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TV, ‘3.1 만세운동 생존자의 증언’, 3월 1일 (화) 오전 7시, 오후12시 방송

서울--(뉴스와이어)--일본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1919년 3월1일. 일제의 탄압에 항거해 서울 탑골공원에서는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포한 후 만세운동을 시작한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우리의 주권을 찾고자 했던 3.1만세운동은 전국으로 번지며 3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참여한 인원이 약 2백 2만 명에 이른다.

계층, 지역, 종교, 나이를 뛰어 넘어 국민 모두가 하나 되었고, 비폭력?평화적 방법으로 맞서 조국독립을 요구했던 3.1만세운동.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2년이 지난 2011년,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3.1만세운동 당시의 상황을 알아본다. 그리고 3.1운동이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를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

일본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탑골공원에 수 천 명의 시민들과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포하자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온 거리로 뛰어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우리의 주권을 되찾고자 했던 비폭력 평화운동인 3.1만세운동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92년이 지난 지금, 아직 남아있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3.1만세운동의 당시 흔적을 더듬어 본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는 국내 최고령 독립유공자인 구익균 선생이 살고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도 잘 알려진 구익균 선생은 올해로 103세다.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919년 3월 1일의 상황은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92년 전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는 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민족 지도자 33인중 29명이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품에 숨겨놓은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1살 어린 나이에 동네 어른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구익균 선생에게 탑골공원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현재 살고 있는 집도 탑골공원 바로 앞에 있을 정도이다.

3.1만세운동 때문에 수 천 명이 목숨을 잃고, 수 만 명이 감옥에 갔다. 하지만 3.1만세운동으로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92년 전,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 순간. 그 피끓는 기억을 생존자들은 결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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