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의 기초·심화 교육과정 도입에 대한 전교조 입장
우리는 정부의 학교서열화 정책으로 발생한 학교별 학력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차별 지원과, 같은 학교 내의 학생 간 학력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은 적극 공감한다. 다양한 능력과 흥미, 적성 등을 고려하여 학생에게 맞는 수월성 교육을 실시해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은 공교육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위해 학업상담교사를 배치하겠다는 계획도 의미 있는 계획이라고 본다.
하지만 교과부의 발표는 몇 가지 측면에서 교육현장의 부작용과 현실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대상으로 개설 운영하는 기초과정을 대입전형에 사용하는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은 학생 스스로 자신이 기초학력 미달임을 대학에 알려주는 것이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낙인 효과’를 가져와 학생들이 수강 자체를 꺼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성적 우수 학생들이 수강하는 심화과정은 일반계 고등학교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우등반’으로 여겨지게 되며, 우등반 수강을 성적으로 제한할 경우 이를 위한 별도의 사교육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심화과정 이수가 입학사정관제의 전형 요소로 활용될 경우에 대한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결과적으로 교과부가 마련한 예산이 기초학력 미달학생보다는 학력우수 학생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 방과후 학교’ 등으로 운영하여 해결하면 될 것을 정규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함으로써 오히려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게 제공되어야 할 교육기회의 형평성이 제한받게 된다는 점이다.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의 정규교육과정화는 학생들에게는 명백한 우열반으로 인식될 것이며, 이로 인해 학생 간 위화감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거점학교가 선호학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교과부는 올해 2학기부터 이를 시범운영하고, 2011년부터 정규교육과정 편성, 2013년부터는 전면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정규교육과정으로 편성하기 위해서는 검정교과서가 필요하지만 아직 기초과정과 심화과정 운영에 필요한 교과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검정과정만 2~3개월이 필요하며, 개발하는 데는 최소 1~2년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별로 기간제 교사나 강사의 충원이 원활치 않고 해당자들이 대도시에 몰려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간 학력격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교과부 발표는 이전에 반복되어 온 정부의 조급증이 다시 한번 나타난 것이다. 올해 2학기부터 한 학기를 시범 운영하고 이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나, 두달만에 마무리 된 학교현장 의견 수렴 등은 ‘자율형사립고 설립’이나 학교장 권한 강화를 위주로 한 ‘학교자율화 정책’ 등에서 보여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정책 집행과정의 재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늘의 발표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우등반 제도인 하이스쿨 칼리지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이스쿨 칼리지는 이미 작년 11월 “특수목적고 제도개선방안 연구”의 일환으로 개최된 교과부 주관 공청회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교과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체계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기초.심화 교육과정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한 제기되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시범운영을 최소화하고, 최소 3년간의 시범운영에 대한 학교현장의 평가를 바탕으로 제도도입 자체부터 재논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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