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4월의 독립운동가 염온동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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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10-03-31 09:50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관장 :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한 추정(秋汀) 염온동(廉溫東) 선생을 2010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전시회 장소 :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전시관 중간 통로)
- 전시회 기간 : 2010.4.1(목) ~ 4.30(금)
- 전시 내용 : 선생 및 보성전문학교 사진 등 사진자료 14점

□ 염온동 선생(1898. 5. 1 ~ 1946. 1. 24) 주요공적

- 강원도 금화 출생
- 3·1운동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
-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총무과장 겸 군사편찬위원회 간사로 활동
- 197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염온동 선생은 1898년 5월 1일 강원도 금화군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금화군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보성전문학교로 진학하였다. 보성전문학교에 재학 중 독립운동에 관여하는 인물들과 교류한 선생은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고 1919년 금화지역의 3·1운동에 참여하여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1921년 4월 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단체에 참여하여 관련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의 기반을 넓혔다. 그 결과 1923년 2월 제11회 임시의정원 의회에서 강원도 출신 의원으로 선출되어 임시정부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26년 7월에는 안창호·엄항섭 등과 함께 경제후원회를 조직하여 애국금을 납입하는 등 임시정부의 경제적 후원에 앞장섰다.

1920년대 중반, 중국 관내에서는 독립운동 진영을 통일하여 일제의 침략에 맞서 투쟁하고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되었다. 상하이, 광저우 등지에서 유일당 결성을 위한 촉성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에는 각지 촉성회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이 때 선생은 이 연합회의 전위단체인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중앙집행위원과 상하이지부의 대표로 선출되어 한인독립운동진영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0년 임시정부는 약 8년 간의 이동을 끝내고 충칭에 정착하게 되었다. 임시정부는 정착 후 조직과 체제 및 대일항전태세 강화에 전력을 다하였고, 그 결과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선생은 1944년 6월 임시정부 군무부 총무과장, 군무부 군사학편찬위원회 간사로 근무하며 한국광복군과 관련된 각종 군사학 서적을 편찬하며 한국광복군의 기반 구축에 열정을 바쳤다.

1945년 4월 선생은 다시 임시의정원 강원도 출신의원으로 보선되어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과 위상강화, 광복 후 임시정부의 여러 가지 후속 처리방안을 위해 노력하였고, 광복된 조국으로 환국하지 못한 채 1946년 1월 24일 이역만리 충칭의 차디찬 벌판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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