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8월의 독립운동가 이중언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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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10-07-29 09:45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중언(李中彦) 선생을 2010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8월 한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중언은 1850년 2월 안동의 하계마을에서 태어났다. 하계마을은 퇴계의 학문을 가장 잘 계승한 곳으로, 25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마을이기도 하다. 선생은 1879년 5월 대과에 합격하여 성균관 전적과 사간원 정언을 거쳐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의 이권침탈을 목도하고 오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와 후일을 준비하였다.

이즈음 조선 조정이 중국인 황준헌의 ‘조선책략’정책을 수용하게 되자 선생은 이에 반대하고자 도산서원이 영남지역 전역으로 발송한 ‘통문 通文’의 발의자로 참여하였고, 고향 주변의 봉화군 임당산 골짜기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895년 음력 8월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및 단발령으로 의병활동이 본격화되자 선생은 같은 해 12월 선성의진(宣城義陣)의 이중린 의병장 휘하의 전방장이 되어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다음해 3월에는 영주, 순흥의진과 연합하여 7천명 규모의 대규모 의진을 조직하였다.

선생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당하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다섯 도적의 목을 베소서’라는 상소문을 지어 을사늑약에 가담한 이완용 등 5명을 처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하자 항거의 뜻으로 단식을 시작하였고, 일제를 향해 ‘경고문’을 써서 단식순국을 결행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선생은 강제로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찾아 온 일본 경찰을 서릿발 같은 기개로 꾸짖기도 하였다.

단식을 시작한 지 27일 만에 선생은 결국 순절하였지만 죽음을 통해 국권피탈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였고 이 같은 절의는 민족적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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