능하다. 에센바흐에게 기대를 갖는 것은 그가 이미 휴스턴 심포니를 이끌고 만든 음반(Koch)에서 만족스런 해석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짜임새 있는 앙상블을 바탕으로 그는 과다한 센티멘털의 유혹을 배제하면서 말러가 추구한 표제적인 특징들을 투명한 텍스트로 드러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1946년 드리미트 미트로풀로스의 지휘로 처음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한 이래 오먼디, 오자와, 줄리니, 텐슈테트, 틸슨 토마스, 무티, 샤이 등 수많은 말러 지휘자를 따라 다양한 해석을 경험했다. 2002년부터는 뒤투아와 에센바흐의 지휘 아래 새로운 말러 사이클에 도전 중이다.
바이올린 협연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악장인 데이비드 김이 맡는다. 이미 올해 2월 자발리쉬의 지휘로 필리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서 연주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쓴 지 4년 뒤인 1878년, 차이코프스키가 이혼의 아픔을 딛고 스위스 제네바의 평온한 별장에서 작곡했다. 초연을 부탁받은 저명한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우어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고난도의 기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연주자에게는 지옥을 맛보게 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미로 인한 유명세 때문에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1905년 전설적인 연주자 프리츠 크라이슬러를 초청하여 첫 연주회를 가진 이래, 후버만, 스턴, 오이스트라흐, 펄먼, 장영주 등 거의 모든 20세기 스타들을 독주자로 맞이하면서 작품을 체화했다. 연주회가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Philadelphia Orchestra
1900년 창단 이후 한 세기 동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역사적인 해외 순회 공연을 포함하여 명성을 자랑하는 주요 공연들, 유례 없는 혁신적인 녹음 기술을 바탕으로 한 베스트셀러 음반 등을 통해 세계 일류 오케스트라로서의 입지를 확보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창단 이후 100년이 넘는 역사에 단지 6명의 음악감독을 거치면서도 단합된 하나의 통솔력 하에 유지되어 왔다.

이 같은 값진 전통은 2003년 9월부터 오케스트라의 7대 음악감독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에센바흐와 함께 오케스트라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막을 올림에 따라, 필라델피아는 “하나의 소리, 하나의 도시, 하나의 문명(A Sound, A City, A Civilization)”으로 명명된 1억 2천 5백만 달러 규모의 기금 마련 캠페인을 근간으로 5년간의 대중적 활동 시기에 돌입했음을 선포했다. 이 대대적인 캠페인은 Anneberg 재단에서 5000만 달러를 자선 기부한 것을 비롯, 주요 지도층의 기부금을 얻어내는 등의 성과에 힘입어 목표액을 당초 7,500만 달러에서 1억 2천 500만 달러로 상향했다.

에센바흐의 음악감독 지명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몇몇 중대한 이정표가 될만한 성과들을 이루어왔다. 2002-03 시즌에는 10년간 성공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볼프강 자발리쉬의 업적에 찬사를 표하는 의미로 세 장으로 이루어진 슈만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키멜센터(Kimmel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KCPA)의 버라이즌 홀(Verizon Hall)에서 처음으로 녹음된 음반이며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키멜 센터의 완공을 앞둔 2000년 유럽 투어를 비롯하여 2001년 아시아와 미국 투어 및 오케스트라의 100주년 기념 공연들을 끝내고, 2001년 12월, 새로운 보금자리인 키멜 센터로 본거지를 옮겼다. 이후, 2003년 봄에는 미국 및 멕시코 등 남미의 9개 도시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며, 2004년 봄에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에센바흐와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매년 300여 회 이상의 연주활동을 비롯하여 간행물, 음반, 방송 등을 통해 전 세계 백만 명 이상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매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의 겨울 정기 시즌에는 교육 프로그램과 지역사회 공동 프로그램을 개최하며 매 시즌 뉴욕 카네기 홀에서는 필라델피아 공연 시 호평 받은 몇몇 공연들을 선정, 앙코르 연주회 시리즈를 선보인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여름 시즌은 필라델피아 만 아트 센터(Man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에서 한 달간 지역주민을 위한 무료 야외 공연 후, 매년 8월 뉴욕 북부의 사라토가 아트 센터(Saratoga Performing Arts Center)에서 3주동안 머물며 연주회를 갖는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를 주최하는 키멜 센터에는 오케스트라형 디자인으로 특별 건축된 2,500석의 버라이즌 홀과 실내악 연주회를 위한 650석의 페럴만 씨어터(Perelman Theater) 등 두 개의 공연장이 있다.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와 아르텍社의 음향전문가인 러셀 존슨에 의해 디자인된 키멜 센터는 음악회, 녹음, 교육 활동을 위한 최첨단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이 기념비적인 건물은 공사 당시 개인 자격으로 가장 많은 기부를 한 필라델피아의 유명 사업가 겸 자선가인 시드니 키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키멜은 1995년 이래 오케스트라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키멜 센터로 옮기기 이전까지 오케스트라가 101회 시즌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공연해 온 역사적인 공연장인 뮤직 아카데미(Academy of Music)와 새롭게 오픈한 키멜 센터는 키멜 센터 법인(Kimmel Center Inc.)에 의해 독립된 문화 기관으로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곳에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이외에도 여러 연주 단체들이 상주하고 있다. 키멜 센터 법인(KCI)은 키멜 센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유지 및 관리를 맡고 있다. 또한 1957년 이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회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뮤직 아카데미를 주관하고 있으며, 오케스트라는 키멜 센터로 보금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매년 이 곳에서 아카데미 기념 콘서트와 연회를 주최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음악감독 Christoph Eschenbach, Music Director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서 역동적이었던 취임 시즌을 마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이번 시즌 역시 오케스트라와의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동맹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에센바흐는 뛰어난 현장감, 탁월한 재능, 풍부한 음악적 이해력으로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 하우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객원 지휘자로서도 인기가 높아 정기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고 있다. 창조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지휘자로서나 협력자로서, 그리고 젊은 음악인들을 위한 열렬한 후원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의 역동적인 에너지는 그가 “우리 시대 최고의 음악인 중 하나”로 칭송 받게 하고 있다.

에센바흐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시즌은 2004년 9월 21일,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협연한 R. 슈트라우스의 “Four Last Songs” 과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으로 꾸민 오프닝 나이트로 시작되었는데, 특히 교향곡 8번의 선곡은 오케스트라가 드보르작 서거 100주년을 맞아 장기적으로 드보르작을 비롯한 체코의 작곡가들에게 집중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에센바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플레밍은 10월 6일 카네기 홀에서 열린 시즌 오프닝 갈라에서 첼리스트 요요마와 함께 다시 같은 무대에 섰는데, 이 공연은 PBS에 의해 미국 전역에 중계될 예정이다.

에센바흐는 지난 1월, 2004-05 시즌의 중점 행사인 “Lake Great Works”라고 명명된 4주간의 페스티벌에서 지휘를 맡았다. 이 페스티벌은 모짜르트, R. 슈트라우스, 말러, 차이코프스키, 바그너, 베리오의 후기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이 삶의 황혼기에 자신의 삶과 작품들을 돌이키며 발견해 낸 변화된 창조성을 탐구하였다. 이 밖에도 에센바흐는 카네기 홀에서 열린 세 번의 공연 - 11월 23일 말러 교향곡 5번, 1월 11일 말러 교향곡 9번 (이 두 공연은 오케스트라가 다섯 시즌 계획으로 시작한 말러 사이클의 첫 연주회였다), 그리고 1월 18일 바그너의 파르지팔 3막과 커플을 이룬 베리오의 STANZE - 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또한 에센바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난 11월과 올 3월에 각각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와 뉴저지 아트센터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며, 실내악 연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로 출연해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에센바흐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그들이 함께 한 두 번째 시즌을 마감하며 5월 말부터 한국을 포함한 3주간의 아시아 투어에 들어간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연주 이외에도 이번 시즌 에센바흐가 지휘한 다른 공연으로는 9월에 개최된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50주년 기념 시즌 오프닝인 브라이언 터펠이 출연한 오페라 <돈 죠반니>와 11월에 지휘한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과의 정기 연주회 시리즈가 있다. 또한 2000년 9월부터, 에센바흐가 음악 감독으로 재직 중인 파리 오케스트라와는 2004년 10월 중국 투어, 2005년 2월 독일 투어, 그리고 2월과 4월에 열린 브람스 페스티벌 등에 함께 참여하였다. 마에스트로 에센바흐의 2004-05 시즌 이후 일정으로는 2005년 여름 세인트 데니스 페스티벌과 스트라스부르그 뮤직 페스티벌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다.

다수의 음반을 녹음하기도 한 에센바흐는 지휘자 및 피아니스트로서 여러 음반을 발매하였다. 그의 연주는 Ariola, BMG, CBS/Sony, Claves, Decca, DGG, EMI, Koch International Classics, Pickwick International, RCA Red Seal, Telarc, Teldec, Virgin Classics 등 거의 모든 주요 클래식 레이블에서 CD로 발매되었다. 그가 녹음한 음반은 바흐, 브람스, 베를리오즈, 말러, 멘델스존, 메시앙, 생상, 슈만, 스트라우스, 차이코프스키 등 주요 작곡가들의 작품을 망라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현대음악의 옹호자로서 아담스, 베르그, 글래스, 로리, 피커, 핀쳐, 루즈, 쉬니트케, 쇤베르그, 베베른과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녹음하기도 했다.

에센바흐의 가장 최근 음반은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음반이다. 이 외에도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마티아스 핀쳐(Matthias Pintscher)의 Sur depart Herodiade Fragments, Music from Yhomas Chatterton를 Teldec에서 발매하였으며, 에센바흐 지휘, 미도리, 노부쿠 이마이 협연의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역시 같은 오케스트라와 미도리와 함께 에센바흐가 지휘자이자 협연자로 연주한 이중 협주곡을 Sony에서 발매하였다. 또한 슈만의 네 개 교향곡을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CD 세트(BMG)와, 휴스턴 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말러 교향곡 1번, 브루크너 교향곡 2번, 교향곡 6번 (Koch International Classics), 그리고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비엔나 필하모닉과 함께 녹음한 음반은 ‘Strauss Heroines’(Decca)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으며, 플레밍이 노래한 R. 슈트라우스의 ‘Four Last Songs’과 바흐와 브람스의 작품들을 녹음한 ‘Schoenberg Orchestrations’ 음반은 모두 휴스톤 심포니와 함께 연주, BGM 레이블로 구할 수 있다. RCA Red Seal 음반으로는스티븐 이설리스, 독일 챔버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슈만 첼로 협주곡,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 및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이 있다. ‘Second Viennese School’을 담고 있는, 휴스톤 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두 장의 CD로 만들어진 앨범(Koch International Classics)은 LA Times로부터 “명석함과 표현력의 정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Virgin Classics/EMI와 Pickwick International에서 역시 휴스톤 심포니와 함께 모차르트부터 브람스에 이르는 레퍼토리를 녹음하였다. 1997년 Telarc에서는 크로스토퍼 루즈의 교향곡 2번과 플룻 협주곡이 최초로 에센바흐의 지휘 아래 휴스톤 심포니의 연주로 발매되었다. 1994년부터 에센바흐는 쉬니트케의 여러 작품들을 녹음해왔으며 특히 기돈 크레머 협연으로 녹음된 쉬니트케의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녹음한 바 있다.

마에스트로 에센바흐는 지휘자로 입문하기 이전에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1세에 처음으로 주요 콩쿠르에 입상한 에센바흐는 1965년까지 전후 독일 출신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입지를 굳혔으며 1969년 조지 셀(George Szell)이 지휘하는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미국 데뷔 연주회를 가졌다. 그는 탁월한 연주력으로 Philips가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 100인”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1972년 함부르크에서 가진 지휘 데뷔에 이어 1975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미국 지휘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78년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로 처음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에센바흐는 1981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객원 수석 지휘자로 임명된 후,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였으며 휴스톤 심포니 음악감독(1988-1999),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1998-2004), 라비니아 페스티벌의 음악감독, 시카고 심포니 여름 시즌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에센바흐는 2002년 쟈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수여하는 “레종도뇌르 훈장”과 Officer’s Cross with Star and Ribbon of the German Order of Merit를 수여 받았으며, 1993년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이룬 뛰어난 업적으로 “Commander’s Cross of the German Order of Merit”과 같은 해 그가 1992-1998년까지 공동 예술 감독으로 있었던 ‘태평양 뮤직 페스티벌’에서 수여하는 “레너드 번스타인 상” 등을 수상했다.

에센바흐에 대한 추가 정보는 그의 홈페이지 www.christoph-esenbach.com에서 찾을 수 있다.

랑랑, 피아니스트 Lang Lang, pianist
현재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22살의 피아니스트 랑랑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을 비롯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최초의 중국인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청중과 심도 있게 교류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관객을 열광시키는 카리스마를 지닌 이 시대 최고의 연주자이다.

1982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랑랑은 3세 때 주야-펜(Zhu Ya-Fen) 교수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5세 때 선양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후 첫 독주회를 가졌으며, 9세 때 북경 중앙 음악원에 입학, 자오핑-궈를 사사했다. 11세 때, 독일에서 개최된 제4회 국제 영재 피아니스트 콩쿠르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선보이며 당당히 우승하였으며 13세 되던 해인 1995년, 북경 콘서트 홀에서 쇼팽의 24개 에튀드 전곡을 연주하였고, 일본에서 개최된 차이코프스키 국제 영재 콩쿠르에서 우승, 수상 기념으로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협연하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것은 NHK 인터내셔널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었다. 14세 때에는 장쩌민 중국 국가 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국립 오케스트라의 창립 연주회에 협연자로 공연하였으며, 이는 중국 공영 CC TV로 방송되었다. 이듬해 그는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여 게리 그라프만을 사사하였다.

그의 나이 17세가 되던 1999년 랑랑은 연주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라비니아 페스티벌의 “금세기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회를 앞둔 협연자 앙드레 와츠가 병이 나 연주를 못하게 되자, 아이작 스턴의 소개로 그를 대신하여 무대에 올라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이 연주를 두고 시카고 트리뷴은 “몇 년 만에 처음 만나는,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재능의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쏟아내었으며, 이후 그는 성공적인 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랑랑은 카네기 홀에서 유리 테미르카노프 지휘로 가진 데뷔 무대를 매진시키며 성공으로 이끌었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창립 100주년 기념 아시아 투어 공연의 협연자로 북경을 방문, 인민대회당에서 8000여명의 청중들 앞에서 연주하였다. 같은 해 BBC 프롬 데뷔 무대를 통해 격찬을 받으며, 타임즈의 평론가로부터 “청중들로 가득 찬 알버트 홀을 황홀경에 빠뜨렸다. 이는 역사에 남을 만한 공연이었다.”라는 극찬을 얻은 바 있다. 2003년 BBC 프롬의 First Night Concert에서 레너드 슬랫킨과 공연하였으며 최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의 그의 독주 데뷔 무대를 두고 베를리너 자이퉁(Berliner Zeitung)은 “랑랑은 음악에 대한 예술적 터치가 돋보이는 최고의 연주자이다.”라고 극찬했다.

랑랑은 보스턴, 뉴욕, 클리블랜드, 필라델피아,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런던 필하모닉, 파리 오케스트라, NHK 심포니, 이스라엘 필하모닉, 상트 페테스부르그 필하모닉을 비롯한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였으며, 다니엘 바렌보임, 샤를 뒤트와,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리스 얀손스, 제임스 레바인, 로린 마젤, 주빈 메타, 사이먼 래틀, 볼프강 자발리쉬, 유리 테미르카노프, 마이클 틸슨 토마스, 프란츠 뵐저-메스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공연하였다. 세계 주요 음악도시의 유수 공연장에서 정기적으로 독주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아시아를 자주 방문하며 협연 및 독주회 무대를 가져오고 있으며, 현재까지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중국,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공연했고, 상해와 북경의 신년 연주회(2005년)에서는 차이나 필하모닉과 협연하기도 했다.

랑랑은 2004-2005 시즌에 빈 필하모닉, 베를른 슈타츠카펠레, 뮌헨 필하모닉,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런던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며, 차이나 필하모닉과 북미 순회 연주에 협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또한 빈, 취리히, 함부르크, 마드리드, 런던, 스톡홀름, 필라델피아,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벤쿠버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의 리사이틀 연주 계획도 잡혀있다.

랑랑은 자신의 고향, 중국에서 자서전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상을 수상해 왔으며 그의 연주는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어 전 세계 수백만의 시청자들이 지켜보았다.

랑랑은 세계적인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첫 번째 앨범은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의 시카고 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 및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한 것으로 이는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40주 이상이나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4년 3월에 발매된 그의 두 번 째 앨범은 발매 되자마자 독일 팝 차트에 오른 수작으로 그의 카네기홀 독주 데뷔 무대 실황을 녹음한 것이며, 그의 아버지 구오-렌랑과 연주한 중국 전통 음악 및 탄둔의 “8가지 빛깔의 수채화”의 세계 초연이 포함되어 있다. 랑랑의 다큐멘터리 비디오 컷을 포함한 이 독주회 실황 DVD는 2004년 9월에 발매되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지휘하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도이치 그라모폰 라벨의 그의 세 번 째 앨범이 곧 발매될 예정으로 있다.

데이비드 김 David Kim, Violin
- 1999년부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김은 일리노이주의 카본데일에서 태어났다.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8세 때부터 저명한 교수인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하며, 줄리어드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86년 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데이비드 김은 1989년 로드 아일랜드 대학 킹스턴 챔버 뮤직 페스티벌의 설립하여 음악감독으로서, 또한 특별 연주자로 초청되어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지난 2001년에는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며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연간 복지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잠재적 청중 개발을 위하여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음악인으로서 지역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 지난 13년 동안 그는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12,000명이 넘는 청소년을 위해 연주했으며, 이 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초등학교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데이비드 김은 맨하탄 음대와 커티스 음대 등 다수 음악 학교에서 매년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많은 학생들을 만나는 등 교육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달라스, 피츠버그, 케이프타운, KBS, 모스크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비롯하여 버팔로, 로드 아일랜드, 서울 필하모닉, 폴란드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 Metamorphosen Chamber 등 미국 및 유럽의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온 그는 매 시즌 필라데피아 오케스트라의 솔로이스트로 연주하고 있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부임하기 전, 달라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악장을 역임하였으며, 매년 여름 시애틀과 핀란드의 쿠모 챔버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 받아 연주해오고 있다.

12세 때에 이자크 펄먼과 함께 뉴욕 방송사인 WNEW-TV의 영재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CBS, NBC, PBS등 많은 방송의 음악프로에 출연해 왔으며, National Public Radio와 뉴스위크 잡지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대여한 1757년 이태리 밀라노산 J.B 과다니니로 연주하고 있으며, 현재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타협하지 않는 세계 음악계의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첫 내한 무대! 100년 전통의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만난다!

· 공연일시 : 2005. 6. 6(월) | 7(화) 8:00 PM
·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주 최 : 예술의전당, 금호문화재단
· 입 장 권 : R석 16만원, S석 14만원, A석 12만원, B석 8만원, C석 4만원
· 전화예매 : 예술의전당 580-1300, 티켓링크 1588-7890

· 지 휘 :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Christoph Eschenbach
· 연 주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The Philadelphia Orchestra
· 협 연 : 랑 랑 Lang Lang (Pf), 데이비드 김 David Kim (Vn)

웹사이트: http://www.s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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