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외솔 최현배 선생 선정

뉴스 제공
독립기념관
2010-09-30 09:36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최현배(崔鉉培, 1894.10.19 ~ 1970.3.23)선생을 201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0월 한달 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이 집필한 ‘우리말본’등 관련자료 17점이 전시된다.

1894년 10월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동리(현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613번지에서 최병수의 맏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1910년 관립한성고등학교(경술국치 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변경)에 입학하였고, 재학 중에 보성학교 국어강습소에서 주시경의 강의를 들으면서 애국사상을 정립하였다. 1915년 관립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廣島)고등사범학교 연구과를 거쳐 교토(京都)제국대학 철학과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일본 유학 중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민족계몽의 필요성을 절감한 선생은 귀국 후 1920년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여 우리말을 가르치고 연구하였고, 우리글의 문법체계를 바로 잡을 목적으로 ‘우리말본’의 초고를 집필하였다.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동아일보에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66회나 연재하여 우리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실천적 이상주의를 고취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하여 기관지 ‘한글’창간 및 한글날 제정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의 준비위원 및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33년까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집필해 온 ‘우리말본’을 1937년 출판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전념하였다.

1938년 선생은 일제가 조작한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에서 강제로 해직되었다. 선생은 해직 이후에도 한글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연구한 ‘한글갈’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942년 출판하는 등 연구와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뒤 한국인에 대한 민족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면서 같은 해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하였다. 선생은 또 다시 검거되어 심한 고초를 겪으며 옥고를 치러야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게 된 선생은 광복 후 미군정청 편수국장, 문교부 편수국장 등을 역임하였고 연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1970년 작고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웹사이트: http://www.i815.or.kr

연락처

독립기념관 기획조정실
김석중
041-560-0229
이메일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