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심남일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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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10-10-29 09:21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심남일(沈南一, 1871.2.10~1910.10.4)선생을 2010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1월 중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이 의병장으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 등 관련자료 12점이 전시된다.

심남일 선생은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신기에서 부친 심의봉(沈宜奉)과 진주 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송이며, 본명은 심수택(沈守澤)이다. 선생은 관직을 지낸 적은 없으나 학식이 있어 고향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지냈으며, 손수 농사를 지으며 부인 평택 임씨와 2남 3녀를 거느린 평범한 가장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었고 곡창지대인 호남 일대에 일제의 경제침탈이 극심해지자, 선생은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명망이 높은 유학자도, 재력있는 부호도 아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선생은 1907년 후반 전라남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던 호남창의회맹소에 가담하여 기삼연 의병장 휘하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기삼연이 붙잡혀 총살되고, 휘하의 김율, 김태원 등 다수의 지도부가 전사하여 의병부대가 와해되었다. 선생은 굳은 항일의지로 의병을 다시 불러 모아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의병부대의 체제를 새롭게 하고 의병들이 지켜야 할 조항을 내세워 민심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일항전을 계속해 나갔다.

1908년 음력 3월 전라남도 강진 오치동 전투를 시작으로 능주 노구두, 함평 석문산, 능주 석정 전투를 비롯, 1909년 음력 7월 장흥 봉무동 전투까지 일본 군경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라남도 중남부 지역의 대표적 의병부대로 성장한 선생의 부대는 일본의 국권 침탈과 경제적 침탈, 단발 강요, 군대해산과 황제 강제퇴위 등에 대하여 강력히 반발하며, 활동을 지속하였다.

선생은 적극적인 대일항전을 위하여 전남지역 의병부대 간의 연합을 주장하고 전남 동부지역의 안규홍 의병부대, 서부지역의 전해산 의병부대 등과 연합하여 호남동의단을 결성하고 연합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1908년 후반부터 선생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선생을 비롯한 호남의병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작전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일제는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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